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 일명 ‘문재인 케어’는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을까. 적어도 여당은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지원이 이뤄진다면 국민들의 보험료 부담이 크게 증가하지 않으면서도 순탄하게 추진될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의료계와는 문제의식과 관점이 현저히 달랐다.
10일 오전, 문재인 정부 출범 2주년을 맞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급 인사들이 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에 모여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현장최고위원회를 개최했다. 환자나 보호자, 현장에 근무하는 의사나 간호사 등의 의견을 청취하며 성과를 점검하기 위해서다.
이 자리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결국 모든 국민들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잘 살도록 하는 것이 나라의 보건정책”이라며 낮은 본인부담과 제도의 유연성을 건강보험제도의 장점으로 꼽았다.
이어 “앞으로도 국가가 더 국민들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는 국가의 지원이 있어야만 환자들의 보험료가 많이 인상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당에서도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국가의 건강보험 재정지원 필요성을 시사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우리 국민들이 문재인 케어를 중심으로 한 ‘건강한 나라,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에 대한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고 있다”며 “보장성 70% 수준까지 가려면 재정적 지출은 더 확장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건강보험 재정여력도 나름 탄탄하다고 생각한다”고 낙관했다.
다만, “많은 국민들이 더 나은 병원비 걱정 없는 세상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만들 수 있다면 감당할 수준에서는 재정적 지출도 감수해야하지 않을까 한다”면서 “일부에서 제기해 국민적 우려가 있는 건강보험 재정문제를 건강보험공단을 중심으로 잘 설명하고 우려를 불식하는 활동을 해달라”고도 주문했다.
한국노총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이기도 한 이수진 민주당 최고위원은 “당과 정부는 국민들의 과중한 의료비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건강보험 혜택범위는 늘리고 의료비 중 본인이 부담하는 비율은 낮추는 문재인 케어 과제들을 차근차근 이행하고 있다”고 봤다.
아울러 이 최고위원 역시 “적정진료, 적정지출, 법률상 보장된 국고지원 확대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며 “아동, 여성, 노인 계층과 중증환자 등에 대한 국민의 엄청난 의료비 부담을 낮추는 문재인 케어가 추구하는 가치, 환자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병원을 이루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건강보험의 장래는 재정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관리하느냐에 달렸다”면서 “장기적으로 재정은 확대돼야 하고, 국고 지원도 지금처럼 들쑥날쑥이 아니라 정해진 비율만큼 들어오는 규모의 확대와 지원의 안정성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최근 발생한 건강보험 재정적자에 대해서는 “정부와 여당이 제도를 잘못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급여를 확대하다 보니 생긴 회계학적 적자”라고 덧붙였다. 적어도 여당과 문재인 케어를 설계·운영하는 정부는 문재인 케어의 핵심을 보편적 의료복지의 실현과 의료비 부담의 경감으로 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국고지원이면 된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이에 의료계는 한탄했다. 문재인 케어로 동네의원과 중소·지방 의료기관의 폐업이 늘고 환자가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으로 쏠리는 의료전달체계 붕괴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환자의 의료이용행태와 현장수용성을 반영하지 못한 제도설계 자체가 잘못이라며 수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케어로 인해 환자들의 수도권·상급종합병원 쏠림이 극심해지며 수익성이 악화된 의료기관들이 피부과나 성형외과, 기타 비급여 진료영역으로 남아있는 진료에 집중하게 돼 지역사회의 필수진료 공동화 현상이 심화되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라는 질타다. 아울러 이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수조원을 들여도 회복하지 못할 심각한 의료공백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다.
실제 한 의료계 관계자는 “지금 문재인 케어 지속을 위한 재정지원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의료비를 낮추겠다며 대형병원 특히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의 문턱이 낮아지며 환자쏠림이 심각해졌고, 환자가 치료받을 병원이 문을 닫고 있다”며 “아직 공식적인 통계가 나오지 않아 드러나진 않지만 이미 우려의 수준을 넘었다”고 경고했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문재인 케어로 인해 병원 간 경쟁도 치열해졌다. 불법, 편법 따질 때가 아니라는 말까지 나온다”면서 “문재인 케어의 설계가 완전히 잘못됐다. 환자가 몰리는 상급종합병원조차 위기감을 느끼고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한다. 의료비를 낮춰준다는 달콤한 말로 포장된 당금의 현실은 결코 환자에게 유익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에 “건보공단에서 운영하는 일산병원조차 문재인 케어와 불합리한 수가체계로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이날의 방문이 보여주기식 ‘정치쇼’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일산병원을 방문하고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모습에 한숨만 나온다. 앞이 깜깜하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