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내가 다닐 때”...자사고 대란에 학생들 ‘망연자실’

“하필 내가 다닐 때”...자사고 대란에 학생들 ‘망연자실’

기사승인 2019-07-29 06:00:00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지정취소 대란으로 중·고등학생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2일부터 사흘간 재지정 취소된 서울 소재 자사고의 청문회를 진행했다. 경희·배재·세화·숭문·신일·이대부고·중앙·한대부고 등 8곳이 대상이다. 이들 학교는 5년 주기 운영성과평가에서 재지정 기준점인 70점을 밑도는 점수를 받았다. 박건호 서울시교육청 교육정책국장은 이번 결과가 “자사고 폐지 정책을 위한 것이 아니며, 단지 5년간의 학교 운영을 법령에 따라 평가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교육부 지침에 따라 취소유예는 없다”고 전했다.

교육청의 발표로 자사고 재학생과 준비생은 혼돈에 빠졌다. 청문회 기간 교육청 앞에서는 자사고 지정취소 반대 집회가 벌어졌다. 재지정 취소된 8개 학교 학부모로 구성된 자사고학부모연합회(자학연)가 주도했다. 집회에 참여한 학부모 A씨는 “교육청이 지적한 ‘입시 위주 교육’은 자사고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모든 고등학교의 문제”라며 “교육청이 자사고에 ‘귀족 학교’ 프레임을 씌운다”고 토로했다. 학부모 B씨는 “오히려 자사고의 체계적인 동아리 운영이 아이들에게 다양한 활동 기회를 보장했다”고 말했다. 

특히 재학생들의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재지정 취소된 자사고는 내년부터 일반고로 전환된다. 신입생은 일반고, 재학생은 자사고 학생으로 분류된다. 학부모 C씨는 “일반고에서 ‘자사고생’ 신분만 유지하는 게 무슨 소용이냐”며 “선생님들 업무부터 학교 분위기까지 모두 바뀌어 아이들이 이전처럼 생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학교가 일반고로 바뀐다면 기존 교비를 내지 않겠다”며 분노했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지난 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학생 1인당 납부한 평균 교비는 2017년 결산 기준 일반고 약 280만원, 광역 단위 자사고 약 720만원이다.

자사고 진학을 앞둔 중학생들도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대치동 학원가에서 자사고 진학을 목표로 공부해 온 중학생들은 당혹감을 표했다. 강남구 일원동 중동중학교 3학년 이모(16)군은 “남은 자사고로 지원자가 몰리면 경쟁이 더 심해질 것 같다”며 걱정했다. 이어 “만약 경쟁을 뚫고 합격해도 그 학교가 계속 자사고로 유지될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강남구 삼성동 언주중학교 3학년 김모(16·여)양은 “하필이면 내가 중3일 때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불평했다.

진학 계획을 변경하기에는 고입 원서접수까지 남은 시간도 촉박하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모든 고등학교는 입학전형일시 및 전형방법 등 모집 요강을 원서접수 3개월 전인 9월 초에 확정, 발표해야 한다. ‘고등학교의 구분이 변경되는 등 특별한 사유’가 있어도 예외는 없다. 2개월이 남지 않은 시점에서 자사고의 존폐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대치동에서 수학 학원을 운영하는 김모 원장은 “자사고와 특목고를 대비하는 아이들은 보통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로드맵을 만들어 공부한다”며 “체계적으로 진학 계획을 세웠던 아이들이 불안과 혼란을 겪고 있다. 교육 정책에 일관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사고 재지정 취소 조치가 졸속으로 진행됐다고 지적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부 교수는 “한 학교에서 자사고와 일반고 두 체제가 운영되는 동안 면학 분위기가 흐트러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학년별로 아이들의 학력 수준에 큰 격차가 생긴다. 교사들이 그에 맞춰 수업 설계를 다시 해야 할 것”이라며 당분간의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송 교수는 “교육제도는 안정적이어야 한다. 교육 당국이 나서서 5년마다 학교를 흔들어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장덕호 상명대 교육학과 교수는 “고등학교 유형을 변경하려면 최소 1년에서 1년4개월의 기간을 두고 예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은 9월부터 진학할 고등학교를 선택한다. 현시점에서 자사고 지정 취소를 발표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쏠림현상’을 우려했다. 재지정 취소 자사고는 11개, 줄어드는 정원은 3000명이 넘는다. 유지되는 일부 자사고로 지원자가 집중돼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장 교수는 “남아있는 자사고로 지원자가 몰리면서 과거 경기고등학교처럼 독보적인 ‘명문고’가 탄생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사진=박태현 기자 pth@kukinews.com

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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