일명 ‘수수료율 전쟁’으로 불리는 병원계와 카드업계의 힘겨루기에서 병원계가 손도 써보지 못하고 완전히 밀릴 전망이다. 카드사와의 협상에서 사실상 가맹해지 외엔 별다른 협상력이 없는 병원계가 기대려했던 금융당국에게 외면당했기 때문이다.
병원계를 대표한 대한병원협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의료기관들의 평균 수수료율은 2.23%로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가 최근 밝힌 대형마트 평균수수료율 1.94%, 백화점 2.01%, 통신사 1.8%, 자동차 1.84%보다 최대 0.43%, 최소 0.22% 높았다.
금융위가 지난해 영세소상공인의 수수료율 부담완화를 골자로 한 신용카드 수수료율 개편안을 발표하며 대형가맹점의 수수료율 상한도 0.2% 낮춘 점이나, 현재-기아자동차가 카드가맹 해지라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수단을 꺼내들며 내린 수수료율이 0.01%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준이다.
이에 병원협회를 중심으로 의료기관들은 과도한 수수료율 부담을 문제 삼으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들의 주요 주장은 의료기관의 이용을 선택할 수 없고, 진료비가 국가의 통제를 받아 병원이 임의조정 할 수 없으며, 의료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을 경우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는 만큼 공익적 성격과 특성을 고려해 우대수수료를 적용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의료서비스의 공익적 성격을 법에서 이미 정하고 있다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규정된 ‘필수공익사업’ 분류를 제시했다. 법 71조 2항에는 “공익사업으로서 그 업무의 정지 또는 폐지가 공중의 일상생활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거나 국민경제를 현저히 저해하고 그 업무의 대체가 용이하지 아니한 사업”이라며 병원사업 및 혈액공급사업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위는 이를 검토조차하지 않았다. 금융위 홍성기 중소금융과장은 노동조합법 상 필수공익사업으로 분류된 의료의 공공성을 고려해 우대수수료율을 적용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면서 “왜 우대수수료를 적용해야하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렇게 생각하면 공공성이 없는 분야가 어디 있겠느냐. 교육도 그렇고 통신도 그렇고 많은 분야가 공공성이 있다”며 “당초 우대수수료를 적용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차원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대형병원을 사회적 약자라고 보긴 어렵다”고 부연했다.
나아가 “공공성을 이해는 한다. 하지만 병원에도 공공적 영역이 있고 성형이나 피부과 등 선택적 영역이 있다. 그렇다고 진료과를 나눠 내과는 되고 피부과는 안 된다고 할 수도 없고 굉장히 복잡해지고 다른 문제가 생긴다”면서 “현재 공공기관이나 공사, 심지어 중학교나 고등학교 수업료에도 카드수수료가 메겨진다. 이걸 다 반영하긴 어렵다. 어려운 숙제”라고 답했다.
가맹점 카드수수료율을 통보식으로 전달하며 적격비용 산출근거 등을 전혀 제시하지 않는 일명 ‘깜깜이 협상’ 문제에 대해서도 협상이 어려운 구조라는 점에서는 동의하지만 “협상에서 원가와 마진율을 모두 공개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정부가 관리감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손 놓고 시장 자율에 맡겼다면 10%, 15%씩 수수료율을 낼 수도 있다. 이를 조정하고자 정부가 카드사들이 가맹점들에게 쏟아넣고 있는 원가를 감안해 수수료를 산정하도록 하고 원가자체도 적격과 비적격을 구분해 제시하고 있다”며 “개별 가맹점에 대한 적격비용을 알 순 없지만 원칙과 기준을 정하고 카드사들의 준수여부를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마케팅 비용을 지나치게 카드수수료율에 녹여내는 것에 대해서도 “마케팅 비용은 특정분야에 많이 들어가고 적게 들어가고 차이가 있다. 이건 카드사의 재량이다. 하지만 무한정 마케팅 비용을 수수료에 전가시키진 못하도록 설계해놨다. 상한선도 구간별로 정해 가맹점 별로 투입된 마케팅 비용에 상응하게 수수료율에 반영하도록 하고 감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외에도 홍 과장은 법에서 행위에 따른 진료비를 정하고 있는데다, 그마저 원가에 미치지 못해 일부 비급여와 제한적으로 허용된 수익사업으로 이를 충당하는 의료기관의 현실에서 카드수수료율이 여타 가맹점과 비교해 과도하게 책정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카드사의 재량이며 대형병원들의 엄살”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의료기관만의 특성을 카드수수료와 결부시켜 이야기하면 안 된다. 어느 분야나 개별적 특성이 있다. 그걸 공공성이라고 딱지 붙여 특수가맹점으로 우대받겠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주장하는 것들도 전부 과장돼있다”면서 “대형병원은 수익도 많이 내고 있다. 물론 환자수 늘리는 것도, 의료수가도 제한적이지만 그건 우리에게 할 얘기가 아니”라고 못 받았다.
대통령도 인정하고 정부가 인상을 약속했던 원가대비 저수가 구조는 보건복지부와 풀어야할 것이지 금융위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며 이를 두고 카드수수료를 낮춰야한다는 식의 주장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60~70% 이상의 수익이 수수료를 내지 않는 건강보험 급여수가인만큼 여타 가맹점과 달리 일부 수익에 대한 수수료가 부담된다고 해서도 안 된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한 병원계 관계자는 “금융위가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근시안적이고 의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 금융위는 정부부처가 아니고 국민의 고통과 부담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며 비난했다.
아프면 가고 싶지 않아도 가야하는 곳이 병원인 만큼 필수영역으로 이용의 선택권이 제한적이기에 카드사용에 따른 혜택을 보는 이가 수수료 등을 부담해야한다며 금융위가 내건 대전제 ‘수익자부담 원칙’을 적용하기 어렵고, 구조적 모순이나 의료의 공익성과 저수가 구조를 인정하면서도 카드사의 이윤을 챙겨줘야 한다며 편을 드는 듯 한 행동은 문제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저수가 개선을 위해서는 건강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 영세소상공인의 부담을 줄이겠다며 전국민의 부담증가는 모른척하며 뒷짐만 지고 있겠다는 것이냐”며 “적어도 협상 당사자들 간에는 수수료율 산정의 근거를 제시해 원만한 합의가 가능하도록 하고, 근본적으로 주유 등 우대수수료 적용분야의 공익성 등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