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6‧25 전사자 발굴유해 故 민영승 하사 152번째 신원확인

국방부, 6‧25 전사자 발굴유해 故 민영승 하사 152번째 신원확인

1951년 8월 강원 인제 노전평 전투에 참전, 69년만에 가족 품으로

기사승인 2020-10-05 09:00:50
故 민영승 하사 발굴, 수습현장(사진제공=국방부)
[쿠키뉴스] 송병기 기자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지난 2018년 6월 25일 강원도 인제군 서화리 일대에서 발굴한 유해를 고(故) 민영승 하사(현 계급 상병)로 신원을 확인했다고 5일 밝혔다.

국방부에 따르면 고(故) 민영승 하사의 신원확인은 2000년 4월 유해발굴을 위한 첫 삽을 뜬 후 152번째다. 민영승 하사의 신원확인은 아들인 민장수(72)씨가 2009년에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고 11년을 기다려오던 중, 2018년 발굴된 유해와 민장수씨 유전자를 비교 분석한 결과로 확인됐다.

국방부는 “故 민영승 하사는 국군 제 8사단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1951년 8월9일부터 9월18일까지 강원도 인제 서화리 일대에서 발생한 노전평 전투에서 전사했다”며 “전사일은 1951년 8월21일”이라고 설명했다.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제1차 휴전회담이 열렸으나, 유엔군사령부와 공산군(북한‧중국군)은 회담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노전평 일대에서 치열한 전투(1951년 8월9일∼9월18일)를 벌였다. 이 지역은 강원 인제 서화리 축선과 인접한 고지군을 점령하기 위한 요충지로, 전형적인 고지쟁탈전 양상의 전투였다.

국방부에 의하면 최초에 제8사단은 제16연대와 제10연대를 투입, 고지쟁탈전을 반복함으로써 445고지∼1010고지로 이어지는 고지군을 점령하면서 북한군을 공격했다. 그러나 당시 방어에 유리한 지형지물이 없었기 때문에 공방전은 계속돼 제 2차 노전평전투까지 이어지게 됐다.

국방부는 치열한 전장에서 마지막까지 싸우다 전사하신 故 민영승 하사는 안타깝게도 정강이, 팔 부분의 유해 2점만 67년이 지나서야 후배 전우들에게 발견됐고 단서가 될 수 있는 유품은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故 민영승 하사는 1918년 6월 2일 경기도 고양시 관산동에서 4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고인의 형제들은 모두 어린나이에 홍역 등 병으로 작고했다. 전사자 아버지인 민창식씨는 고인 외에 자식들을 일찍 여읜 것을 매우 슬퍼했고, 그래서 고인을 더욱 아꼈다.

고인의 아들 민장수씨는 “어린나이에 아버지도 안 계시고 형제도 없이 어머니와 함께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했다. 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아버지가 돌아오신 것을 못 보셔서 참 아쉽다”라고 말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유가족들과 협의를 통해 귀환행사와 안장식을 치르고 유해를 국립현충원에 안장할 예정이다.

또 국방부는 6‧25 전사자 신원확인을 위해 유가족 유전자 시료채취를 확대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 마지막 한 분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드릴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songbk@kukinews.com
송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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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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