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구현화 기자 = 5G 요금제에 가입해 월 6만원대를 내고 있는 김모(38·남)씨는 지난달 알뜰폰 요금제가 저렴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순간 혹했다. 김씨는 5G 알뜰폰 요금제가 절반가격인 월 3만원대로 낮춰졌다는 이야기에 가입요건을 알아봤다.
그러나 데이터 혜택 등을 따져보면 지금 요금제보다 크게 저렴하지 않은데다 지금 들고 있는 통신사 결합상품을 해지하고 위약금을 물지 않고는 사실상 옮기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됐다.
김씨는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선택약정 할인으로 쓰고 있는데, 알뜰폰이 생각보다 데이터가 적고 많이 싸진 않았다"며 "게다가 부부끼리 쓰고 있는 휴대폰과 IPTV, 인터넷 약정이 2년이나 남았는데 결합의 노예라서 이동의 자유가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김씨처럼 알뜰폰 요금제에 관심이 있으면서도 못 옮기는 이들이 많다. 알뜰폰 요금제가 기본적으로 크게 저렴하지 않은 데다 이미 결합할인이나 부가서비스 등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이동전화 서비스 가입자는 알뜰폰을 포함해 총 6906만명으로 집계됐다. 이중 5G 가입자는 536만으로 전월보다 40만명 가량 증가했다. 그러나 5G 알뜰폰 가입자는 단 318명에 불과했다.
이는 대부분의 5G 가입자가 알뜰폰 사업자가 아니라 통신3사를 택했다는 것이다. 가입자수 대비로 보면 5G 알뜰폰 가입자가 5G 전체 가입자의 0.004% 수준이다.
◇ 알뜰폰 요금제, 생각보다 싸지 않네
5G 알뜰폰 가입자가 크게 늘지 않는 것은 우선 5G 알뜰폰의 요금제 가격이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 첫째 이유로 꼽힌다. 알뜰폰의 경우 현재 데이터 8~9GB를 제공하는 요금제는 3만원대 후반, 데이터 200GB를 제공하는 요금제가 6만원대 초반으로 형성돼 있다.
5G 알뜰폰의 월 3만원대 요금제를 보면 데이터 8~9GB를 제공한다. 최근 LG유플러스망을 빌린 에넥스텔레콤이 9GB에 월 3만6300원의 업계 최저가 요금제를 내놨다. LG헬로비전도 9GB를 제공하는 5G 라이트 유심이 3만9600원, KT엠모바일은 데이터 8GB를 제공하는 5G슬림M 요금이 월3만9100원이다.
이는 이통3사의 5G 요금제와 비교하면 월 1~2만원 정도 저렴한 수준이다. SK텔레콤과 KT는 8GB를 제공하는 요금제가 월 5만5000원, 유플러스의 경우 9GB를 제공하는 요금제가 월 5만5000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5G 이용자 중 이 같이 적은 데이터 요금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5G 가입자의 경우 대부분 5G의 빠른 속도로 고용량 데이터를 이용하기 위해 가입한 경우가 많다. 적은 데이터를 이용하려면 5G보다는 LTE 요금제가 훨씬 더 다양하고 저렴하다. 통신사의 LTE 요금제로는 월 4만원대의 요금제를 사용할 수 있고, 알뜰폰 LTE 요금제를 이용하면 무려 2만원대로 이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용량 데이터를 제공하는 알뜰폰 6만원대 요금제는 어떨까. 업계 최저가 수준인 에넥스텔레콤이 내놓은 'A 5G 스페셜’은 월 6만500원에 음성·문자 무제한과 데이터 180GB를 제공한다. 200GB를 제공하는 헬로비전 헬로모바일의 5G 스페셜 유심은 월 6만6000원이다. 같은 200GB 데이터를 제공하는 KT엠모바일 스페셜M요금제는 월 6만2700원이다.
통신사 요금제와 비교해보면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150GB를 제공하는 요금제(각각 5GX 스탠다드, 5G스탠다드)가 월 7만5000원이며 그 이상은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다. KT의 경우 데이터 완전 무제한 요금제가 월 8만원부터 시작하고, SK텔레콤은 월 8만9000원, LG유플러스는 월 8만5000원부터 시작한다.
일견 가격차이가 크게 나 보이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만약 소비자가 매월 요금의 25%를 할인하는 선택약정을 적용했다면 월 8만원대의 통신사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월 6만원에 이용할 수 있다.
만약 소비자가 SK텔레콤의 8만9000원 요금제에 가입하고 선택약정을 신청하면 2만2250원 적은 6만6750원을 내면서 무제한 요금제를 이용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알뜰폰을 쓸 유인이 현저히 줄어든다.
◇ 통신사의 강력한 결합정책과 리베이트...알뜰폰 들고 싶어도 못 든다
물론 처음에 폰 값만 할인받고 선택약정으로 가입하지 않은 소비자의 경우라면 월 요금이 조금이라도 저렴한 알뜰폰을 고려할 만하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이미 통신사 결합에 단단히 묶여 있다면 쉽게 이동할 수 없다. 무선과 유선, 인터넷을 하나로 묶은 통신사 결합상품은 기존 케이블TV의 유료방송과 알뜰폰 양쪽을 모두 고사하게 한 강력한 무기가 됐다.
통신사들은 무선과 유선, 인터넷을 연결하면 전체 금액보다 1만원에서 최대 3만원 가량 금액을 낮춰 제공한다. 통신사가 필요한 걸 모두 제공해주는 결합상품에 가입하면 약정기간인 3년동안 꼼짝없이 휴대폰, TV, 인터넷을 바꿀 수 없다. 3년에 한 번씩 바꿀 수 있는 주기가 돌아오게 되는 셈이다.
통신사도 할 말은 있다. 고객이 휴대폰과 TV, 인터넷을 각각 찾아 설치하려면 비용과 품이 들어간다. 예컨대 케이블TV의 경우 설치 가능한 지역인지 따로 상담사와 상담을 통해 알아봐야 한다. 또 무선 와이파이 공유기도 공유기별로 속도와 가격대가 천차만별이고 제품마다 강점이 다르기 때문에 사기가 쉽지 않다. 통신사를 이용하면 고품질의 서비스를 편리하게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통신사 결합상품에 한 번 결합하면 여러 사람이 동일 회선에 묶이기 때문에 다른 통신사로 한꺼번에 옮기지 않는 이상 자유로운 이동도 불가능해진다. 사실 최근 케이블TV가 통신사로 합병되는 모습은 이런 강력한 '결합' 상품에 밀린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알뜰폰도 다양한 케이블TV나 동영상 서비스 등과의 결합상품을 고려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서로간 치열한 가입자 뺏기 싸움을 하고 있는 통신3사로서는 알뜰폰에 고객을 뺏기는 게 달갑지는 않다. 알뜰폰으로 가입자를 한명 뺏기면 TV나 무선인터넷 고객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알뜰폰 가입자에게 통신사들이 리베이트 금액을 얹어주면서 자사 결합상품으로 오기를 유도하는 것도 알뜰폰 가입을 막는 하나의 요소다.
일부 이통사들은 지난달 알뜰폰에서 5G로 가입자를 유치하면 일반 번호이동보다 높은 최대 20만원 수준의 리베이트를 추가 제공하며 고객을 빼가기도 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구두 경고를 주며 제지하고 있지만, 경쟁이 치열한 만큼 리베이트가 금액만 줄어들 뿐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알뜰폰을 늘리고자 하고 있지만, 실제로 통신사가 달갑지는 않을 것"이라며 "치열한 고객 싸움을 벌이고 있는 통신3사로서는 고객을 뺏기는 것 자체가 타격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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