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국내 제약업계의 리더십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가족간 경영 승계와 전문 경영인 체제가 혼재하는 양상이다.
10일 한미약품그룹의 차기 회장이 송영숙 가현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정해졌다. 송 신임 회장은 고(故) 임성기 회장의 부인이다. 지난 2002년부터 현재까지 가현문화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2003년에는 한미사진미술관을 설립, 관장을 맡았다. 2017년부터 한미약품의 사회공헌활동(CSR) 담당 고문으로 경영에 참여했다.
한미약품은 송 신임 회장이 회사의 설립과 발전에 중대한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송 신임 회장이 공식적인 고문으로서 회사 경영에 참여한 기간은 3년이지만, 그는 임 전 회장과 평생 회사의 경영 전반에 대한 의견을 나눠왔다”며 “한두가지 업무를 맡았다기 보다는, 임 전 회장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여러가지 포괄적인 역할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장을 차기 회장으로 추측하는 여론이 있었지만, 회사가 이 같은 사실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다”며 “송 신임 회장의 취임은 회사 내부 논의를 충분히 거쳐 모두가 합의한 결과”라고 말했다. 회장직 후보의 경쟁 절차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사측의 구체적인 내부 절차에 대해서는 공개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임 사장은 임 전 회장의 장남이다.
국내 제약업계에서 창업주의 가족에게 경영권이 승계되는 경우는 흔하다. 지난해 매출 상위 10위권에 오른 국내 제약사는 매출 순위대로 ▲유한양행 ▲GC녹십자 ▲광동제약 ▲셀트리온 ▲한미약품 ▲대웅제약 ▲종근당 ▲삼성바이오로직스 ▲제일약품 ▲동아에스티 등이다. 이들 10곳 중 한미약품을 포함해 3개사 대표가 창업주의 가족이다.
허은철 GC녹십자 대표는 녹십자 창업주 고(故) 허채경 회장의 손자다. 지주회사인 GC녹십자홀딩스의 허일섭·허용준 대표는 각각 창업주의 차남과 손자다. 최성원 광동제약 대표는 고(故) 최수부 전 회장의 장남이다.
대웅제약은 전승호·윤재춘 공동대표 체제다. 둘 모두 회사 내부에서 발탁된 경영인이다. 대웅제약의 창업주인 윤영환 명예회장의 삼남 윤재승 전 대웅제약 대표가 2018년 사임하면서 전문 경영인 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제일약품도 전문 경영인이 이끌고 있다. 성석제 제일약품 대표는 화이자에서 재정담당 상무와 부사장을 역임하고, 지난 2005년부터 제일약품 대표이사 사장직을 맡았다. 제일약품의 지주회사인 제일파마홀딩스의 한상철 대표는 제일약품 창업주 고(故) 한원석 회장의 손자다.
셀트리온그룹은 창업주인 서정진 회장이 직접 경영 중이다. 지난 2016년 선임된 서정수 셀트리온제약 대표이사는 서 회장의 동생이다. 아울러 회사의 ‘창업 공신’으로 꼽히는 기우성 셀트리온 대표이사 부회장, 김형기 셀트리온헬스케어 대표이사 부회장 등이 계열사를 이끌고 있다.
유한양행, 종근당,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은 창업주와 혈연관계가 없는 전문 경영인이 대표직을 맡고 있다.
유한양행은 창업주인 고(故) 유일한 전회장이 지난 1969년 물러난 이후 현재까지 전문 경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정희 유한양행 대표는 지난 1978년 공채로 입사해 영업·유통·마케팅·경영관리 부서를 거쳐 2015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됐다.
종근당은 창업주 고(故) 이종근 회장의 장남인 이장한 전 대표가 지난 2013년 사임하면서 전문 경영인 체제를 도입했다. 김영주 종근당 대표는 한독, JW중외제약, 릴리 등 국내외 제약사를 거쳐 지난 2015년 종근당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됐다. 지주회사인 종근당홀딩스의 황상연 대표 역시 미래에셋증권, 엠디뮨 등에서 근무하고 지난 3월 종근당홀딩스 대표이사로 선임된 전문 경영인이다.
가족간 경영권 승계가 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가족경영과 책임경영이 병행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폐쇄적인 가족경영은 기업 가치를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 우려다. 유능한 경영자가 조직에 유입될 기회가 없다면, 기업의 잠재적 성장 가능성도 차단된다는 것이다. 경영진이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하기보다, 안정적 승계에 몰두하는 모습도 나타날 수 있다.
이창민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소규모 회사도 아닌, 대규모 상장기업의 가족간 경영권 세습은 시대착오적 현상”이라며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나라 기업의 가치를 저해할 위험이 크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주요 임원 및 회장직 선임은 후보자들에 대한 공개적 검증 절차를 걸쳐야 한다”며 “시장에서 납득할 만한 근거가 없는 인사는 궁극적으로 기업 발전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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