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시대 환자안전, ‘식별’에서부터

4차 산업혁명시대 환자안전, ‘식별’에서부터

선진국 80~90년대 머물러 있는 국내 의료기관들… 인식개선 시급

기사승인 2019-06-12 02:00:00

2011년 1월, 치매3급 판정을 받고 요양원에 있던 한 노인이 새벽 5시경 잠에서 깨어나 2층 발코니에 올라섰다 떨어져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출입이 제한돼 있었지만 안전시설이 없는 창문이 문제였다. 유가족은 믿고 맡겼던 곳에서 벌어진 황당한 사고에 장례를 치르면서도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불과 며칠 전에도 유사한 사건이 2건이나 발생했다. 11일 양주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9일 오후 8시30분경 양주시에 위치한 한 요양병원 6층 병실 열린 창문 사이로 66세 여성이 떨어져 숨졌다. A씨는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2달째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0일 자정 양주의 한 노인요양원에서 치매를 앓고 있는 66세 노인이 추락사 했다.

추락사뿐 아니다. 침대에서 떨어지고,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던 중 갑작스런 심정지로 사망하는 등 알려지지 않은 사건사고들이 수두룩하다. 심지어 유통기한이 지난 수액이나 의약품 등을 사용해 부작용이 발생하고, 패혈증으로 사망에 이르렀다는 소식도 들린다. 환자만의 문제도 아니다. 의료진들은 마약류 의약품과 주사기 등을 빼돌려 사용하다 사망하기도 한다.

의료기관이나 의료시설에서조차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 셈이다. 이를 개선할 방법은 없을까. 공상과학(SF) 영화에서처럼 환자가 이동하는 경로나 심박수, 생체리듬, 물자의 입출입이나 재고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이를 간호사나 물류담당자와 같은 관리책임자에게 알릴 수 있는 ‘인식’체계가 만들어지면 된다.

◇ 하지만, 과연 실현이 가능할까?

미래에나 가능한, 현실적이지 못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면 틀렸다. 세계에서 바코드를 처음으로 만들어 상용화했고, 업계에선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헬스케어 전용제품을 내놓으며 창립 후 50년, 한국에서도 내년이면 20년 외길을 걸어온 ‘지브라 테크놀로지스(Zebra Technologies)’의 우종남 한국지사장에 따르면 지금도 충분히 구현 가능한 기술이 있다. 

우 지사장은 “최근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첨단기술 중 하나로 꼽히는 사물인터넷 흔히 IoT(Internet of Things, 아이오티)라고 불리는 기술을 활용하면 된다. 심지어 이를 위한 기술들은 이미 개발돼 일상에서 쓰인다. 국내는 비용이나 인식문제로 인해 사용빈도가 적지만 선진국을 비롯해 해외환자유치에 적극적인 제3세계 의료기관들도 도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바코드나 NFC(Near Field Communication, 근거리 무선통신),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무선인식) 얘기다. 바코드는 검은 줄과 흰 여백이 빛을 반사하는 정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활용해 원격으로 정보를 디지털화해 전달할 수 있는 체계다. 이를 무선주파수로 바꾼 것이 RFID이며, RFID를 짧은 거리에서 구현하는 방식이 NFC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선도적으로 이들 기술을 도입한 의료기관들은 환자의 안전과 직원의 업무흐름 및 생산성, 의료 및 기록의 보안, 재고 및 비용 관리에 이르기까지 365일 24시간 쉼 없이 돌아가는 체계를 지속적으로 유지·보완하기 위해 환자와 자산에 디지털 발자취를 남겨 정확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정리하며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다.

어떤 환자가 입원했고, 그 환자가 옥상난간 등 위험지역으로 이동하지는 않는지, 특정 장소에서 오랜 시간 움직임이 없거나 이상행동을 보이지는 않는지, 병원 곳곳에 설치된 RFID 리더기나 센서를 통해 확인하고 적절히 조치할 수 있게 된다. 입원부터 퇴원까지 이뤄지는 모든 치료행위나 제공되는 서비스가 투명하게 관리되고, 실수 등은 최소화된다.

수술실이나 물류창고에서는 직원이 리더기를 들고 지나가기만 해도 유통기한이나 물량, 훼손여부와 같은 주변 물품의 정보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고, 환자의 X-선 촬영결과 등이 뒤바뀌거나 사라지는 일은 발생하지 않게 될 것이다. 심지어 증강현실 프로그램과 구글 글라스 등 입출력장치를 통해 직관적이고 즉각적인 대응도 가능해진다.

우 지사장은 “병원에는 우리가 생각하고 보고 사용하는 것 이상의 많은 물품과 장비, 사람이 존재한다. 이들을 모두 파악하고 추적할 수 있다. 심지어 반출되는 의료용 폐기물이나 적출물, 쓰레기까지 가능하다”며 “만약 이 같은 체계가 완비된다면 노화방지 등에 좋다는 태반이 알게 모르게 유출되고, 투약 오류 등의 문제는 확연히 줄어들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어 “해외 연구결과나 통계에 따르면 의료기록에 포함된 정보의 8~14%가 잘못된 환자신원자료에서 비롯되는 오류이며, 수술시 오류의 13% 수혈 오류의 67%가 환자식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샘플 오류로 인해 재작업이나 추가치료로 병원이 지불해야하는 비용은 연간 2~4억 달러에 달한다”면서 이 같은 문제도 최소화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 그렇다면, 우리 현실은 어디쯤에 있을까?

아쉽지만, 국내 의료기관에서는 이러한 서비스를 기대하기는 현재 힘든 상황이다. 우 지사장은 “정부의 의무화 정책에 따라 의약품이나 의료기기 등에 바코드가 부착되기 시작했지만 아직 사용빈도가 적다. 의료기관에서도 읽고 확인하는 1차적인 사용이 대부분”이라며 “언제 어디서든 접속하고 추적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 환자안전이 개선될 수 있다”고 했다.

단순히 병원으로 환자나 물품의 들어올 때, 입력된 정보와 손에 든 제품이나 샘플이 동일한지를 확인하는 차원을 넘어 어떤 경로를 통해 물건이나 환자가 이동하고, 어떤 약이 어느 환자에게 어떻게 쓰였고,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파악하는 등의 2차적인 활용이 이뤄질 때 사고를 방지하고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한 해외 보고서에 따르면 헬스케어 서비스 공급망 전반에 걸쳐 글로벌 표준을 구현하면 매년 2만2000~4만3000건의 생명을 구하고, 70만~140만 건의 환자장애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며 “아직 국내에는 신뢰할 만한 데이터(통계)가 거의 없다. 이런 것들이 있을 때 경각심이 일 수 있고 개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간호사나 의사들조차 IT기기에 대한 공포감이 있는 듯하다. 업무가 힘들고 바쁘다보니 눈에 보이고 당장 쉬운 것만을 쓰려는 경향이 있다. 의료기관에서는 비용을 들여 관리체계를 갖췄는데 오히려 실수나 문제를 드러내는 족쇄로 인식해 정부 시책에 맞춰 최소조건만을 갖추려는 모습도 보인다”면서 “사회 분위기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우 지사장은 해외에서의 적용사례를 들며 세계적인 추세도 전했다. 그는 “우리 응급구조사가 병원에 환자를 이송한 후 구두로 처치내용이나 상황을 전할 때, 미국은 구급차에 태울 때부터 손목에 일종의 스마트밴드를 채워 이동하며 이뤄진 모든 내용을 병원 도착과 동시에 전달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면서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우리보다 후진국으로 평가받는 태국이나 필리핀도 우리보다 더 높은 레벨에서 기술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의료관광을 유치할 때도 선진국 수준의 관리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알려 적은 비용으로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며 “결코 우리가 빠르지 않다. 오히려 뒤처지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말미에 그는 “같은 비용으로 훨씬 많은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영상장비처럼 수익을 창출하는 장비가 아니기 때문인지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 같다”면서 “환자안전과 효율의 측면에서 단편적으로 스캐너나 프린터가 몇 대 필요하다가 아니라 좀 더 큰 그림으로 접근한다면 의료환경이 보다 좋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까지 전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오준엽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