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조현지 기자 =한글(훈민정음) 창제를 기념하고 우리 글자의 우수성을 기리는 한글날이 올해로 574주년을 맞았다. 매해 한글날을 맞아 정치권에선 ‘바른말 쓰기’를 다짐하지만, 올해도 ‘막말’은 계속됐다.
‘애민정신’은 매 한글날 마다 각 정당 논평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소재’다. 세종대왕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한글을 창제했듯이 정치권 역시 ‘국민을 먼저 생각한다’는 마음을 갖겠다는 다짐이다. 나아가 바른말의 품격으로 바른 정치를 이끌겠다는 자성이 담겼다.
그러나 지난해의 다짐도 말 뿐이었던 모양이다. 2020년에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정치권의 ‘막말’이 쏟아졌다. 특히 21대 총선 기간을 거치면서 ‘막말’ 수위는 더욱 높아졌다. 지지층의 결집을 위한 메시지를 보냈지만 여론이 등을 돌리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막말 악재’로 쓴 패배를 맛봤다. 차명진 경기 부천시병 후보의 ‘세월호 텐트 쓰리섬’, 김대호 서울 관악갑 후보의 ‘3040 세대비하·노인폄하’ 발언 등이 총선 판세를 뒤흔들었다. 당 지도부가 뒤늦게 수습에 나섰지만 더불어민주당 쪽으로 기운 표심을 되찾진 못했다.
국회 개원 이후에도 정치인들의 ‘막말’은 계속됐다. 21대 국회 첫 대정부질문이 열린 7월 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선 ‘입 닫아, 이 XX야’라는 욕설이 나왔다.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이 정부 인사들의 논란을 비꼬는 마무리 발언을 하자 장 내 의원 중 한 명이 이같은 말을 외쳤다.
이외에도 국회 상임위에선 ‘어린 것이’, ‘양아치냐’ 등의 발언으로 설전이 이어졌다. 의원 개인 유튜브에선 ‘개소리’ 등의 말이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을 ‘오물 쓰레기’라고 표현하는 막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변화는 일부 있었다.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본회의 연설에 나서 한 ‘5분 발언’이 고성도, 막말도 없는 ‘명연설’이라는 대중의 호평을 받자 여야 의원 가릴 것 없이 ‘토론 배틀’에 나선 것이다. 다음날 본 회의에선 관심을 끌기 위한 자극적 비판이 아닌 논리를 앞세운 발언이 이어졌다.
국회는 현재 ‘2020 국정감사’에 한창이다. 국회는 국정감사를 통해 행정부의 국정 수행, 예산 집행 등 국정 전반에 대한 조사를 행하고 정부를 감시·비판하는 기능을 갖는다. 그러나 ‘똘짓(또라이짓)’이라는 비속어가 튀어나오는 등 국감 첫날부터 막말 국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같은 정치인들의 발언이 이어지는 것을 두고 “이전보다 더 퇴행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정치인들이) 자기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해 ‘자극적인 표현’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유튜브라는 채널의 영향력도 있다. 자극적 발언을 하게 되면 관심이 모이게 되고 핵심 지지층을 끌어모으기 좋은 상황이 된다. 그래서 더 심해진 것 같다”고 했다.
이 평론가는 “일종의 키워드·신조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시선 집중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밋밋하고 평범한 이야기를 한다면 잘 안받아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이 7일 국감에서 ‘똘짓’ 발언으로 논란이 된 것을 들며 “만약 ‘효과가 없다’고만 말했으면 언론에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진영론’에 갇힌 정치권의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변화를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도 있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우리나라 정치에서 여야는 한쪽이 죽어야 한쪽이 박수칠 수 있는 시스템에 놓여있다. 내년에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내후년에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이슈가 터지면 상대방을 공격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구조적 비극이다. 이런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정치에서 담론의 수준을 높이고 대화의 품격을 높겠다 등의 말은 ‘공자의 말’이다”며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가차없는 비판, 거친 말을 쏟아낼 때 지지층이 모이게 된다. 점잖은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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