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밀로이드증 센터가 환우들 고립·좌절 걷어낼 것”

“아밀로이드증 센터가 환우들 고립·좌절 걷어낼 것”

전은석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김동현 아밀로이드증환우회 회장의 6년 여정

기사승인 2020-11-11 03:00:04
김동현 아밀로이드증환우회 회장(좌)과 전은석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우)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환우도 치료제도 없고 이름도 낯선 희귀질환을 진단받았다. 막막하고 두려웠지만, 김동현 아밀로이드증환우회 회장은 공부를 시작했다. 아밀로이드증에 대해 누구보다 전문가가 된 김 회장은 치료를 위해 캐나다와 미국을 거쳐 한국으로 날아왔다. 

전은석 순환기내과 교수와 김 회장의 인연은 6년째 이어지고 있다. 김 회장은 지난 2015년 서울시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서 전 교수를 만나 첫 외래진료를 받았다. 전 교수와 병원에 확신이 든 김 회장은 이듬해 캐나다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의사와 환자로 서로를 돕고 의지하며 신뢰를 쌓았다. 때로는 같은 연구대상 아밀로이드증에 골몰하는 의사와 과학자로 소통하기도 한다. 전 교수와 김 회장은 치료제, 치료 옵션, 연구자료 등 아밀로이드증과 관련해 전무했던 희망들이 쌓여가는 여정을 함께 지켜봤다. 지난 2018년에는 일본에서 개최된 아밀로이드증 국제학회에 함께 참석하기도 했다.

이제 전 교수와 김 회장은 국내 아밀로이드증 센터 설립을 염원하고 있다. 이들이 여정의 첫 발을 내딛을 당시 느꼈던 막막함을 다른 환우들은 느끼지 않도록 돕기 위해서다. 삼성서울병원 본관 다학제협의실에서 전 교수와 김 회장을 만나 아밀로이드증의 치료제와 치료 체계 현황을 들었다.

아밀로이드증, 어떤 질환인가요? 

전: 아밀로이드증은 우리 몸에서 트랜스티레틴(TTR)이라는 단백질의 일부가 잘려서 장기에 침범하는 희귀질환이다. 단백질의 일부가 잘리면서 바늘같이 뾰족한 단백질들이 장기에 침착하게 되고 기능을 서서히 약화시킨다.

TTR이 침범하는 곳은 신경계와 심장으로 구분된다. 신경계 침범은 말초신경에 장애를 일으키는데, 이 경우를 ATTR-PN이라고 부른다. 손발이 저리거나 감각 이상, 운동신경에 이상이 올 수 있다. 자율신경계 침범은 심장 운동에 영향을 미쳐, 긴장했을 때처럼 땀이 나거나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을 일으킨다.

심장 침범은 ATTR-CM이라고 부른다. 이 경우는 심장이 딱딱해져 펌프로서의 기능을 점차 잃게 된다. 가만히 있을 때는 괜찮다가도 조금만 움직이면 쉽게 숨이차는 증상이 나타난다. 

김 회장의 경우, 심장 침범으로 관련 증상이 나타났다. ATTR-CM 환자는 평균적으로 3명의 의료진을 거치고 나서야 정확히 진단받을 수 있다는 통계가 있다. 처음에 가정의, 그 다음에 전문의까지 만나도 진단받지 못하다가 결국 심장 증상이 왔을 때 비로소 발견되는 경우가 흔하다. 심장 전공의 한 명이 ATTR-CM 환자를 볼 확률은 평균적으로 1년에 3명 미만이다. 그래서 김 회장이 캐나다에서 ATTR-CM인지 처음 의심했던 의사는 정말 명의라고 생각한다.

아밀로이드증 증상과 진단을 받기까지 과정은?

김: 캐나다에 거주 중 지난 2013년 처음 질환을 진단 받았다. 호흡곤란 증상이 나타나 병원을 찾았고, 6개월만에 초기에 확진 됐다. 진단을 받기 3년 전부터 손목터널증후군이 나타나 수술을 받았고, 발 끝의 신경과 관련된 증상도 나타났다. 

가정의(Family Doctor)와 상담을 거쳐 전문의(Special Doctor)를 찾았고, 골수와 폐의 조직검사를 받아 아밀로이드증 전문 기관인 미국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로 전원 됐다. 이후 다시 미국에서 제일 큰 보스턴 아밀로이드증 센터에서 정밀 검사를 받고, 3년만에 ATTR 아밀로이드증으로 최종 확진을 받게 됐다.

확진 당시 미국과 캐나다에는 ATTR 아밀로이드증 치료제가 없었다. 당시 화이자의 ‘빈다맥스캡슐61mg’(성분명: 타파미디스)이 ATTR-CM 3상 임상을 시작했지만, 그 약이 나올 때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상황이었다. 미국에서 대체제로 ‘디플루니살’이라고 하는 항염증제를 처방받았다. 

캐나다로 돌아와 2년쯤 지나자 상황이 점점 나빠졌다. 한국에 아밀로이드증 치료 인프라가 있는지 궁금해 인터넷으로 검색하다가 전 교수님이 이끄는 삼성서울병원 아밀로이드팀을 알게됐다. 당시 캐나다에는 아밀로이드증 환자가 아예 없었는데, 한국은 이미 40명 이상의 환자가 등록돼 있다는 사실도 알게됐다. 그래서 지난 2016년에 캐나다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왔다.

전: 첫 진료 때 캐나다에서 자료를 정말 많이 갖고 오셨다. 자료를 보니, 국내에선 잘 하지 않는 구체적인 검사들을 모두 받은 상태였다. 국내에서도 2013년 당시에는 ATTR 아밀로이드증에 대한 약제가 나오기 전이었다. 치료제가 없었고, 일본산 항염증제를 희귀의약품으로 등록해 쓰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수소문 끝에 삼성서울병원에 내원해 준 것이 참 감사했다. 당시 국내에서 아밀로이드증을 집중 연구했던 팀은 삼성서울병원 아밀로이드증 팀이 유일했다. 우리는 지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약 5년동안 신경과, 혈액종양내과 등 여러 과가 아밀로이드증 다학제 진료팀을 꾸리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아밀로이드증 치료 체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전 교수(좌)와 김 회장(우)

아밀로이드증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까지 개발됐나요?

전: 혈액 속에 섞여 있는 불안정한 TTR 단백질을 찾아서 테트라머(Tetramer)라는 결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게 만드는 치료제가 있다. 그게 바로 타파미디스를 성분으로한 ‘빈다켈’과 이보다 용량이 높은 ‘빈다맥스’다. ATTR-PN 치료제인 빈다켈은 신경계 쪽에서 효과가 증명돼 국내에서 사용할 수 있고, 건강보험도 적용된다. 아밀로이드증이 희귀질환이기 때문에 환자가 치료제 비용의 10%만 부담하면 된다.

빈다맥스의 급여는 결정되지 않았다. 2년 전 NEJM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빈다맥스가 심혈관계 사망률, 입원율을 낮추고 환자의 운동능력도 좋게 해준다는 임상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이에 따라 빈다맥스는 미국 FDA와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급여와 관련된 사항은 아직까지 확정된 것이 없다.

현재 국내에서는 신경과 증상이 있는 사람만 보험 적용을 받고 이들 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다. 심장 증상이 있을 경우, 빈다켈의 약 3배 이상 용량이 필요하지만 아직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다. 나와 김 회장 모두 하루 빨리 환자들이 치료제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밀로이드증 치료에 가장 중요한 것을 꼽는다면?

전: 희귀질환은 조기진단이 가장 중요하다. 현재 아밀로이드증 환자들은 최종적인 진단을 받기까지 통상적으로 3~5년을 고생하고 있다. 환자의 장기가 이미 많이 손상된 시점에서 진단되는 것이다. 

진단부터 치료까지 일원화될 수 있는 센터가 있다면, 그 곳을 거점으로 전국에 흩어져 있는 환자들을 모을 수 있다. 의료진이 환자들을 신속히 진단하고, 집중적으로 관리와 치료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김: 환자 입장에서도 전 교수의 의견에 공감한다. 희귀질환을 가진 환자는 의료진에 대한 신뢰, 철저한 자기관리, 정신 건강 세 가지를 지켜야 한다. 비슷한 환자를 만나기 어렵고, 치료 방법과 체계도 미비한 상태에 놓인다면 환자들은 소외감에 빠지고 좌절하기 쉽다.  

아밀로이드증 센터는 환자들이 희망과 용기를 품을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나와 같은 아밀로이드증을 가진 환자들이 모여있고, 전문적인 의료진이 치료와 연구를 하고 있는 센터의 존재만으로 환자들은 희망을 얻고 적극적인 치료에 임할 수 있다.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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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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