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민적 공포를 일으킨 ‘라돈 침대’ 사태에도 불구하고 전국 제강사 사업장에서 발견된 방사능 범벅 고철에 관해 적절한 조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 드러났다. 특히 이를 관리하는 원자력안전관리위원회(이하 원안위)의 대책이 부실하다는 학계와 정치권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최근 김도읍 자유한국당 의원이 원안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2014~2018)간 부산‧창원‧인천‧포항 등 전국 8곳 13개 제강사 18개 사업장에서 126건의 방사능 물질이 검출됐다. 이 가운데 34건(27%)은 사업장 내 여전히 보관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도별로 2014년에는 14건의 방사능 물질이 검출됐다. ▲2015년 18건 ▲2016년 21건 ▲2017년 42건 ▲2018년 31건으로 5년 새 2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원안위가 조치 중이라고 밝힌 34건 가운데는 5년 넘게 실질적인 조치가 이뤄지지 못한 방사능 물질만 2건이다.
먼저 경상남도의 한 제강사는 2014년 폐고철에서 기준치의 20배를 초과하는 방사능 물질 토륨(Th-232)이 검출됐지만 5년 넘게 임시보관 중이다. 부산의 제강사도 2016년 환경 방사선량 기준을 160배 초과하는 토륨이 검출됐음에도 원안위의 조처가 이뤄지지 못해 사업장 내에 보관 중인 실정이다.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다른 전국의 제강사 사업장의 방사능 고철도 3년 이상 5건, 2년 이상 11건, 1년 이상 16건이 실질적 조치가 이뤄지지 못하고 사업장 내에 보관되고 있다.
결국 원안위가 조치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국가적 관리가 요구되는 방사능 폐기물 관리에 큰 허점이 드러난 상황이다.
관련 학계와 정치권은 이 문제를 원안위가 홀로 처리하기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원안위에 제대로 된 업무 지원책을 마련해주던지, 추진력 있는 업무 수행이 가능한 산업부에 관련 업무를 분담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원자력공학 박사)도 “현재 원안위에 일감(방사능 고철)은 많이 몰렸지만 그에 반해 예산과 인력은 늘어나지 않은 상황”이라며 “국가가 일을 줬으면 예산과 인력을 지원해줘야 한다. 정책적 지원이 없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 박사는 “국가 정책이란 일을 해결하려는 의지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며“그러나 이번 사건을 보면‘책임 떠넘기식’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원자력 학계 전문가도 “애초에 한국에서 방사능과 관련된 대책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늦게 생긴 문제가 작금의 결과”라며“정부가 산업 방사능 측정 등의 ‘기본적 룰’은 원안위가 정하도록 하고, 산업계의 일이기도 한만큼 산업부에 해당 업무의 일부분을 할당하는 근본적 대책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철강업계는 방사능 고철 처리에 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애초에 법적으로도 방사능에 오염된 고철은 사 올 수 없다. 또 국내에 이러한 고철을 들여오길 원하는 회사도 없을 것”이라며 “다만 반입과정에서 여러 차례 검수·정리 과정을 거쳐도 오염된 고철이 나오고 있다. 처리도 함부로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철강사 관계자도 “규정상 담당 기관 외에 방사능 물질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아직 없는 것으로 안다”며 “업계에서도 원안위에 지속적으로 관련 고철 수거를 요청한 상태다. 조만간 처리 가이드라인을 전달받을 수 있을 것이라 알고 있다. 이에 따라 해당 물질을 처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도읍 의원은 “방사능 고철들은 국내 방폐장에 보관할 수도 없다. 국외로도 반출하지 못하고 있어 사실상 처리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방사능 물질로부터 국민을 지키기 위해 조속히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임중권 기자 im918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