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지에 발목 잡힌 대학생 정치참여… 이유는 ‘돈’

주소지에 발목 잡힌 대학생 정치참여… 이유는 ‘돈’

정부, 주민세·건보료 면제 등 제도개선 했지만… 현실적 해법되기엔 ‘제한적’

기사승인 2020-04-18 05:00:00

[쿠키뉴스] 조현지 기자 =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A씨는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관내선거인으로 투표하기 위해 주소지 이전을 고민했다. 이름도, 공약도 모르는 주민등록상 거주지 후보에 투표하기보다 실제 살고 있는 지역 후보를 뽑아 대학생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다. 하지만 옮기지 못했다. 주소지를 옮겨 단독세대주가 될 경우 주민세가 생긴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A씨의 고민은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다. 서울 소재 대학교에 재학 중인 B씨(24, 여)는 “기숙사 신축과 관련해 투표권이 없어 무시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학생들 사이에서 주소지를 옮겨 힘을 싣자는 의견이 있었다. 그렇지만 세금을 내야한다는 말이 있어 그냥 포기했다”고 밝혔다.

경기권 대학을 다니며 자취를 하고 있는 C씨(25, 남)도 비슷한 생각을 전했다. 그는 “이번에 총선도 있고 졸업할 때까지 계속 여기서 자취를 할 생각이라 주소지를 옮기려했다. 그런데 부모님과 주소지가 분리될 경우 세금에 더해 건강보험료 같은걸 직접 내야할 수도 있다고 해서 옮기지 않았다. 어떤 걸 내야하는지도 잘 몰라 불안했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이 ‘세금 불안’으로 인해 주소지 이전을 망설이고 있었던 것이다. 잘 알려지지 않는 정보도 불안함을 증가시키는데 한 몫 했다. 그 결과 대학생들은 이를테면 ‘서울 사는 대구 유권자’가 됐다. 거주하지도 않는 지역구 후보에게 투표하게 됐고, 청년정책을 요구하려던 대학생들의 한 표는 휴지조각과 다를 바 없어졌다.

◆힘없는 대학생들의 목소리, 정치권의 말 뿐인 청년공약 = 그간 대학생들은 등록금 폐지, 기숙사 신축, 터무니없이 비싼 월세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왔다. 배움을 찾아 대학에 온 만큼 돈 걱정 없는 환경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목소리를 내왔다. 하지만 앞으로도 대학생들의 주거비 부담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 내 대학이 모인 서대문갑, 광진을, 동작을, 성북갑 네 지역구 주요 당선인들의 공약을 분석해본 결과, 대학생 주거비 부담 완화를 위한 정책은 찾기 어려웠다. 원룸·단독세대의 거주환경개선만 존재할 뿐, 주거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은 마련돼 있지 않았다. 동작을 이수진 당선인의 '동작주차공원 내 청년주택 건립'이 사실상 전부였다.

이같은 상황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아주대학교는 기숙사 거주 학생들의 주소이전을 독려하는 캠페인도 진행했다. 하지만 이들의 움직임은 시도로 그치고 말았다. 캠페인 취지에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일부 학생들의 반발로 동참을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도적 지원 없이 학교 자체적인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던 셈이다.

이와 관련 김성수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4·15 총선에서 청년 비례후보자 추천, 청년벨트 지정 등 젊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이 보였다. 그러나 결과를 보면 보여주기 식이었다”고 평했다.

이어 “현실적인 고민과 현실 정치에 대한 실망감이 정치 무관심을 키웠다. 그나마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청년들의 목소리를 전할 방편이었지만 그마저도 실패했다. 지금으로는 말뿐인 청년위원회나 의견개진이 아닌 행동이 필요하다. 시·도의회에도 참여해 실거주자들의 목소리를 표출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면제된 주민세, 그럼에도 여전한 ‘세금 불안’ = 그나마 세금 불안으로 주소지를 옮기지 못했던 대학생들의 고민은 일부나마 줄어들 수 있게 됐다. 2019년 6월부터 행정안전부에서 30대 미만의 주민세를 면제해서다. 다만 대다수의 대학생들은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행안부는 지난해 6월 주민세 면제를 위한 ‘지방세법’ 개정하며 “미성년자와 학업·취업준비생 등 30세 미만 미혼 세대주는 생계능력이 없거나 세금을 납부할 여력이 없는 점을 고려했다”했다. 이어 청년들의 사회진출이 활성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에 따라 대학생들의 주소지 이전 후 발생하는 세금은 없어졌다. 주민세와 함께 학생들의 주소이전을 발목 잡았던 건강보험료 역시 주소지를 이전하더라도 피부양자의 자격이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대학생이 직접 부담할 필요는 없게 됐다.

그러나 이같은 사실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대학생들의 주소지 이전에 따른 ‘세금 불안’은 현재 진행형이다. 앞서 만난 대학생들조차 이번 총선에서는 주소를 옮기지 않아 실제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 아닌 주민등록상 거주지 후보를 뽑아야하는 ‘관외선거인’ 자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세금부담이 없다는 말을 전하자 A씨는 “주민센터에 전화를 해봐도 ‘주민세가 아마 있는 걸로 안다’는 불확실한 대답을 받았다.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C씨는 “검색을 해봐도 정보가 제대로 없었다. 청년세금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체계가 구축되면 좋을 것 같다”고 의견을 내기도 했다.

한편 주소지 이전 이후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할 경우, 건강보험료 납부의무는 분명히 없다. 하지만 인턴 등 사회활동으로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면 납부의무가 생긴다. 이후 직장을 그만두거나 인턴기한이 끝나도 보험료 부담은 이어질 수 있다. 피부양자 자격변경을 위해 당사자가 직접 일련의 내용을 알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신청을 해야하는데다 자격요건에 따라 피부양자 자격변경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제 취업준비생 D씨(27, 여)는 “인턴으로 회사와 계약해 건강보험료 직장가입자가 됐다. 그러나 인턴이 끝난 후에도 계속 건강보험료를 납부해야했다. 수익은 없는데 보험료를 내는 건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인턴을 해도 실제 취직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문데, 건강보험료 납부기준도 바뀌어야 하는 건 아닌가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연령, 소득, 부양요건 등 자격이 맞는 경우 서류를 제출해 피부양자 등록이 가능하다”며 “만30세 미만, 만65세 이상, 장애인·국가유공자·보훈대상자 중 합산소득이 연3400만원 이하 등 조건을 확인하고 신청하면 된다”고만 설명했다.

hyeonzi@kukinews.com

조현지 기자
hyeonzi@kukinews.com
조현지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