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조민규 기자 =최근 수도권 소재 한 약국에 처방전이 접수됐다. 여기까지는 특이할 것이 없지만 이후 약국에 해당 처방전의 환자가 이미 사망했다는 통보가 오며 건강보험 명의도용이 의심되는 상황이 됐다.
그동안 알려진 타인의 건강보험 명의도용 사례는 건강보험 자격 상실자나 해외 거주자(외국인)가 건강보험 자격이 정지되거나 상실(없는)된 경우 가족이나 지인 등의 건강보험자격 정보를 이용해 국내에서 진료나 처방을 받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또 향정신성의약품 등 민감한 의약품을 처방받을 때 타인의 건강보험 정보를 도용한 사례도 적발되기도 했다.
사망자의 건강보험 자격도용은 보건의료현장에서 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가족관계등록등에관한법률에 따르면 사망신고는 사망사실을 안 날부터 1개월 이내에 해야 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사망신고를 기간 내에 하지 않으면 5만원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1개월 내에는 사망사실을 행정기관 등에서 알 수 없다는 것이고, 과태료 5만원을 낼 경우는 그 기간이 더 길어진다. 때문에 이를 악용한 범죄를 막기는 쉽지 않다.
이번 사례 역시 사망신고를 수개월동안 지연한 배우자가 사망자의 의료급여 자격을 도용해 진료를 받고 처방·조제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지자체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사망사실이 확인됐고, 조제 당시 자격이 상실됐음을 소급해 요양기관에 급여비를 환수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를 제보한 약사는 “이번 건의 경우 조제를 하고 급여를 청구를 하려면 자격조회를 당연히 한다. 하지만 해당 건의 경우 사망자라고 나오지 않았다. 수진자 조회 말고 어떻게 약국이 사망자인지 알 수 있나”라며 “약국은 처방전을 받고 건강보험(보험급여)자격을 확인한 뒤 조제를 해줬는데 사망한 환자에게 조제를 해줬다고 환수하겠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건강보험 자격관리는 건보공단이 하는 것이지 약국이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건보공단 관계자는 “해당 건의 경우 사망자에 대해 배우자가 사망신고를 지연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경우 약국에서 청구하지 말아야 할 것을 청구한 것으로 보고 해당 부정수급자를 고발해 환수한다. 아니면 요양기관에 해당 비용 지급하지 않거나 환수해, 이후 부정수급자에게 환수한 비용을 주는 방안이 있다”며 “요양기관 입장에서는 수진자조회를 하고 조제를 한 것은 당연한 것이고, 환수보다는 해당 급여비용을 부정수급자에게 환수하는 것이 맞다”고 해명했다.
건강보험 자격 도용문제는 최근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건보자격이 상실된 해외 거주자 등이 명의도용으로 진료·조제를 받는 건강보험증 부정사용 진료건수가 지난 2015~2017년까지 17만8237건에 달한다. 건강보헙 재정 누수도 매년 수백억원을 넘는다.
때문에 건보공단 등 정부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에는 타인의 건강보험증을 빌려 사용하다 적발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도록 처벌을 강화했다. 또 공익신고를 장려하기 위해 건강보험증 대여나 도용 등의 부정사용을 신고하면 부당이득금 징수 액수의 10∼20% 범위에서 최고 500만원까지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건보공단과 병원협회는 입원환자에 대해 신분을 확인하는 절차를 도입했고, 강제규정은 아니지만 요양기관에 신분확인을 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일부에서는 전자건강보험증 도입을 다시 주장하기도 한다. 사용하지도 않는 종이 건강보험증 발급 비용이 매년 수십억원 투입돼 건보재정 절감에 도움된다는 이유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가 ‘모바일 운전면허 확인서비스’를 시작하자 전자건강보험증 도입 논의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타인의 건강보험 자격 도용은 재정누수 뿐 아니라 개인 건강에도 위해를 끼친다. 우선 개인의 의료기록에 진료 내용이 누락돼 향후 진료시 관련 내용이 반영되지 않아 약화사고 등의 후려가 있고, 일부 적발된 사례처럼 향정신성의약품을 처방 받아 오남용을 해도 당사자 확인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타인의 건강보험 자격 도용을 통한 부정수급을 막기 위한 효과적이고,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요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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