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의 어두운 단면 ‘CRE’, 어르신이 위험하다

항생제의 어두운 단면 ‘CRE’, 어르신이 위험하다

요양·의원 감염관리 ‘사각’… 알고도 막지 못하는 체계 개선 ‘시급’

기사승인 2019-04-26 05:00:00

인류 수명연장에 기여했다는 3대 발견 중 하나인 ‘항생제’가 돌연 생명을 위협하는 도구가 됐다. 항생제 사용이 증가하며 내성을 가진 균들이 사람을 옮겨 다니며 확산되고 있는 것. 더구나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며 항생제내성균에 감염된 환자수도 크게 늘고 있는데다 선진국과 달리 여러 명이 하나의 병실에서 생활하는 환경이 감염확산을 더욱 부추기는 상황이다. 

게다가 압축성장의 폐해 때문인지 개개 의료기관과 의료진, 심지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감염관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고, 여전히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도 있어 관리체계 곳곳에 구멍이 뚫리고, 막을 수 있는 감염을 제대로 막지 못해 확산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정부와 지자체의 관심과 노력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 무엇이 문제일까.

25일 서울시가 요양병원의 감염관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관리체계 구축과 제도적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1년간 진행한 ‘병원급 의료기관 CRE(카바페넴내성 장내세균속균종) 유행관리 방문컨설팅 사업’ 결과보고에서 한림대학교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와 전문가들은 3가지 문제를 거론했다.

먼저, 대형·개별 병원 위주의 감염관리체계가 작동하고 있어 감염전문가나 감염관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요양병원 및 중·소병원, 의원급 의료기관의 감염관리가 사각에 놓여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교수는 “컨설팅을 진행한 서울시 소재 18개 요양병원 중 10개 병원에서 격리가 필요한 CRE환자의 분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추가감염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또 다른 문제는 적절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컨설팅 결과, CRE의 관리와 치료방안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직원들의 업무증가나 다제내성균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그에 따른 설명의 어려움, 적극적인 대응에는 턱없이 부족한 지원과 높아지는 환자부담에 대한 민원 등이 확산 방지 및 관리의 걸림돌로 작용했다고 이 교수는 밝혔다.

여기에 올 1월부터 격리치료에 대한 수가가 인정됐다지만 여전히 보균환자나 의심환자를 확인할 수 있는 감시배양검사에 대한 수가는 인정되지 않는 점, 전체 의료행위가 하나의 포괄수가체계에 묶여 있어 감염예방 및 관리를 위한 활동이 제한적이라는 점도 한계라고 부연했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감염관리정책이나 의료기관들의 감염관리인식이 개별 의료기관에 한정되거나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에 대한 관리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문제도 지적했다. 특히 특정 치료를 위한 급성기 병원과 요양 및 회복을 위한 중·소·요양병원 간 환자이동이 잦아 특정병원만 감염관리를 철저히 한다고 감염이 차단되지 않는 전달체계의 한계가 문제였다.

서울의료원 감염내과 최재필 교수는 “CRE 감염 등 의료관련감염 확산은 전달체계 때문”이라며 “상급에서 항생제 사용해 다제내성균에 감염된 후 회복을 위해 지역사회나 중소·요양병원으로 전원되는 과정에서 확산된다. 역으로도 이뤄지는 순환체계다. 감염환자 지원·관리와 중소병원 감염관리역량 강화가 이원적으로 동시에 이뤄져야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이들 감염전문가들은 ▲의료기관 종사자들의 두려움을 없앨 교육 ▲의료기관장의 보다 강력한 감염관리의지 ▲이를 가능하게 할 적절한 수가 및 물품 지원 ▲의료서비스 전달체계 전 과정에서의 균형 있는 감염관리 및 항생제 사용관리 ▲CRE 등 다제내성균 환자들에 대한 원활한 정보교환 ▲기타 중앙정부 및 지자체장들의 적극적인 지원과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재갑 교수는 “1월부터 요양병원에도 격리수가가 인정돼 CRE 환자 격리에 대한 부담이 줄었다. 하지만 감염여부를 판별할 감시배양에 대한 수가는 여전히 인정되지 않아 의심이 돼도 적극적인 탐색이 어려운 실정”이라며 “컨설팅을 진행하며 감시배양과 관리에 필요한 물품 지원, 교육상담만으로 막연한 두려움을 떨쳤다”면서 정부와 지자체의 결단을 촉구했다.

이 교수와 함께 사업에 참여한 손희정 감염관리간호사회 이사는 “환자들의 경우 고령에 만성질환을 가진 이들이 많아지며 요양기관과 급성기 의료기관을 오가는 일이 늘고 있다. 따라서 한 기관만 잘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환자를 공유하는 모든 기관에서 효율적인 관리가 함께 이뤄져야한다. 아직은 편차가 굉장히 심하다”며 다른 차원에서의 지원을 강조했다.

서울시 보라매병원 감염내과 방지환 교수는 CRE 등 환자를 찾아내 관리하는 의료관련감염과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과 그 주변을 관리하는 지역사회감염의 접근방식에 차이를 언급하며 “지금까지 질병관리본부의 접근은 지역사회감염과 닮아있다. 감시 및 관리체계의 사고전환이 필요하다”고 질타했다.

아울러 1인실 중심인 선진국과 여러사람이 한 병실을 사용하는 다인실 중심인 국내 병동운영체계의 차이를 거론하며 “1인실을 쓰는 선진국과 다인실을 쓰는 우리의 관리방식이 같을 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선진국 지침을 베껴 써왔다. 돈이 들더라도 1인실로 갈지, 다인실 위주지만 다른 정책이나 방식을 추가할지 좀 더 창의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여기에 더해 전문가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감염관리를 위한 적절한 물품을 확보하고, 격리실 운영이나 감염관리에 필요한 인력고용 등 일련의 변화에는 ‘비용(수가)’가 요구되는 만큼 지금요양병원의 입원일당 총액을 정해 수가를 지급하는 체계로는 감염관리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며 수가보상체계의 개편이 무엇보다 절실하다는데 뜻을 함께했다.

한편, 정부는 현행 관리체계의 한계와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제시된 방안들에 대해 반영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아직은 감염관리 전문인력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다 시설 및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부분도 많아 이를 우선 확보하는데 주력하고, 우선순위에 따라 점진적이고 장기적으로 완성해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질병관리본부 이형민 의료감염관리과장은 “감염내과전문의가 200여명, 감염전문간호사가 400명이 채 안 된다. 반면 전국에 의료기관은 3만여개에 달한다.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며 “10년은 걸려야 충분한 인력이 확보될 것이라고 본다. 예산과 비용, 가용자원의 문제도 있다. 지금은 인프라 확산에 좀 더 집중해야할 시기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수가와 관련해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김미향 의료수가운영부장이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김 부장은 “최근 수가체계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2016년 감염예방관리료가 신설되며 처음으로 투자개념의 수가가 만들어졌다”며 “요양병원의 포괄수가 세부사용내역을 모니터링해 현실과 다른 부분이 많으면 개선의 여지가 있을 듯하다”고 화답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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