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한국이 의료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의사 수 확충이 아닌 ‘인력 재배치’라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전문가 견해가 나왔다.
현재 정부는 감염병 대응능력 향상 및 공공의료 강화 방안의 일환으로 의사 수 확충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책 ‘포스트 코로나-우리는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의 공동저자로 참여한 김재헌 순천향대 서울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한국의 높은 의료접근성을 고려하면 국내 의사 수는 충분히 많다고 설명한다. ‘K-방역’도 아프면 언제라도 병원을 방문할 수 있는 한국의료체계의 특징이 낳은 결과물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미국 등 일부 국가는 의사가 아예 없는 지역도 있지만 우리는 의사가 없는 지역이 없다. 보건소 시스템도 잘 되어 있다”면서 “OECD 국가들과 비교하면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보일 수 있지만 의료기관 간 거리나 의료비 등 모든 접근성을 고려하면 오히려 의사 수, 특히 전문의의 수는 많은 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전문의 밀도가 필요 이상으로 높으면 사망률이 올라갈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의사가 많으면 과잉진료와 의료비 증가만 조장한다”며 “때문에 미국은 전문의 수를 철저히 조절한다. 지금도 의료기관 이용 문턱이 낮은데 의사를 더 만들 필요가 있는가”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변해야 할 한국의료체계로 의사 재배치와 인식변화를 꼽았다. 국민들의 의료이용패턴을 조사해 어느 지역에 어떤 전문의가 부족한지 연구하고 그에 맞는 인력을 양성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코로나19 사태로 감염내과 등의 전문인력 부족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정부가 공공의대를 설립하고 의사 수를 늘리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인력확충이 답은 아니다”라며 “단순히 의사 수만 늘리면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기존 인력을 다시 배치해 일차의료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필요성이 부각된 원격의료(비대면진료)에 대해서는 환자들의 인식변화가 동반돼야 한다고 봤다. 특히 지금처럼 의료 인력이 특정 진료과로 몰린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를 본격 시행할 경우 필수의료분야의 인력 부족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고, 과잉진료를 야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김 교수는 “비대면 진료 시행에 있어서는 찬성과 반대 사이에 있다. 주로 중소병원이 이를 찬성하는 것을 보면 과잉진료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특히 지금도 무작정 약부터 달라고 하는 환자들이 많은데, 이러한 현상이 조장될 수 있다고 본다. 제대로 진단하지 못한 상태에서 처방을 할 경우 누가 책임을 지느냐에 대한 문제도 있다”고 우려했다.
또 “공적인 목적과 대상도 불분명하다. 만약 도서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진료를 시작한다면 어떻게 접근성을 높일지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한다”면서 “이미 지역 보건소에 공보의가 배치돼 있고 그곳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데, 비대면 진료에 필요한 시스템을 지역 보건소에 설치한다면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대로 비대면 진료로 쓸데없는 이동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 될 수 있다”며 “지금은 약 처방 등 간단한 진료를 위해 수도권으로, 상급종합병원으로 환자가 몰리고 있는데 비대면 진료로 지역거점병원이 활성화되면 환자들도 분산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일부 변화한 것처럼 코로나19 대유행 이후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며, 국민들의 인식개선을 당부했다. 그는 “메르스 때만 해도 역학조사관조차 훈련되지 않은 사람이 많아 우왕좌왕하는 상황이었다. 홍역을 치른 후 음압병상을 설치하고 감염병전문병원을 지정하기 시작했다”면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달라지는 게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의료정책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인식 변화다. 우리가 정말 이성적으로 이번 감염사태를 잘 이겨내고 있는지, 상대적으로 다른 선진국에 비해 방역을 잘하는지는 객관적으로 생각해 봐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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