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조커’는 어떻게 코미디언에서 혁명가가 됐나

[쿡리뷰] ‘조커’는 어떻게 코미디언에서 혁명가가 됐나

‘조커’는 어떻게 코미디언에서 혁명가가 됐나

기사승인 2019-10-02 07:00:00


흔한 이야기다. 최고의 코미디언이 되고 싶지만 재능이 없고 사회생활마저 서툰 주인공은 다니던 극장에서 쫓겨난다. 아픈 어머니를 돌봐야 하고, 좋아하는 이성은 그에게 관심이 없다. 아무 희망도 발견할 수 없는 가난하고 우울한 극빈층의 삶을 가까이에서 리얼하게 그린 영화. 평범하고 지루한 주인공이 ‘조커’가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흔하지 않은’ 이 영화는 올해 열린 제 76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다.

‘조커’는 DC 코믹스 ‘배트맨’ 시리즈에 등장하는 악당 조커의 탄생 서사를 그린 반영웅 영화다. 코미디언을 꿈꾸는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가 겪는 직업적인 좌절과 고민, 스트레스가 폭발하는 과정을 섬세하고 설득력 있게 전개한다. 그가 벌인 살인이 납득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영화는 본격적으로 달려가기 시작한다. 그 목적지는 탄탄한 논리와 광기, 흥겨움을 갖춘 시대의 혁명가 조커다.

‘조커’는 영화 내내 극단적인 대비를 강조한다. 뇌 신경 손상 때문에 언제든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고통, 누군가를 웃기는 직업과 웃을 수 없는 현실, 친구 한 명 없는 외로움과 무대에 쏟아지는 관객들의 환호. 영화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인 아서를 통해 그가 겪는 모순을 극대화한다. 모순이 주는 고통을 없애기 위해 등장한 것이 조커라는 새로운 자아다. 조커가 처음부터 아서 내면에 존재하던 실체인지, 아서가 만들어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아서는 조커의 자아가 진실이라고 믿고 그 삶을 선택한다. 조커의 광기가 태어난 배경이다.

‘조커’에서 가장 놀라운 지점은 개인의 이야기를 사회의 이야기와 연결하는 접근이다. 사실 아서가 겪는 고통과 고민은 그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가 충동적으로 벌인 범죄는 사회적인 상징성을 갖는다. 행동에 대한 해석이 행동 자체를 뒤덮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아서가 조커가 되길 선택하는 것처럼, 고담시 시민들 역시 폭동을 선택한다. 가짜 사회 속에서 죽어가던 가짜 시민들은 진짜 사회를 만드는 진짜 시민이 된다. 그렇게 조커는 ‘우리는 모두 광대다’라는 슬로건의 주인공이자 시대를 상징하는 혁명가가 된다.

히어로 영화 속 매력적인 악당이 갖고 있는 흥미로운 지점과 개인의 삶과 사회적 모순을 뒤쫓는 진지함이 만났다. 그 결과 예술 영화와 상업 영화의 성취를 모두 이뤄낸 작품이 탄생했다. 그 한가운데엔 추락하는 코미디언과 광기의 살인마를 오가는 배우 호아킨 피닉스의 열연이 존재한다. 호아킨 피닉스는 과거 조커 역할을 맡았던 잭 니콜슨과 히스 레저와는 또 다른 해석으로 영화의 깊이를 더한다. 조커 역할이 늘 그래왔듯 ‘조커’에서도 배우의 연기는 영화의 톤을 결정짓는 동시에 압도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2일 개봉. 15세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영화 '조커'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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