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국회는 ‘국민 닮은 국회’를 만들자며 국회의원의 대표성과 비례성을 높이기 위해 정당득표율과 연동해 정당별 비례대표 의석을 할당하는 일명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꾀하고 있다. 정치권은 “선거법 개정은 시간문제”라는 입장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관측이 흔들리고 있다.
이유는 정당의 유·불리를 좌우할 ‘석패율’과 ‘연동형 캡(상한석)’으로 불리는 개념들이 선거법 개정논의 과정에서 핵심쟁점으로 부상하며 공고해 보였던 정치세력간 연대에 균열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 연동형 캡, 합의는 됐다지만 논란은 ‘여전’=19일 현재까지 ‘도입불가’ 입장을 피력한 자유한국당과 일부 보수단체를 제외한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에서 논의된 내용에 따르면, 일단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250명과 노동·환경·여성·청년 등 직능과 계층 등 소수지만 사회구성원의 신념을 대표하는 비례대표 50명을 뽑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여기서 비례대표 의석수 중 연동률을 적용하는 상한을 의미하는 ‘연동형 캡’ 개념이 더해졌다. 18일 ‘4+1 협의체’에서 민주당을 제외한 ‘3+1’ 야권연대는 민주당이 제안한 ‘연동형 캡(상한선)’을 30석 수준에서 받아들이기로 하고 합의문을 내놨다. 민주당 또한 연동형 캡에 대한 합의내용은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비례대표 50명 중 20명은 기존 선출방식에 따라 정당득표율 만큼 의석을 배정하고, 나머지 30석은 정당득표율과 지역구 의석수를 감안해 50%의 연동률을 적용해 배분하는 형태로 선거제도가 개편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석패율이다. 민주당은 18일 오후 의원총회를 거쳐 석패율제 도입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연동형 캡과 석패율이 결합할 경우 선거법 개정취지가 퇴색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19일 오전 정책조정회의에서도 “석패율제 재고를 요청한 것은 조금이라도 있을 수 있는 반(反)개혁의 여지를 없애야 하기 때문”이라며 “현역의원의 기득권 보호수단으로 이용될 소지가 없는지 성찰하고 국민의 눈으로 봐야 한다”고 ‘4+1 협의체’ 내에서 시간을 갖고 원점에서 다시 논의해보자고 제안했다.
◇ 4+1 해체 뇌관 된 ‘석패율’… 정당들 달라진 셈법=갑작스레 쟁점의 중심이 된 석패율제는 한마디로 정의하면 지역구 선거에서 ‘애석하게 패한’ 이들을 비례대표로 구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는 당초 지역주의를 완화시키려는 취지에서 2000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됐던 방안이다.
이같은 주장을 2012년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2016년 총선 때는 민주당이 해왔다. 영남에 출사한 진보인사가 근소한 표차로 떨어질 경우 그를 비례대표로 살려 지역주의를 일부나마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서다.
반대로 소수정당들은 이들의 요구를 꾸준히 반대해왔다. 대부분의 지역선거에서 1등과 2등을 민주당과 한국당(제1야당)이 차지하는 상황에서 석패율제를 도입할 경우 지역주의 완화보다 거대 양당의 기득권이 더욱 강화되는 폐해가 발생할 것이란 우려에서다.
그렇지만 최근 ‘4+1’ 협의과정에서 살펴보면 오히려 민주당은 석패율제 도입을 반대하고, 여타 군소야당이 이를 받아들이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를 두고 정치권은 “정치상황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실제 민주당 후보가 영남에서도 당선되는 등 정당의 전국화 현상이 나타나며 상대적으로 ‘지역주의 타파’라는 석패율 도입취지는 약화됐다고 평가된다. 아울러 20대 국회에서처럼 제3당의 등장과 활동이 활발해지며 다당제로의 권력분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이유로 제시된다.
반면 유력 정치인의 자리보전용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약점은 그대로다. 더구나 연동형 캡과 결합돼 권역별로 1~2명이 구제될 경우 30석 중 18석만을 연동형 비례대표로 뽑게 돼 기존 선거보다 비례성과 대표성을 오히려 약화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란 우려까지 대두됐다.
이에 민주당은 중진·유력 정치인의 권력유지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기존 입장을 뒤집고 석패율제 도입을 ‘개혁의 역행’이자 ‘개악’이라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군소정당들 또한 양당제를 깨고 소수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는 다당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비례대표의 대표성과 전문성 강화를 훼손할 우려가 있음에도 석패율제 도입을 주장하는 상황이 됐다.
◇ 선거법 개정 후 21대 국회서 제3당 ‘정의당’ 볼 수도=이와 관련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선거법 논란이 계속되곤 있지만 어쨌든 여당은 민주당, 제1야당은 한국당이다. 의원수 변화도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며 “21대 총선에서 개정선거법을 적용하려는 야당의 바람이 여당보다 큰 만큼 석패율 적용범위제한이나 순번제한 등의 절충안이 다시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상황을 전망했다.
이어 “다만 선거는 게임의 룰(규칙)이다보니 페이퍼정당이니 위성정당이니 하는 편법이나 반칙을 최대한 막기 위해 다양한 경우의 수를 다투는 과정이 일부 추가될 수도 있다. 더구나 우세를 잡으려는 군소정당들이 공수처법 등 다른 부분에서 문제제기를 할 수도 있어 시일이 좀 더 걸릴 것”이라며 “그래도 조만간 합의점을 찾지 않을까 한다”고 부연했다.
그렇다면 이대로 선거법이 개정될 경우 21대 총선은 어떤 결과가 나올까.
지난 16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한 정당지지율을 토대로, 지역구 250석에 비례대표 50석 총 300석으로 의원정수를 고정한 가운데 비례대표 30석에 대해 50% 연동률을 적용해 서울신문은 19일 내놓은 분석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은 143석, 한국당은 109석, 정의당은 16석, 바른미래당은 17석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관측했다.
만약 같은 조건에서 쿠키뉴스 의뢰로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C&I)가 발표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시 정당지지율’을 반영했다면 의석수에서는 더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민주당은 41.2%, 한국당은 29.5%, 정의당은 6.5%, 바른미래당은 4.8% 등으로 조사된 반면 조원C&I에서의 결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조원C&I가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사흘간 전국 유권자 1002명에게 연비제 도입을 전제로 ‘정당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당이 29.1%로 가장 높았고, 뒤를 이어 민주당이 28.8%, 정의당이 12.4%를 보였다. 여기에 오는 5일 신당창당을 공식화한 새로운보수당이 7.5%로 3.4%의 지지를 보인 바른미래당을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이 경우 정의당은 제3당으로의 도약도 꿈만은 아닐 것이란 분석이 가능하다. 반대로 과반도 가능하다고 내부적으로 낙관해온 민주당은 비례대표 의석의 상당수를 정의당 등에게 양보하며 한국당과 비슷한 8~9석 전후를 선출하는데 그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좀 더 시일이 필요한 선거법 합의까지 정치권의 복잡한 수 싸움이 전개될 전망이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