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정부가 발표한 ‘고위험(고난도)’ 상품 판매규제를 두고 혼란에 빠졌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투자자의 이해가 어렵고 원금손실 가능성이 20~30% 이상인 사모펀드와 신탁 상품의 은행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판매금지에 나설 은행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상품을 판매중단해야 하는지 모르는 모습이다.
16일 금융위에 따르면 은행의 판매가 제한되는 고난도 사모펀드·신탁 상품의 구체적인 기준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금융위 관계자는 “앞서 발표한 기준은 방향성을 의미한다”며 “아직 은행의 판매를 금지할 상품의 구체적인 기준은 마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지난 14일 은행은 원리금보장상품 중심 취급기관이라며 투자자가 이해하기 어렵고, 원금손실 가능성이 20~30%를 넘어서는 고난도 사모펀드 및 신탁 상품의 판매를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은행이 스스로 고난도 상품을 설정하고 판매를 중지하도록 주문했다. 고난도 상품에 대한 방향성만 존재할 뿐 구체적인 기준이 없는 상항이다.
이에 은행들은 어떤 상품을 판매금지 해야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특히 신탁상품을 두고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A은행 관계자는 “실무부서에서는 사실상 주가연계펀드(ETF)와 주가연계증권신탁(ELT) 등의 판매가 중단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며 “해당 상품들의 판매가 중단되면 한해 2000억원 내외의 비이자이익 수익이 줄어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당 부서에서는 이에 따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비상이 걸렸다”고 덧붙였다.
반면 B은행 관계자는 “판매가 중단되는 ETF와 ELT 상품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라며 “정부의 이번 대책으로 은행의 수익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생각보다 규제강도가 높지 않다”고 밝혔다.
은행의 반응이 서로 엇갈린 것은 정부가 판매를 금지하는 상품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A은행은 원금손실 가능성이 20~30% 이상 신탁상품에 ETF와 ELT 등을 모두 포함했고, B은행은 일부 상품만 포함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금융위의 이번 대책으로 감소할 은행권의 순익도 몇천억에서 수조원으로 ‘들쑥날쑥’ 추정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은행이 자체 분류를 통해 고난도 상품 판매중지에 나서기 위해서는 당국의 구체적인 '판매금지 가이드라인'이 나올 필요가 있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C은행 관계자는 “지금 나온 내용을 가지고 판매가 금지될 상품을 구체적으로 분류하기는 어렵다”며 “당국의 싸인을 기다려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구체적인 기준 없이 은행의 자체판단을 통해 고위험 상품의 판매를 중단하라는 금융위의 결정을 두고 불만도 나오고 있다.
D은행 관계자는 “구체적인 기준도 없이 자체적인 판단을 통해 판매를 중지하라는 것은 은행의 혼란을 불러올 수 밖에 없다”며 “아직 규제가 시행된 것은 아니지만 당국이 발표할 때부터 완성된 대책을 발표했으면 은행의 혼란도 적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