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앞세워 신약 후려치기하는 다국적 제약사

환자 앞세워 신약 후려치기하는 다국적 제약사

[김양균의 현장보고] 의약품 철수 벼랑 끝 전략도...

기사승인 2020-05-22 00:00:04

[쿠키뉴스] 김양균 기자 = 환자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의약품의 가격과 급여화를 두고 다국적 제약사가 보건당국과 씨름을 벌이는 상황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고가 신약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환자의 의약품 접근권과 투자 대비 “더 받아야겠다”는 제약사, 그리고 약가정책을 담당하는 보건당국 사이의 불편한 동행은 계속되고 있다. 의약품 급여화는 건강보장체계의 주요 과제 중 하나다. 급여화 과정에서 핵심은 약의 적정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다. 

통상 신약의 약가 결정 과정에서는 보건당국과 제약사 간 협상이 이뤄지는데, 약의 독점권을 쥐고 있는 제약사는 최대한 높은 가격을 받아 이윤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연구개발(R&D)과 마케팅에 막대한 비용을 들인 이른바 ‘블록버스터 신약’을 통해 천문학적인 수익을 챙기겠다는 것이다. 참고로 현재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에 가입돼 있는 국내 진출 다국적 제약사는 44개사. 이들 기업은 우리나라 의약분업 실시 이후 국내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여기에 1999년 말부터 고가 약품 처방이 대거 늘어나기 시작했다. 의료기관에서도 다국적 제약사의 약 처방도 늘렸다. 

반면, 보건당국은 적정 가격으로 재정 지속성을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협상은 평행선을 이룰 때가 적지 않다. 주로 신약의 개발과 판매가 글로벌 시장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다국적 제약사의 전략은 매우 치밀하게 이뤄진다. 약가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면 제약사는 의약품 공급중단 등으로 건강보장 당국을 압박하기도 한다. 

지난 2018년 게르베코리아는 약가 인상을 이유로 의약품 공급 중단과 함께 시장 철수를 선언해 파문이 일었다. 환자를 볼모로 배만 불린다는 비판이 커지자 결국 회사는 공식 사과 했지만, 크게 잃은 것은 없었다. 대안이 없었던 우리 보건당국이 3배 이상의 약가 인상을 해줬기 때문이다. 의약품 공급 중단 ‘효과’가 톡톡하다 보니 다른 다국적 제약사들도 이러한 ‘벼랑 끝 전략’을 취한다. 실제로 MSD, 사노피, 한국화이자제약, 바이엘코리아 등도 의료기관에 주요 의약품 품절 공문을 보내며 정부를 압박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난해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회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서 다국적 제약사의 횡포를 작심 비판했다. 

“일부 고가의 약들은 1억 원이 넘는 등 상상을 초월합니다. 1억을 들여서 1명을 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우리는 비용 효과성을 따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른 약의 급여 적용이 되면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다국적 제약사의 전략 대상 리스트 중 최상단에는 ‘환자’와 국회 복지위 소속 국회의원이 자리하고 있다. 관련해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국민제안’을 수렴, 대선 공약에 포함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해당 업무를 담당한 당 관계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귀띔했다. 

“굉장히 많은 국민 참여가 있었지만, 특정 약의 건강보험 급여화와 같은 내용이 도배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환자의 절실함은 이해하지만 이것이 과연 일반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다국적 제약사가 환자 관리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환자의 절박한 심정을 통해 약의 급여화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한 국회 복지위 소속 국회의원 보좌진은 기자에게 “하루걸러 의원실에 환자와 다국적 제약사 대관 담당자가 찾아오는 일도 있었다”며 “의약품 접근권 뒤에서 숨어 급여화와 약가 인상을 압박하는 일을 복지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다국적 제약사의 횡포 근절은 실현 불가능한 목표일까? 약가와 관련해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서는 의미 있는 선언이 나왔다. 바로 ‘다국적 제약사 약가 횡포 근절을 위한 국제공조’가 그것이다. 박능후 장관은 “다국적 제약사의 약가 독점횡포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한 국가만으론 대처하기 힘들기 때문에 공동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angel@kukinews.com

김양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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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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