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조현지 인턴 기자 =고(故) 박원순 서울 시장이 실종 신고 7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그의 빈소에는 범여권 정치인들이 발걸음했다. 반면 범야권 인사들은 고인을 둘러싼 ‘성추행 의혹’에 조문을 취소하는 등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고인의 장례 기간에는 박 시장에게 고소를 제기한 피해자의 2차 피해가 발생하고 논란이 되는 발언이 쏟아지는 등 뒤숭숭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 가운데 故 박 시장의 장례절차가 13일 오전 발인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한국에서 대통령 다음으로 힘이 센 선출직 공직자가 숨졌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즈(NYT)가 10일 故 박원순 서울 시장 사망 소식을 이같이 전했다. NYT는 박 시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의 싸움에서 가장 공격적인 지도자이자 한국 최초 성희롱 사건에서 승소한 인권 변호사 출신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박 시장은 1993년 우리나라 최초 성희롱 관련 소송인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을 변호를 맡아 승소를 이끌어 낸 이름난 인권 변호사였다. 이후 ‘국회의원 낙천·낙선 운동’, ‘사법개혁운동’ 등 굵직한 시민운동을 주도했다. 인권변호사·시민운동가·정치인으로 헌정 사상 최초의 3연임 서울 시장을 역임하며 반값등록금·청년임대주택 등을 추진해 사회 혁신을 선도하기도 했다.
“최소한 가릴 게 있다. XX 자식 같으니라고”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10일 박 시장의 빈소에서 고인에 대한 의혹 대응 계획을 묻는 취재 기자를 향해 이런 혼잣말을 했다. 이후 질문이 들린 방향을 약 3초간 째려본 뒤 자리를 떴다.
그간 민주당은 “최소한의 장례 기간은 지켜야 한다”며 추모 분위기에 집중했지만 박 시장의 장례절차가 마무리되고 고소인 측의 기자회견이 열리자 곧바로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 대표의 메시지를 강훈식 수석대변인이 대독하는 방식으로 발표된 입장문에서는 ‘피해호소 여성’, ‘서울시정 공백’ 등을 언급하며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XX 자식’ 발언에 대한 이해찬 대표의 직접적인 사과는 끝내 들을 수 없었다.
“나를 포함해 운동권, 우리도 어느새 잡놈이 됐습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11일 페이스북에 운동권 출신 세력을 향한 비판의 글을 작성했다. 박 시장을 비롯한 이른바 586(5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세대 운동권 정치인들의 잇따른 논란에 이같은 실망감을 표현한 것이다.
진 전 교수는 “운동이 ‘경력’이 되고 ‘권력’이 된 지금, 과거에 무슨 위대한 일을 하셨는지 모르지만 더 이상 보상을 요구하지 말라”며 “‘명예’를 버린 건 당신들 자신이다. 자신들이 내다버린 명예, 되돌려달라고 사회에 요구하지 말라. 그렇게 숭고하고 거룩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저는 ‘당신’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은 10일 페이스북을 통해 박 시장을 성추행으로 고소한 피해자에 연대를 표했다. 류 의원은 영화 ‘굿 윌 헌팅’의 대사를 인용,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볼 수 있을지 모를 당신에게 전한다”라며 “우리 공동체가 수많은 당신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정치권 내에서 피해자의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온라인상에서 “박 시장의 죽음은 고소인 때문”이라는 등 원색적 비난 공세가 이어지자 법안 마련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 이에 미래통합당 이종배 정책위의장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처벌을 강화하는 ‘성폭력 범죄 처벌 특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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