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의사편을 들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윤일규 의원의 말이다. 지난달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윤 의원을 만났다. 의사 출신인 그에게 ‘친 의사쪽’이 아니냐는 짖꿎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러자 “의사가 국민과 대립해선 안 된다”는 대꾸가 돌아왔다. 윤 의원은 약간 상기된 얼굴로 “국민 생명을 위해 의사가 양보해야 하며, 자신은 국민의 편”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일개미형’이라고도 했다. 이 말 자체는 다소 진부하게 여겨질 수 있다. ‘일하는 국회의원’이란 구호 자체를 내세우는 의원은 국회의원 300인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일단은 그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아직은 정치인보다 노교수의 풍모가 더 짙기 때문일까. 윤 의원은 인터뷰 직전까지 전날 기자가 보낸 질의서를 ‘열공’하고 있었다.
◇ “친의료계? No 친국민편"
- 의사 출신이기 때문에 ‘친의료계’라는 말을 들은 적 없었나.
“선입견이 있으리란 우려는 있었지만, 그런 말을 듣진 못했다. 나는 의사 편을 들지 않는다. 누구의 편을 들면 지속가능한 정책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그리고 여당에 의사 출신 하나 없이 ‘문재인 케어’를 진행하면 되겠나. 의사-국민이 충돌할 때, 나는 의사가 뒤로 물러나야 한다고 말한다. 국민 생명을 지키는 의사들을 국민들이 굶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의사와 환자, 국민이 충돌한다? 난 국민을 선택할 것이다.”
- 지난해 재보궐로 국회 입성 후 일 년이 지났다.
“지난 일 년은 일종의 ‘탐사’의 시간이었다. 국회의원이란 무엇인가란 탐사 말이다. 국회가 완전한 형태로 작동하지 못했다. 과연 국민들께 국회 기능이 정지된 상황에서 국회의원이 어떤 사회적 기여를 하고 어떠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더라. 우리사회에서 이 정도의 지지부진함을 보이는 조직은 어떤 방식으로든 수정이 가해지지 않나.
법안 발의를 상당수 했지만, 주어진 여건에서 내 역할을 한 수준이었다고 본다. 더 열심히 하면 새로운 (국회의원의) 표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국회가 정직한 직장으로써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20대 국회가 제대로 열리지 못했다.
“지역 사회 돌봄(커뮤니티케어) 등의 정책이 안착하려면 법안이 필요하다. 산적한 법안을 처리해야 하지만, 국회가 닫혀 있었다. 보건의료 분야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기술이 쏟아진다.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법안이 나와야 하지만, 세상은 흘러가는데 국회는 멈춰서 있었다. 답답했다.”
- 그래서 ‘국회의원’에 대한 본인만의 결론은 무엇인가.
“국회의원의 역할은 현실에서 개선될 점을 파악하고 토론과 자료를 수집해 합의와 조정을 통해 법안을 만드는 것이로 요약할 수 있겠다. 모두가 합의하지 않아도 의견을 수렴해 적절한 조정을 하는 것 말이다. 소위 ‘배짱이형’ 의원만 있는 게 아니라 의원회관에서 묵묵히 더 많은 일을 하는 ‘일개미’ 의원들이 그런 역할을 맡는 거겠지.”
- 본인은 일개미형 의원인가.
(웃으며) “배짱이형 의원이 대개 언론에 많이 나오던데, 언론이 나한테 큰 관심은 없는 것 같더라.”
- 그러나 정치인이라면 대중과의 스킨십도 필요한 것 아닌가.
“대중이 만나 그들의 어려움을 들어주는 것이야말로 스킨십이겠지. 정치란 게 그리 유별난 것만은 아니다. 정치는 모두의 것이다. 민주주의 절차 속에서 정부나 국회를 통해 법과 제도가 만들어지지만, 근본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는 차원에서 본다면 정치는 그리 특별치 않다는 생각이다.”
◇ “미래가 현재 흔들 수도”
- 고(故)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을 시작으로 문재인 대통령 자문의를 맡는 등 이른바 원조친노에 뿌리를 둔 친문 인사로 분류된다. 그런데 의정 활동을 보면 당정을 일방적으로 따르는 것 같진 않다.
“당은 공통적인 생각이 모인 곳이다. 지향점이 같다는 의미다. 각 의원은 지역민을 대표한다. 이를 당에 전하고 설득을 하는 것이지. 보건·복지 분야에 대해 누구보다 전문적 견해, 때로는 비판적 관점을 갖고 있다. 간혹 당과 이견이 있어도 지적과 설득을 통해 보완을 하려 했다. 지금껏 당론과 신념이 충돌한 경우는 없었다.”
- 당과 신념의 배치 시 어디에 무게를 두겠나. 소장파의 길을 선택하겠나.
“아직 결론 내리지 못했다. 아직 그런 경우가 없기도 했고.”
- 강원도 규제자유특구에서 원격의료 실시에 대해 당정청은 사실상 한 목소리다. 이것을 예로 들어보자.
“원격의료는 새로운 시대의 미래 의료행위다. 그런데 현재 의료 뿌리가 단단하지 않다. 앞선 미래 기술이 너무 빨리 오면 작금의 의료를 뒤흔들 수 있다. 의료의 본류가 혼란에 휩싸일 수 있다. 심하면 의료시스템이 붕괴될 수도 있다.
원격의료 등의 정부 사업에 대해 공급자 등의 동의를 얻기 어려운 이유는 신뢰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이를 조정하는 게 정치다. (강원도 원격의료 실시에 대해) 적잖은 위험성이 있다는 우려를 피력했고, 상당부분 조정이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당론을 따르되, 불의한 것이냐 아니냐가 핵심이다.”
- 고(故) 임세원 교수 사망사건과 관련해 사법입원 등 의료계 일각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윤일규 의원은 관련 내용이 포함된 ‘임세원법’을 대표발의했었다)
“사법입원은 인권의 문제다. 개념과 사회, 제도가 준비돼 있지 않다. 적정 치료가 필요하고, 환자들이 걱정하는 인권 보호를 우리사회가 보장토록 하자는 게 사법입원이다. 우리사회의 인권감수성은 높지 않다. 이번에 국회 통과가 어렵지만, 화두를 던져놓았기 때문에 물꼬가 열린 것으로 예상한다.”
- 최근에 관심을 두고 있는 보건의료, 복지 사안은 무엇인가.
“정신질환자의 지역 사회 복귀를 돕는 것이나 슬럼화된 요양병원의 기능을 조정하려면 근거 법이 필요하다. 커뮤니티케어 안착을 위해 현행법의 한계도 개선해야 한다. 이와 함께 지역의 정신건강관리, 치매 등 만성 환자 관리 등에 관한 기능 효율 극대화를 법을 통해 보장해야 한다.
보건의료 분야가 4차 산업에 가장 영향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성장’이라는 이유로 인보사처럼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감시해야 한다. 우리 의료제도를 어떻게 이끄느냐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