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김지영들에게... 2019년 살만했나요?

전국의 김지영들에게... 2019년 살만했나요?

2019 여성 분야 5대 뉴스

기사승인 2019-12-18 00:01:00

지난해 이맘때 쓴 기사는 이렇게 마무리됐다. “다가올 2019년, 여성들의 일 년은 안녕해질까”. 질문은 유효하다. 내년 2020년 여성들의 일 년은 조금은 더 안녕해질까. 올 한해 국내외 여성 분야 5대뉴스를 선정했다. 

①서른넷 핀란드의 세계 최연소 여성 총리= 핀란드 사회민주당의 산나 마린 의원이 지난 10일 총리로 공식 선출됐다. 산나 총리는 전 세계 최연소 총리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뿐 아니다. 핀란드는 19개 장관직 중 12개에 여성을 임명했다. 재밌는 사실은 오스트리아에서 제바스티안 쿠르츠 전 총리가 마린 총리의 기록을 머지않아 깰 수 있다는 사실. 

최근 유럽에서 여성 정치인의 뚜렷한 족적은 환갑(혹은 일흔)을 훌쩍 넘어선 우리나라와 대비된다. 평균 연령 55.5세, 남성 83%라는 수치가 보여주는 우리 정치권의 견고한 유리천장. 21대 국회가 성평등 국회가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②그녀들이 마지막 저항, ‘탈의’=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이 탈의시위에 대한 우리 언론의 고의적 외면 혹은 암목적 무시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 직접고용 자회사 정책 폐기를 위한 시민사회 공동대책위’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점거농성이 시작된 지난 9월9일부터 경찰과의 대치는 갈수록 강도를 더해갔다. 

그달 12일 경찰의 강제연행을 막기 위한 여성 노동자들의 상의탈의에 대해 경찰들은 비웃음과 성희롱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 노동자가 경찰로부터 들었다는 다음의 말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현실이 어떤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예쁘지도 않은 얼굴을 왜 쳐다보냐.” 

③‘여전히 폭력적’= 최근 방한한 캐서린 매키넌 미국 미시간대학 교수는 한국의 성착취 문화(혹은 구조)에 대해 “놀랍다”고 표현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페미니스트들을 “나비효과를 일으킬 거대한 나비”라고 표현, 노고를 높이 샀다. 또 폭력과 비동의 불법 촬영 영상, 그리고 온갖 성차별적 악플에 고통을 호소하던 고(故) 구하라씨의 죽음에 대해 매키넌 교수는 반문한다. “왜 그는 죽게 되었나”라고. 

고인을 절벽으로 밀어붙인 이유는 언론(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도 한 몫 했다. 죽음 이후에도 탈 코르셋 운운하던 무책임한 보도는 우리나라에서 성폭력 생존자를 바라보는 언론 그리고 남성 중심의 시각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반증한다. 관련해 대중문화 웹매거진 ‘아이즈’의 휴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아이즈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무엇인가 말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고인과 남아있는 사람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④굿바이 '히잡'=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 무슬림 문화권에서 최근 유의미한 움직임이 진행 중이다. 사회관계망(SNS)를 중심으로 여성 억압의 상징인 ‘히잡’을 벗거나 검은 색 히잡 대신 흰 히잡을 쓰는 움직임은 이란판 ‘미투’로 불렸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얼굴 전체를 가리는 니캅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무슬림의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에서 이러한 저항은 직장을 잃거나 체포될 수 있는 위험을 감내해야 한다. 기자가 팔레스타인 라말라에서 만난 여성 활동가 라마씨는 무슬림내 여성 권익 신장 운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샤리아(이슬람 율법·규범체계)에 따라, 남성은 여성보다 곱절 이상의 상속을 받습니다. 여성 상속은 절반에 불과하죠. 항상 남성이 우선되고, 여성은 뒷전이죠. 우린 이런 불평등을 당사자인 여성들이 제대로 인식하도록 열심히 알리고 있어요.” 어렵지만, 작지만 큰 발자국을 내딛은 이들의 용기에 박수를!

⑤그리고 전국의 김지영들을 위해=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우리사회에 잔잔하지만 거센 페미니즘 바람을 몰고 왔다. 원작 소설은 100만부 이상이 팔려나갔고, 일본과 대만에서도 출간됐다. 원작의 인기에 힘입어 올해 개봉한 영화는 이른바 평점 테러를 포함해 주연배우 정유미에 대한 악플 세례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는 입소문을 타고 흥행에 성공했다. 

82년생 김지영은 우리사회에 젠더 문제를 잔잔하지만 거세게 제시한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되었다. 영화를 본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의 삶은 달라진 게 없나 싶었다.” ‘내 이야기 같다’며 영화 시작부터 눈물을 펑펑 쏟은 전국의 김지영씨들에게 내년은 어떤 한 해가 될까. 대답은 내년 이맘때로 미뤄둔다. 당장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삶이란 아직 녹록치 않으므로.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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