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1년…궷물오름과 노꼬메오름 (1)

제주도에서 1년…궷물오름과 노꼬메오름 (1)

기사승인 2020-06-06 00:00:00

6월이 되면서 맑은 날은 느끼지 못했던 집안의 습기가 날이 흐려지면 더욱 심해진다. 숲길은 아직 지나치게 덥지 않아 걷기에 무리가 없다. 한라산 높은 곳에 철쭉이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몇 년 전 이맘때 한라산을 오르며 보았던 설앵초와 큰앵초의 분홍색 꽃잎이 눈에 선하다.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 5월 말 제주도 여행에 관해 일정을 문의해왔다. 그 중 하루는 한라산 백록담까지 다녀오는 일정이었다. 한라산 일정은 극구 말렸다. 나이에 따른 체력은 차치하고라도 한라산 속에 들어가면 백록담까지 땀 흘리며 힘들게 걸은 기억만 남는다. 설앵초와 큰앵초의 꽃을 처음 보고 기억에 담은 특별한 경험은 때가 맞아야 하고 꽃과 풀과 나무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즐겁다. 그러니 이번 여행은 숲길과 오름을 걸어보시라 했다.

4일 동안 그들과 함께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꾸민 공원에서 제주를 엿보고, 숲길과 오름을 걸었다. 걸으며 숲속의 나무와 풀과 꽃을 살피고 때로 용암이 흐르던 시절의 모습을 상상했다. 한라산을 오르는 대신 한라산의 웅장함을 바라볼 수 있는 오름을 올랐다. 그간 제주에서 지내며 우연히 또는 추천을 받아 갔었던 식당 중 성실하게 운영하는 곳을 찾아가 서울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특별한 식사를 했다.

제주 동부의 중산간 지대와 해변을 중심으로 이동거리를 최대한 줄였다. 아침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었고 해 지기 전에 일정을 마무리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적당한 피로마저 행복하게 느껴졌던 일정이었다.

이별을 위해 적어도 3일은 필요한데 아버진 그 마저도 힘에 겨웠는지 급히 떠났다. 토요일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작은 빈소를 마련했다. 다들 황망히 찾아와 아버지께 작별을 고하고 있었다. 형제들이 모인 가운데 아버지께 마지막 옷을 입혀드리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 몸 속의 수분이 모두 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닦아도, 닦아도 멈추지 않았다.

입고 가시는 저 마지막 옷이 내가 아버지께 해 드린 가장 비싼 옷이었다. 살아생전 좋은 옷 한 벌 해 드리지 못했다. 이유와 핑계가 많았다. 옷이 그러했으니 먹는 것은 또 어땠을까. 언젠가 날이 꽤 더웠던 날 아버지와 함께 일을 보고 집으로 오는 길에 깨끗한 냉면집에 들렀었다. 냉면을 주문하고 불고기도 추가 하려는데 너무 많다고 극구 말리신다. 냉면을 다 먹고 잠시 앉아 나갈 준비를 하는데 아버지가 물었다. “이런데 음식은 많이 비싸지?” 그렇게 비싸지도 않았다. 그날 불고기 한 접시 사 드렸어야 했다. 입관 전 그 제일 비싼 옷을 입고 세상 편안한 표정으로 누워계신 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다시 빈소에 와서 문상객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눈이 부어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옷 한 벌과 불고기 한 접시가 여전히 가슴을 후비고 있었다.

동쪽에 거문오름이 있다면 서쪽엔 큰노꼬메오름이 있다. 거문오름은 엄청난 양의 화산 쇄설물과 용암을 쏟아내 제주도 동북쪽 해안까지 약 12킬로미터에 다양한 형태의 숲과 만장굴, 김녕사굴, 용천굴 그리고 당처물동굴까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자연유산을 남겼다. 노꼬메오름은 제주시 서북쪽 한라산 아래에서 시작해 약 9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다양한 숲과 지형을 남겼다. 큰노꼬메오름은 애월의 숲을 지배하는 오름이다.

큰노꼬메오름은 해발 833미터, 지표로부터의 높이가 234미터로 제주의 오름 중에는 가장 높은 오름에 속한다. 근처에 있는 바리메오름의 비고가 213 미터이고 동쪽의 다랑쉬오름이 227미터로 큰노꼬메오름에는 미치지 못한다. 노꼬메오름의 과거 이름은 높고메였다고 한다. 높다는 의미의 이름이었는데 음이 변해 녹고메가 되었고 한자로 이름을 지으며 녹고산 (鹿高山)이라는 이름도 얻었다. 지금도 어떤 이는 녹고메라 부르고 어떤 이는 노꼬메라 한다.

제주의 많은 오름이 사람들이 부르던 고유의 이름에 한자로 이름을 다시 붙이는 통에 전혀 다른 의미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거문악(拒文岳)으로 표기되는 거문오름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본래는 ‘검은오름’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큰노꼬메오름과 족은노꼬메오름이 나란히 있고 그 앞에 궷물오름이 있다. 이 세 오름에 각각 별도의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서 가고자 하는 오름에 따라 선택이 가능하지만 이용하기에 가장 편리한 곳은 궷물오름 주차장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1191-2)이다.

궷물오름 주차장에서부터 오름 탐방을 시작하면 체력과 조건에 따라 궷물오름만을 다녀올 수도 있고 궷물오름과 큰노꼬메오름, 궷물오름과 족은노꼬메오름, 또는 세 오름을 모두 다녀올 수도 있다. 궷물오름 주차장에서 탐방을 시작해 큰노꼬메오름과 족은노꼬메오름까지 세 오름을 모두 걷는 길은 제주 오름과 숲길의 모든 요소를 모두 갖춘 종합선물세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궷물오름에서 탐방을 시작할 때 가장 불편한 점은 탐방로에 안내 표지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큰노꼬메오름 주차장에서 정상까지 곳곳에 거리와 위치는 물론 경사도까지 표시해 둔 것과는 대조적이다.

궷물오름의 정상까지는 걷기가 가볍다. 가는 길에 테우리 막사에 잠시 들러 방목한 마소를 관리하던 테우리의 생활에 관해 잠시 읽어보고 멀리 동북쪽의 제주시와 그 너머의 바다를 잠시 살펴본다. 능선까지는 탐방로에 야자매트가 깔려 있어 길 찾기가 어렵지는 않지만 갈림길에 안내 표지가 없어 샛길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무조건 오른쪽으로 걸어 올라야 한다.

궷물오름의 능선에서는 남쪽 한라산 방향의 족은노꼬메오름과 큰노꼬메오름이 보이는데 장관이다. 능선 위에서 작은 자연석에 ‘궷물오름 정상’이라 쓴 표지석을 보고 가다보니 오른쪽으로 언뜻 넒은 풀밭이 보인다. 사료용으로 재배한 목초를 베어 포장해 두었다. 달포 전까지만 해도 아름다운 초록의 밭과 그 너머로 보이는 큰노꼬메오름이 장관이었을 듯하다.

기고 오근식 1958 년에 출생했다.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강원도 인제에서 33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복직해 근무하던 중 27살에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두 곳의 영어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인제대학교 백병원 비서실장과 홍보실장, 건국대학교병원 홍보팀장을 지내고 2019년 2월 정년퇴직했다.

[쿠키뉴스] 편집=이미애 trueald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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