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올해 초 코로나19가 전 세계에서 유행하는 팬데믹을 겪으며 9년 전 개봉한 영화 ‘컨테이젼’(감독 스티븐 소더버그)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영화처럼 느껴지는 현실을 거울에 비춰보듯 다시 영화를 통해 재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컨테이젼’이 코로나19와 유사한 바이러스의 첫 전파 과정을 그렸다면, 영화 ‘팬데믹’(감독 다카시 도셔)은 치사율 100% 바이러스가 발생한 이후를 그린 재난 SF영화에 가깝다. 몇가지 설정을 덧붙여 로맨스와 재난 장르를 결합한 ‘팬데믹’은 팬데믹 이후 우리가 마주하게 될 삶과 그 풍경을 그렸다.
‘팬데믹’은 바이러스가 찾아온 지 400일이 된 현재의 시점이 진행되는 스토리와 그동안의 일을 요약하는 스토리가 교차하며 전개된다. 어느 날 갑자기 의문의 재가 지구의 대기를 뒤덮기 시작한다. 출혈을 시작으로 발작과 경련, 그리고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인 바이러스 HNV-21이 적용되는 건 오직 여성들이다. 친구가 떠난 빈 집에서 연인 에바(프리다 핀토)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려고 준비하던 윌(레슬리 오덤 주니어)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다. 바이러스로부터 격리된 공간을 만들고 철저히 방역 수칙을 지키며 하루하루 생존을 이어가던 윌과 에바는 점점 서로 싸우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영화는 바이러스 자체의 위험성보다 격리하는 생활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무기력하게 만드는지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에바는 생존을 위해 외출을 못하는 건 물론, 배달 음식과 통조림 요리만 먹는다. 바이러스의 비밀을 밝히려는 배아 프로젝트를 위해 여성들을 데려가는 상황 때문에 창문으로 사진을 찍는 것조차 주의해야 한다. 보균자인 윌과 접촉조차 하지 못한다. 윌은 에바를 위해서 모든 생활을 통제하고 계획을 짠다. 두 사람의 로맨스를 이어가기 위한 행동은 곧 로맨스를 파괴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에바의 생명력이 꺼져가는 동시에 로맨스의 불꽃 역시 약해져간다.
‘팬데믹’이 만든 특수한 재난 상황은 자신의 연인을 지킨다는 이유로 남성이 여성의 삶을 통제하는 행동의 은유이기도 하다. 숨을 쉬고 먹고 잘 수 있는 ‘생존’과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즐거운 일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삶’은 다르다는 걸 에바는 절감한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에바는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해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의 결정들이 옳은 것인지는 타인이 쉽게 판단할 영역이 아니다. 에바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윌 역시 좁힐 수 없는 거리감을 확인하며 그저 바라볼 뿐이다.
2020년 관객들은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이미 코로나19 팬데믹을 매일 눈앞에서 마주하고 방역 수칙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팬데믹’이 보여주는 격리된 이후의 삶은 팬데믹 이후의 삶을 살아갈 우리 모두에게 고민해봐야 할 묵직한 숙제를 남긴다. ‘컨테이젼’이 9년 만에 회자됐듯, ‘팬데믹’ 역시 수년 후 다시 찾아보게 될 영화일지 모른다.
22일 개봉.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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