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유재명 “‘소리도 없이’ 대본에 충격… 어떻게 이런 게 나왔지 싶었죠”

[쿠키인터뷰] 유재명 “‘소리도 없이’ 대본에 충격… 어떻게 이런 게 나왔지 싶었죠”

기사승인 2020-10-16 06:35:01
▲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태인(유아인)이 라면에 계란을 세 개 넣으려는데 제가 하나 빼는 장면이에요. 많다는 거죠. 보통 아이 같으면 한 개 더 넣겠다고 우길 수도 있겠지만, 태인은 수긍하죠. 1인당 계란 한 개씩 먹는 관계인 거예요.”

영화 ‘소리도 없이’(감독 홍의정)에서 시체 수습을 하며 살아가는 창복과 태인의 관계는 명확하게 서술되지 않는다. 가족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고, 동료라기엔 상하 관계가 느껴진다. 제목처럼 소리 없이 그저 서로가 필요한 존재라는 걸 암묵적으로 인정할 뿐이다.

두 인물을 가르는 지점 중 하나는 말과 표현의 유무다. 창복은 말을 하지 않는 태인의 마음을 읽어내고 추측하며 쉴 새 없이 떠든다. 배우 유재명이 고민한 지점도 그렇다. 최근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유재명은 어떻게 하면 이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만들지 고민하며 연기했다.

“‘소리도 없이’는 충격적인 작품이었어요. 지문이 많은 시나리오였죠. 무거우면서 기묘하기도 했어요. 어떻게 이런 전개와 아이러니를 담은 시나리오가 나왔지 싶었어요. 영화는 시나리오보다 상대적으로 밝고 색감이 예쁘고 유머러스해요. 묘한 뉘앙스의 영화가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창복은 극중 서사를 이끌어가는 역할이에요. 태인이 말이 없기 때문에 창복이 말을 많이 하죠. 최대한 자연스럽게 친근한 이미지로 사건을 전개하고, 태인과 쌍을 이뤄서 귀엽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평범함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범죄조직의 뒤처리를 하는 무서운 사람들이 아니라. 열심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소시민의 전형을 그리려고 했죠.”

▲ 영화 '소리도 없이' 스틸컷

‘소리도 없이’는 두 인물의 사연을 자세히 드러내지 않는다. 마치 이미 공개된 작품의 후속편처럼 당연하다는 듯 앞을 향해 걸어가는 영화다. 창복이 왜 다리를 저는지,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태인과는 어떻게 만났는지도 알 수 없다. 유재명은 홍의정 감독과 상의한 창복의 뒷이야기를 살짝 들려줬다.

“작품을 시작할 때 항상 감독님과 시나리오를 분석하면서 인물의 전사(앞 이야기)를 고민하죠. 다양한 의견이 있었어요. 영화엔 나오지 않지만 창복은 노모를 모시고 사는 사람이에요. 다리가 불편한 것에도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죠. 감독님과 창복이는 고등학교 때까지 축구를 하다 부상을 당했고 집이 가난해서 치료비를 못 받았다는 얘기를 나눴어요. 영화에 그려지지 않은 건 크게 중요한 이유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지금 현재의 모습과 앞으로의 이야기가 더 중요한 거죠. 인물의 설정에 대해 치밀하게 분석을 더하는 것이 우리 일이지만, 영화는 다른 부분에 더 집중하자고 생각했어요.”

유재명은 인터뷰 도중 JTBC ‘이태원 클라쓰’와 tvN ‘비밀의 숲’ 이야기를 꺼냈다. ‘이태원 클라쓰’의 장대희 회장 역할은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욕심을 냈던 캐릭터고, ‘비밀의 숲’의 이창준은 지금의 흰머리를 올라오게 만든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잘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어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스무 살 때 연극을 만나서 블랙홀에 빠져드는 것처럼 연습장과 극장, 술자리를 오갔어요. 그렇게 20년 동안 예술적 매력에 빠져서 살아던 것 같아요. 어떤 배우가 되어야지, 어떤 작품을 해야지 하는 목표도 없었어요. 주어진 작품을 동료들과 하룻밤의 꿈처럼 만들고 다시 허물고 하다 보니 지금의 배우 유재명이 된 것 같아요. 요즘 제가 맡는 역할이 커지면서 제 역할만 하면 되는 걸 넘어서 전체를 고민해야 하는 부담을 갖는 건 사실이에요. 내 것만 잘하는 게 아니라 같이 뭔가를 해나가는 굵은 선을 긋는 배우가 돼야 한다는 것이 요즘 제 가장 큰 화두예요.”

유재명은 ‘소리도 없이’ 개봉을 앞두고 “만족감보다는 겨우 잘 해냈네 하는 안도감”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영화가 ‘봄날의 낮술’ 같은 영화라며 매번 다른 느낌의 이미지들이 계속 나오고 새로운 상황들로 바뀌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이었나 하고 깨닫는 시기예요. 영화뿐 아니라 도시에 드리워진 감정들과 여러 가지가 빨리 해결되길 바라는 건 모두가 마찬가지겠죠. ‘소리도 없이’는 예상치 못한 흐름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재밌을 거란 기대감을 충족시켜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오후부터 해질녘까지의 가을 하늘처럼 다양한 색채와 묘미를 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혹시 영화를 보고 술 마시면서 얘기하고 싶진 않았나요. 전 ‘소리도 없이’가 논쟁을 일으키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어요.”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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