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소] '강동구 무한사랑' 이해식 의원

[美소] '강동구 무한사랑' 이해식 의원

기사승인 2020-09-05 23:18:02


-제16·17·18대 강동구청장과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거친 중진 같은 초선의원
-오직 한 사람, 한 분야, 한 지역, 한 길에 사랑 쏟아부어
-나를 가장 미소짓게 하는 건 '강동구민의 미소'
-국민의 눈높이에서 정치하면 국민이 마음에 들 것


[쿠키뉴스] 박효상 기자 = 이상하다. 분명 초선 의원인데, 중진 느낌이다. 어디서 봤나 싶을 정도로 익숙한, 베테랑에게서 느껴지는 묵직한 정치인 느낌. 제21대 국회에 갓 입성한 이해식(56·서울 강동구을) 의원이 그랬다. 그는 ‘초선’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잔뼈가 굵다. 1991년 정치에 입문해 최연소 강동구 구의원 및 제16·17·18대 강동구청장을 거쳐 20개월 동안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등 굵직한 활동을 이어왔다. 30년 경력의 정치 장인인 셈이다. 


 사실 기자가 이 의원을 낯설지 않다고 느낀 것은 그의 정치 경력과는 무관하다. 실제  초면이 아니었지만 나는 인터뷰가 끝난 후에야 이 사실을 인지했다. 지난 2019년 쿠키뉴스에서 제작한 유튜브 프로그램 취재 시 만난 바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이라 생각지 못했던 것은 9개월의 세월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의 여윈 모습 때문이었을까. 단정한 모습과 세련된 화술은 여전했지만, 전보다 수척해 보였다. 초선의원으로서 맡은 업무량은 베테랑 정치인에게도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초선의원들은 열정이 대단해요.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 남아 공부하고 아침에도 일찍 나와 세미나와 토론회에 참석해요. 저도 뒤처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이해식 의원은 일탈하지 않는 모범생이다. 잘 정돈된 외형과 흐트러짐 없는 자세, 정답 같은 몸짓은 기본. 30년 정치 경력에도 무엇이 부족하다고 느끼는지 매순간 공부하고 노력했다. 그리고 대화 속에서 엿보이는 그의 올곧은 인생관 역시 탈선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무언가 잘 될 때는 앞으로 올 '위기'를 걱정하고, 잘 안 풀릴 때는 '극복'이라는 희망을 갖죠. 모든 일이 항상 잘 되거나, 항상 안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매번 낙관해서도, 비관해서도 안 돼요. 균형은 잡고 개척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치도 마찬가지죠"

아, 모범답안 같은 답변에 기자는 잠시 현기증을 느꼈다. 너무도 진심이 배어 있는 정답의 연속이다. 어쩌면 이상향과도 같은 생각을 실천하며 그는 50년 넘는 생을 살아오고 있을 것이다. 그 마음으로 이해식 의원은 강동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

'위기'와 '극복'의 순간을 오롯이 강동구에서 맞이했다. 그의 강동구 사랑은 이유가 있다. 서울 강동구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해 30년간 강동구에서만 살았고, 구의원·시의원·구청장·국회의원까지 강동구를 대표했다. 어찌 강동구를 빼고 그의 인생을 논할까 싶다.

"제 인생에서 강동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죠. 제가 태어난 곳은 전남 보성이에요. 하지만 서울 강동구에서 가장 오래 살았고, 앞으로도 계속 살 예정이고요. 제 마음의 고향은 강동구입니다."

심지어 그를 '미소' 짓게 하는 것을 묻는 질문에도 '강동구'만을 외쳤다. 이해한다. 30년 정치 외길 인생, 첫사랑과의 결혼, 강동구에 대한 무한 애정. 이해식 의원은 한눈팔지 않는다. 오직 한 사람, 한 분야, 한 지역, 한 길에 사랑을 쏟을 뿐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국회 입성 후 지난 3개월 동안 어떻게 보냈는지?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제가 국회의원 비서 경험도 하고, 당선 직전 1년 8개월간 당 대변인도 했지만, 막상 제가 의원이 되니 너무 바쁘고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아무래도 국민을 대표하는 책임감과 지역구 강동구민 주민을 대변하는 중압감, 그런 것 때문에 마음의 여유가 없지 않았나 싶어요. 밤에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아침에는 세미나와 토론회에 참석해서 다양한 의견을 듣고 나누는 등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정치인의 삶이라는 것이 가족의 도움과 희생 없이는 힘들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선거를 많이 치른 편이에요. 지방의원도 하고, 구청장도 3번 했어요. 한 번 떨어지기도 하고. 그래서 선거 치를 때마다 가족들에게 희생을 강요한 거 같은 생각도 들고, '감사하다, 고맙다' 표현할 계기가 없었는데. 아니 제가 무심했죠. 당선 후 '정말 고맙다' 그동안 여러 선거에서 헌신적으로 도와주고 함께해줘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라고 말했어요.
 
-과거 최연소 구의원, 최연소 구청장 등 초선이지만 정치 경력은 상당하다. 다른 초선의원보다 자신의 강점은?
▶이번에 경력 있는 분들이 많이 당선되셔서 제가 특별하게 강점이 있을까 싶네요. 제가 국회의원 비서 생활할 때부터 계산하면 거의 30년 가까이 정치 활동을 했어요. 그래서 긴 호흡으로 생각하고 바라보는 강점이 있지 않나 생각하고요. 구청장을 3선 하다 보니까 '어떤 정책이 국민에게 실효성 있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인가' 분별할 능력을 갖췄다고 생각해요. 그런 경험을 살려서 의정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싶습니다.

-정치인 전, 살아온 이야기가 듣고 싶은데?
▶어릴 때는 가난하게 자랐지만, 굉장히 꿈 많은 소년. 온화하고 따뜻한, 너무나 행복한 가족관계 속에서 자랐습니다. 형편이 어려웠지만, 구김살 있는 삶은 아니었어요. 부모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82학번인데 전두환 독재 시절이었죠. 많은 친구가 학생 운동에 참여했고 저는 조금 더 세게 했어요. 총학생회장도 하고 구속 및 수형생활도 경험했고. 젊은 시절에는 우리나라의 처지와 현실을 바꿔야 하고 특히 반독재민주화투쟁을 통해서 민주화된 사회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과 실천을 쭉 했어요.

-그래서 정치에 관심을 가졌나요?
▶정치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어요. 청년 시절에 정치라는 것은 늘 국민을 속이고, 기만하고 부패한 집단이라고 봤기 때문에 정치는 생각 밖이었죠. 국민 손으로 민주화 달성을 보고 그래도 세상은 바꾸는 것은 정치가 아니겠는가. 훌륭한 정치인을 도우면 사회를 바꾸는 데 힘을 보탤 수 있겠다. 그런 생각으로 이부영 전 의원을 보좌하면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죠. 이후 공직선거에 출마하면서 이제는 내가 책임을 지고 정치를 해야겠다. 이런 생각으로 지금까지 왔습니다.

-항상 승승장구했던 정치 인생은 아니었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와 어떻게 극복했는지?
▶저는 사실 다른 분들에 비해서는 순탄하게 정치생활을 해왔던 거 같아요. 떨어진 것도 구청장 선거 한번 떨어졌으니까. 어떤 분들은 세 번, 네 번 떨어지시고 국회에 늦게 입성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에 비해서는 저는 구청장을 세 번이나 했고 한 번 떨어졌기 때문에 행복하게 정치활동을 해 온 셈이죠. 그래도 구청장 선거 떨어졌을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지나고 보니 선거 떨어졌을 때가 제가 '성숙할 수 있고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때'였구나 생각을 하게 되는데. 막상 그때는 힘드니까 그걸 의식하지 못했죠. 낙선 후 정치 활동을 계속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그 시기가 어려웠죠. 하지만 정치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분이 도와주시고 힘을 주셔서 극복했어요. 이후에 다시 구청장 보궐선거에 당선됐고요.


-국회의원 이해식이 아닌 '이해식의 인생관'이 궁금하다
▶제가 태어날 때 거꾸로 태어났어요. 그래서 할아버지가 별명을 '도수'라고 지어주셨어요. 엎어질(넘어질) '倒'에 머리 '首', 어릴 땐 어머니가 도수라고 불러주셨어요. 태어날 때 그렇게 태어나다 보니까 어떤 것을 뒤집어서 생각하는 버릇이 있어요. 제가 선거에서 떨어졌을 때 힘들었다고 했는데 누구나 다 선거에 떨어지면 힘들 거예요. 하지만 힘든 시기가 오히려 더 좋은 것을 예비한 시기일 수도 있고요. 반대로 당선돼서 여러 사람이 축하해주고 남들이 부러워한다는 느낌을 받으면 기분이야 좋겠지만 뭔가 어려워 질 수도 있다는 신호에요. 저는 항상 그렇게 거꾸로 생각해요. 항상 경계해요. 굉장히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이것이 하나의 위기다' 이렇게 생각할 필요가 있고, 힘들고 괴로울 땐 '언젠가는 이 단계를 극복하고 좀 더 나아지는 날이 온다' 이런 생각. 인생이라는 게 우여곡절 속에서 살아가는 것인데 그렇게 비관할 필요도 없고, 낙관해서도 안 되고 늘 균형을 찾아가면서 자기 진로를 개척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내는 어떻게 만났는지?
▶제가 대학 2학년 때 만났어요. 운동권 서클에서 여선배가 지도했어요. 그 선배한테 졸랐죠. 친구들 많지 않냐 그 친구의 후배. 말하자면 동년배의 여학생을 소개해달라고 했죠. 그래서 미팅을 하고 지금까지 이어졌어요. 대학 2학년 때 만나서 그때는 이성 간의 감정으로 크게 없었지만, 졸업 후 자연스럽게 좋아지면서 군 제대 후 결혼했죠.

-그럼 첫사랑인가요?
▶글쎄요. 첫사랑이 뭔가에 따라 다르긴 하죠. 성인이 되어 사귄 것은 처음이었어요. 고등학교 서클 활동에서 여자친구들이 많았지만 이성친구는 아니었고, 지금 아내가 첫사랑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네요.
 


<이해식에게 묻는다> 7문 7답
-돌아가고픈 과거?
▶꿈 많은 고교 시절/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 헛된 생각이잖아요. 그런데 만일에 가능하다면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요. 후회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짧은 기간이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받아드렸던 거 같아요. 풍성해졌다고 할까요. 아마 인생을 살면서 고등학교 시절이 비약적으로 생각이나 행동이 발전하는 시기 같아요. 그래서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인생 최고의 순간?
▶아내를 만난 순간/ 꼭 립서비스 같은데요. 진심이에요. 제가 나이가 들다보니까 확실히 아내가 정말 보배구나, 잘 만났구나, 아내한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웃음) 좀 더 나이 들어서 힘이 없어지면 아내에게 잘 보일 수밖에 없잖아요. 종합해보면 아내를 만난 순간이 '황금 같은 순간'이었던 거 같아요.

 -나에게강동구란?
▶영원한 나의 고향/ 고향이 어디냐고 저에게 물으면 복잡해요. 보성은 태어난 곳이고 자란 곳은 마산이고, 그런데 제가 제일 길게 살아온 곳은 강동구에요. 제가 결혼하고 신방을 암사동 강동아파트에 차렸는데, 지금 햇수로 30년이 넘었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오랜 시간 산 곳은 결국 강동구에요. 앞으로도 계속 살 것이고. 결국 영원한 고향은 강동구가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이해식의 미소를 보다>
-나를 가장 '미소' 짓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강동구민의 미소. 이것도 설명이 필요합니까?(웃음)

-국민의 대표로서 어떻게 국민을 '미소' 짓게 하겠는가?
▶공직자니까요. 국민의 기준에서 생각하고 행동함으로써 국민이 흡족해하는 정치를 선보이고, 국민들이 미소 짓게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흔히 지위가 높아지면 ‘공감을 상실한다’ 그런 얘기를 하잖아요. 구청장은 조금 다른 거 같아요. 구청장은 늘 사람들을 만나거든요. 민원인과 현장 및 행사를 통해서도 만나고, 자주 구민을 접하기 때문에 그분들의 말씀만 귀 기울여도 여러 가지 혁신적인 정책을 세울 수 있거든요. 구청장은 지위가 높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높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항상 주민과 공감 능력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국회의원도 주민을 만나지만, 상당 시간 여의도에서 생활하면서 고위 관료들과 주로 만나니까 다른 면에서는 국민과 거리가 멀어질 수 있잖아요. 결국엔 같은 눈높이로 국민이 바라는 입장에서 정치하면 국민의 마음에 들 것이고, 미소 짓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tina@kukinews.com 사진=박태현 기자, 영상제작=우동열 쿠키건강TV PD
박효상 기자
tina@kukinews.com
박효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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