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국민과 국회의 요구에 의료용 대마를 합법화했다고 발표했다. 여론도 마약을 들여왔다며 범죄자가 될 위기에 놓은 이들이 더 이상 고통 받지 않을 것처럼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범죄자가 될 위기에 처해있다.
의료용 대마에 대한 합법화 요구는 식약처 검토과정에서 대마원료 ‘의약품’으로 한정됐고, 대마오일 등 건강기능식품은 여전히 '마약'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버닝썬 사태로 촉발된 마약류 유통에 대한 감시강화로 불법이 아닌 대마 줄기 및 씨앗 추출물을 원료로 한 제품에 대한 통관까지 막히며 환자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A씨는 뇌전증의 일종인 경련중첩증을 앓고 있는 생후 19개월 된 자녀를 위해 대마의 뿌리와 줄기에서 추출한 원료를 이용한 건강기능식품을 일본에서 들여오려다 세관에 적발됐다. 마약류라는 이유에서다.
세관 관계자는 그에게 “어떤 제품이고, 원료가 무엇인지,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도 익히 알지만 버닝썬 사건으로 인한 시국이 시국인지라 조사가 강화돼 성분분석을 의뢰했고, THC 성분(향정신성 화합물)이 검출되지 않아도 물건을 받지는 못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그는 울분을 토했다. 통칭 ‘CBD(카나비노이드) 오일’로 불리는 건기식 중 일본에서 유통되는 제품의 경우 대마의 잎이 아닌 줄기와 뿌리, 종자 등에서 추출한 것으로 국내법상으로도 문제가 없는데다 그걸 알면서도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물건을 받을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그는 합법화 논의과정에서 해외에선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제품을 여전히 국내로 들여오지 못하는데다 허가범위도 좁아 쓸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심지어 국내에서도 합법이라고 규정한 제품조차 마약으로 의심된다며 세관을 통과하지 못하는 상황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더구나 4월 2일에는 받아 먹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식품을 세관이 ‘시국’을 이유로 반출하지 않은 17일 동안 앞서 구한 CBD 오일을 모두 사용했고, 19개월 된 자녀의 질환이 점차 악화돼 종국에는 2번이나 생명의 위협을 겪어야했던 만큼 강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그는 “한 번 경련이 일어나면 8시간 이상 이어진다. 응급실에서 아티반(진정제)을 5대나 맞고도 경련을 계속했다. 겨우 진정된 다음날 전라도 광주에서 서울로 이송하는데 또 경련이 일어나 결국 서산의료원에서 아티반을 다시 2번이나 맞았는데도 안 돼 산소호흡기끼고 구급차에 실려 가야했다”며 “약이 있는데 못 먹이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10㎖ 5병을 구해 매일 조금씩 먹였고, 먹이는 동안 한 번도 경련을 안했다. 발달지연도 있어 눈 맞춤도 못하고 누워만 있었는데 엄마도 알아보고 뒤집기도하고 장난감도 찾았다. 이런데 어떻게 안 먹일 수가 있겠느냐”면서 국내법 상 불법도 아니고 정상적인 구매과정을 거친 물건을 쓰지 못하는데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보였다.
지난달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수입허가한 드라벳증후군이나 레녹스가스토증후군에 쓰이는 CBD 성분의 에피디올렉스(Epidiolex) 포함 4종의 대마성분 의약품을 처방받아 먹일 수는 없었냐는 질문에도 “의사가 경련중첩증이 처방대상이 아니라며 처방을 받지 못해 복용할 수 없었다”면서 “동일 규정을 가진 일본에서 정상 유통되는 건기식이라도 먹게 해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이와 관련 식약처는 “세관에서 통관을 막은 것은 법으로 제한하는 물질일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성분조사를 위해서인 것 같다”며 “대마라도 종자와 뿌리, 성숙한 대마의 줄기와 그 제품은 마약류 분류에서 제외된다. 통관돼야하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의료용 대마로 허용된 의약품도 해당 진료과 전문의의 진단에 따라 허가 외 사용을 위한 처방이 가능하다”며 “허가된 적응증이 아니라도 진료기록과 진단서, 대체치료수단이 없다는 소견서, 진단 근거 등을 첨부해 취급신청을 하면 전문가 자문을 거쳐 승인 후 환자에게 쓸 수 있도록 수입해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식약처는 건기식이나 식품군까지 허가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지금 시점에서는 안전성이나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은데다 의료용 대마수입에 대한 반대여론도 있어 좀 더 폭넓은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에 CBD 오일을 둘러싼 논란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