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 연구, 그들만의 리그를 벗어나다

미생물 연구, 그들만의 리그를 벗어나다

기사승인 2019-04-22 13:38:00

최근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 각광을 받고 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미생물(microbe)과 생태계(biome)의 합성어로 우리 몸에 사는 미생물과 그 유전정보를 말한다. 생명의 기원을 쫓으며 현미경 속 미세(micro) 세계에 빠져있던 미생물학자들이 인체를 탐구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이 같은 마이크로바이옴에 사회적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추려진다. 당장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인간과 함께하는 인체 속 미생물의 존재에서 시작된 학자들의 관심이 이들의 역할과 영향으로 확장되며 생명의 유지와 연장, 파괴에 집중해온 의과학과의 교류가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건강한 삶에 대한 높아진 현대사회가 미생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여기에 의과학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며 장내 유해균, 유익균, 질병과의 관계 등이 속속 밝혀졌고, 건강한 삶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이들 결과들이 4차 산업혁명으로 통칭되는 ‘융·복합’에 기반한 변화와 맞물려 새로운 산업으로의 성장가능성을 시사했다는 이유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장내 유산균 ‘프로바이오틱스’다. 국내 시장규모만 2016년 기준, 1500억원을 돌파했다.

또 다른 이유는 미래 인류의 진화에 대한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윈의 진화론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1930년대만 해도 알레르기를 가진 학생이 한 학교에 1명이었지만, 1980년대엔 1학급에 1명, 2010년대엔 4명당 1명으로 급증했다. 선천성 당뇨인 1형 당뇨도 20세기 초에는 매우 드문 병이었지만, 지금은 서구사회에서 250명 중 1명에 이른다.

이 외에도 희귀병에 해당했던 염증성 장염이나 크론병 등 장질환이 보다 흔해졌고, 1940년까지만 해도 진단 자체가 없었던 자폐증이 어느덧 68명의 어린이 중 1명이 겪을 정도가 됐다. 비만과 심장병, 암, 감염병 등 다양한 신체적·정신적 질병과 변화가 사회와 환경의 변화로 인해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인다. 그리고 그 배경과 해결방법에 미생물이 조명되고 있다.

그 때문인지 환갑을 맞은 미생물학회가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제주 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개최한 학술대회의 큰 줄기 중 하나는 ‘마이크로바이옴’이었다. 특히 2000년부터 활발히 연구돼 온 장내 미생물의 효능과 효과, 여기에서 출발한 각종 치료법 등이 소개됐다. 이 자리에는 미생물 분야의 기초과학자는 물론이고 의학자들과 산업계 관계자들도 대거 참석했다.

장내 미생물과 질병의 관계에 대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고광표 서울대학교 교수 겸 고바이오랩 대표는 “질병과 미생물의 관계가 밝혀지고 있다. 이에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용한 치료제 개발도 속속 이뤄지고 있다. 임상분야와 산업계 모두에서도 크게 주목하고 있다”며 국내외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와 산업계 동향을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마이크로바이옴은 인간의 건강과 질병문제를 해결할 열쇠로 지목되고 있으며, 체내 미생물의 분포나 변화에 따른 건강상태의 변화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다. 2011년 사이언스지가 선정한 10대 혁신(breakthrough) 기술에 선정됐고, 2014년 세계경제포럼에서 미래를 바꿀 10대 신기술이라며 21세기 차세대 핵심 부가가치 산업으로 꼽히기도 했다.

최근에는 자폐증, 우울증, 파킨슨병, 아토피, 건선, 천식, 고혈압, 허혈성심질환, 암, 지방간(염), 비만 및 대사질환, 염증성 장질환 말포혈관질환 등 인체 전반에 걸친 미생물의 영향에 대한 연구논문이 사이언스나 네이처, 셀 등 해외 유수학회지에 실리는가 하면 이를 기초로한 각종 치료제가 임상시험에 들어가는 등 실용화 단계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이와 관련 고 교수는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용한 치료제 개발은 면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토피나 천식 등 자가면역 뿐 아니라 신경정신과적 질환 등에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들이 발표되고 있다”면서 “다만 약은 성분이 일정해야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 아직 산업적으로는 한계가 있어 요구와 효과 간에 격차가 존대한다”며 보다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장천 인하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는 “미국에서는 지금 아무 목적 없이 100만 달러를 지원받아 전 지구 규모로 동시간대 바다미생물 채취 및 분석 연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기술을 갖추고 있음에도 인력과 지원이 부족하다. 쇄빙선 조차 1대 뿐”이라며 “때로는 무용한, 쓸모없는 지식이 인류가 진보하는 밑거름이 된다.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노정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도 “바이오메디컬과 임상, 기초가 탄탄한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그룹연구가 활성화돼야한다. 돈이 될까, 경제에 도움이 될까를 넘어 호기심, 지식을 높일 부분도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겐 비어있는 영역”이라며 “기초연구와 의학, 산업계가 함께할 수 있는 방향에 진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고 첨언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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