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라스트 크리스마스’ 트리에 훈계만 주렁주렁

[쿡리뷰] ‘라스트 크리스마스’ 트리에 훈계만 주렁주렁

‘라스트 크리스마스’ 트리에 훈계만 주렁주렁

기사승인 2019-11-30 06:00:00

즐거운 영화를 보려고 찾은 극장에서 공익광고를 만난다면 어떤 기분일까. 영화 ‘라스트 크리스마스’(감독 폴 페이그)를 보다보면 수다스러운 공익광고가 떠오른다. 영화는 인종 차별, 난민 혐오, 빈곤 문제, 여성 문제, 동성애 이슈까지 수많은 사회 문제를 나열한다. 사회적으로 논의 가치가 있는 문제들을 연말 로맨틱 코미디 상영관에서 만나는 건 당황스러운 일이다.

‘라스트 크리스마스’는 가수를 꿈꾸는 크리스마스 소품점 직원 케이트(에밀리아 클라크)가 꿈과 사랑을 좇는 이야기다. 케이트는 유고슬라비아 출신 난민으로 영국에서 가난한 생활을 한다. 크리스마스 소품점에서 일하는 케이트는 가수가 꿈이지만 오디션에 떨어진다. 술과 남자를 좋아하며 외박을 일삼는다. 케이트는 우연히 만난 노숙자 센터 봉사자 톰(헨리 골딩)의 영향으로 점차 바른 생활을 하게 된다. 케이트는 톰에게 호감을 표현하지만 톰은 번번이 자취를 감춘다.

매년 연말 등장하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의 설정을 ‘라스트 크리스마스’도 충실히 따른다. 케이트는 산만하고 부주의하지만 사랑스러운 여자다. 그는 가난하지만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다. 톰은 선하고 모범적인 행실의 자상한 남자다. 둘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가득한 런던 거리를 산책하며 추억을 쌓는다. 영업 종료된 아이스 스케이트장에 숨어들어가 함께 스케이트를 탄다. 톰은 케이트의 짜증을 받아주고, 상처를 보듬고, 철이 들게 한다.

로맨스의 진부함이 꼭 단점으로 작용하는 건 아니다. 문제는 정의로운 메시지가 약 15분 간격으로 계속 끼어든다는 점이다. 영화는 어머니께 착하게 굴어야 하고, 이민자에게 혐오표현을 하면 안 된다며 관객들을 타이른다.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들을 돌볼 것, 개인의 성청체성을 존중할 것 등 새롭지 않은 교훈도 반복된다. 개연성 없이 등장하는 교과서적 장면들은 진부한 서사마저도 집중하기 어렵게 만든다.

폴 페이그 감독의 전작에 나타나는 호감 요소도 ‘교훈 남용’으로 무력화됐다. 기존 영화에서 주로 남성으로 채워졌던 사장, 여성 경찰, 의사, 변호사 등의 캐릭터가 모두 여성으로 등장한다. 주인공은 백인이지만 친구들은 중국, 인도, 아프리카 출신 등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됐다. 페미니즘에 대한 소신을 밝히는 대사도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라스트 크리스마스’에서는 많은 교훈들이 주인공들의 대사를 통해 직접 제시된다. 교훈에 교훈을 더하는 건 애초의 선한 의도와 달리 관객들에게 피로감만 더할 뿐이다.

영화는 ‘어쨌든’ 행복한 크리스마스로 막을 내린다. 결국 케이트는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고, 그의 엄마는 우울감에서 벗어났다. 모두가 어우러지는 축제와 함께 영화가 어지럽게 늘어놓은 파편적인 교훈과 진부한 로맨스, 성장 서사는 급하게 봉합됐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서 나올 수 있는 영화다. 5일 개봉. 12세 관람가.

한성주 인턴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