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진→반발→철회… 정권마다 기웃거린 '원격의료' 도돌이표

추진→반발→철회… 정권마다 기웃거린 '원격의료' 도돌이표

규제특구내 실시 앞두고 의료계·시민사회 폭풍전야

기사승인 2019-08-09 00:01:00

원격의료를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됐다. 

발단은 중소벤처기업부가 총괄해 진행될 규제자유특구 범부처 사업이다. 규제특구 중 강원도에서 원격의료를 실시키로 한 발표 이후 시민사회와 의료계는 한 목소리로 결정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원격의료를 추진하려한다는 조짐은 이전부터 있었다. 지난해 8월 문재인 대통령은 여야 5당 원내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원격의료 도입을 거론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전 정부에서 국민적 저항이 있었던 것을 의식한 듯 의료민영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순기능’을 발휘토록 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후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인과 환자간 원격의료를 허용하겠다고 말했다가 비난 여론에 휩싸여 결국 철회하고 만다.  

원격의료는 각종 정보기기를 통해 원격으로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것을 말한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간 원격의료만을 허용하고 있다. 의사-환자 사이의 원격의료 허용 법안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 갈등의 19년

원격진료의 기원에 대해 냉전시대 미소 간 우주경쟁이 이뤄지던 1960년대 초 우주비행사의 건강 상태를 확인한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이후 이 기술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인디언 보호구역의 원주민에게 원격의료를 시행하는 데 적용하며 미국 내 원격의료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원격의료는 지난 2000년 국민의정부가 시범사업을 추진한 이래 계속 시범사업 형태로 진행돼 왔다. 이명박 정부는 3년간 3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해 스마트케어 시범 서비스라는 시범사업을 실시했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는 강력한 원격의료 드라이브를 밀어붙였다. 하지만 병원 부대사업 전면 확대와 영리자회사 허용을 강행, 의료영리화에 빗장을 열며 국민적 저항에 직면한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과 시민사회, 의료계는 박 정권의 원격의료 사업 추진을 ‘실패한 정책’, ‘재벌 돈벌이’ 등으로 비판했고, 이후 원격의료 사업도 급격히 위축됐다.

현 정부 들어 복지부는 스마트진료 등 이름을 바꿔 시범사업을 시행해오다 이번에 본격적으로 원격의료 추진 의사를 밝히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박능후 장관은 국회 복지위 업무보고에서 “원격의료와 스마트진료가 정치적 공방 때문에 발전 자체가 미진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대면진료가 근간인 의료의 본연을 해친다며 반대 입장을 펴왔다. 시민단체는 원격의료를 재벌의 돈벌이에 악용되는 사실상 의료민영화의 전단계로 규정하고 있다. 매번 논란이 되는 이유 중 설득력을 얻는 것은 원격의료가 우리나라의 척박한 공공의료와 대척점에 있기 때문이다. 무상의료운동본부 등 시민사회단체는 의료접근권 환상은 외피이며, 그 안에는 상업적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경고한다. 사업의 실제 수혜자는 환자라기보다 원격의료제반 시설 업체라는 것이다. 

이번에도 논란은 여전하지만 정부는 규제특구내 원격의료를 각종 수치를 들어 시행 필요성을 강조한다. 대표적으로 내세운 것이 매출 390억원과 230명의 고용 창출 등 ‘경제효과’이다. 이에 대해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은 “정부가 원격의료에 대한 장밋빛 환상을 갖고 있다”고 일축했다. 이어 “철저히 기업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라며 “원격의료 시행을 위해서는 관련 네트워크와 장비가 투입되고 이것은 관련 업체들의 이익과 직결된다”고 비판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윤일규 의원도 급격한 원격의료 실시가 현재의 의료시스템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현재 의료 뿌리가 단단하지 않다”며 “미래 기술이 너무 빨리 오면 현 의료체계를 흔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관계자는 “여러 시범사업에서 의사간 협진을 했기 때문에 민간 영역에서 실증을 하는 것으로 봐 달라”며 “규제자유 특구 지정 과정이 오랜 기간 관계 부처 간 논의가 있었고, 현재 중기부가 사업 총괄을 맡고 있지만 복지부가 사후관리 및 검증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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