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을 찾아서] 전기정비 외길 35년...정규점 포스코 명장

[명장을 찾아서] 전기정비 외길 35년...정규점 포스코 명장

정규점 명장 “끈기 있게 하면 해결하지 못할 것 없어”

기사승인 2020-11-12 05:30:02
▲현장 전기실에서 정전방지 활동을 하는 정 명장. (사진=포스코 제공)
[쿠키뉴스] 임중권 기자 =포스코가 올해 7월 기술인 최고의 영예인 포스코명장(名匠) 3인을 선발하고 임명패를 수여했다.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과 노하우로 한국 철강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정규점 포스코 명장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1인당 GDP가 600달러에 불과했던 1970년대 중반.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일찍이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기술을 배우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정규점 명장의 유년 시절도 다를 바 없었다.

호기심도, 승부욕도 많았던 어린 시절의 그는 친구들과의 대결에선 꼭 끝을 봐야 하는 아이였지만, 부모님 말씀이라면 곧잘 듣는 모범생이었다. 모두가 돈을 벌기 위해 농촌을 떠났던 그 시절, 기술을 배워 번듯한 회사에 취직하길 바라는 부모님의 마음을 어린 그라고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공업고등학교 전기과에 입학한 그는 19살의 어린 나이에 첫 직장에 취직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의 가슴 한구석에는 못다 한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는 열정이 자리잡고 있었다.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열의 덕분이었을까. 2년 3개월 동안 모은 급여로 등록금을 마련한 그는 전기를 더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해 밤낮으로 전기관련 지식 및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 매진했다. 대학을 마치고 뒤늦게 입대한 군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 명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당시 대학 입학도 군 제대로 늦은 것 투성이였지만, 한결같은 꿈이 있었다”며 “조국 근대화의 기수가 되겠다는 일념이 제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군 제대 후 여러 회사로부터 입사 제안을 받은 그가 포스코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주위에선 고향 근처인 창원 공단에도 회사가 많은데 굳이 먼 포항까지 가느냐고도 했다.

하지만 포스코를 향한 그의 사랑은 완고했다. 정 명장은 “입사 전 전국체전에 참가한 포스코축구단의 소식을 들으려고 경기 내내 라디오 앞에 앉아 있었다”며 “포스코축구단의 활약상을 보며 포스코의 일원이 됐음을 가슴 깊이 느끼곤 했다”고 말했다.

청운의 꿈을 품고 입사한 포스코였지만, 현실의 벽은 무척 높았다.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밤낮으로 가동되는 제철소 특성상 전기설비에 문제가 생기면 공정이 중단되기 때문에 설비를 최상의 상태로 보전해야 하는 정비 부서는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누군가가 전기설비 관련 도움을 요청하면 신속히 해결해야 하는데 입사 초기의 그에겐 모든 게 어렵고 서툴기만 했다. 한 번은 타 부서에 업무 지원을 나갔다가 상대의 직함을 몰라 급한 마음에 ‘아저씨’라고 불러 호되게 혼났던 웃지 못할 일화도 있었다.

정 명장은 “입사 전 전기에 대해 좀 안다고 생각했지만 현장은 이론과 달랐다”며 “그래서 ‘전기가 눈에 보이게 하자’는 목표를 세웠었다”고 말했다. 전기의 흐름이 사람의 눈에 보일 리 없을 터.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일 만큼 뼈를 깎는 열정을 다하겠다는 의지로 전문지식을 보완하기 위해 틈만 나면 전기기술 서적을 뒤적였고, 핵심 기술이나 자료는 노트에 빼곡히 적기 시작했다.

▲사진=포스코 제공
그가 그렇게 취득한 국가전문기술자격증만 15개다. 남다른 자료 욕심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끈기 있게 물고 늘어지면 해결하지 못할 것은 없다는 지론이 됐다. 부대시설 정비감독업무를 하던 입사 초기에는 인위적으로 고장을 내어 트러블 조치 방법을 습득하는 열정을 쏟았다.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자 업무에 임하는 자세도 달라졌다. 고질적인 설비문제점을 해결하는 데에는 현상에 대한 원인 분석과 문제를 해결하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필요했다. 설비에 대한 애착과 관심을 바탕으로 끈기 있게 집중력을 발휘하다 보면 엉켜있던 실타래가 풀리듯 해답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1992년,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더욱 전문적인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기술대학에서 공부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정규점 명장으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곧장 학업의 길에 오른 그는 교수의 가르침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 맨 앞자리에 앉아 강의를 녹음하고 노트가 닳도록 외워가며 최신 기술을 습득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수석으로 졸업한 그가 현장으로 돌아온 날, 그의 시야에는 직접 몸 부딪혀 해결해야 할 새로운 과제들이 놓여있었다. 다시금 그의 열정에 불이 붙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신기술과 무수히 많은 이론을 접했다 한들 현장에서는 늘 새로운 상황이 펼쳐졌다. 매일 아침 그날의 업무 리스트를 적고 중요 순서를 정해 놓았지만, 긴급하게 기술지원 요청이 오면 모든 게 무용지물이었다.

대형 설비의 장애는 생산성 감소와 직결된다. 특히 정규점 명장이 맡은 전력 설비는 조그마한 실수라도 ‘블랙 아웃(Blackout, 정전)’이라는 큰 파장을 불러오기에 잠시도 방심할 수 없었다.

회사업무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그의 책임감을 알기에 아내는 가끔 한밤중에 걸려오는 긴급 업무 지원 전화를 대신 받아 그를 깨워주기도 했다. 집안 경조사에도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는 그에게 아내는 늘 “얼마나 급하면 이 시간에 연락했겠어요. 조심히 다녀와요”라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24시간 지칠 줄 모르고 달리던 그에게 돌연 제동이 걸렸다. 2005년 5월, 2열연공장에 일어난 화재 사고 복구를 위해 일주일 동안 밤을 새운 것이 화근이었다. 아침 출근을 위해 운전을 하다 갑자기 정신을 잃은 그는 극심한 어지럼증으로 인해 한 발자국도 걸을 수 없었다. 휴가를 내고 다급히 병원을 찾았지만, 이렇다 할 증상을 밝혀내지 못했다.

까닭 모를 병을 앓는 와중에도 정규점 명장은 하필이면 제일 바쁠 시기에 아픈 것이 속상했고, 동료들에게 못내 미안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자신이 넘어서야 할 위기라고 생각한 그는 책상 앞에 붙여놓은 문구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를 떠올리며 치료에 전념했고, 일주일 만에 무사히 현장에 복귀할 수 있었다.

다시 돌아온 정규점 명장에게 동료들은 입을 모아 ‘정박사가 돌아왔다’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그 말에 힘을 얻어 주말과 휴일은 물론 밤낮으로 열심히 뛰어다닐 수 있었다. 이렇듯 정 명장이 위기를 극복하고 회사생활을 이어가는 데에는 인생의 스승과도 같은 선배들이 큰 힘이 됐다.

2006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명장의 선배 배신포씨는 “평소에 건강을 잘 지켜라, 부모님은 자식이 효도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같은 조언으로 인생에 때가 있음을 일깨웠다고 한다. 그는 몸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남의 일을 자기 일보다 더 적극적으로 도와주던 선배를 다시 만나 뵐 수 없어 안타깝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정 명장은 “힘든 시기에 용기와 희망이 돼 준 당시 과장님, 명장에 도전했다 탈락했을 때 ‘내 마음속의 명장이니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따뜻한 위로를 건네준 상사들이 계셨다”며 “응원해 준 동료들이 있었기에 포스코명장이 될 수 있었다”며 주변인들에게 공을 돌렸다.

▲사진=포스코 제공
정비인은 늘 ‘안정된 조업, 생산성 향상’이란 목표를 되뇌며 정비업무에 임한다. 정규점 명장 역시 마찬가지다.

전력 설비에 장애가 발생했을 경우 설비별 특성을 고려해 신속하게 원인을 분석하고 복구방안을 수립해 조업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는데 설비장애 현장에서는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오로지 다년간의 경험으로 쌓은 노하우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업중단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만들지 않기 위해 35년간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쏟아 부은 그는 포항제철소 설비 장애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안정조업을 실현하기 위해 지금까지 다양한 과제를 수행했다.

그 중에서도 그가 가장 자부심을 느낀 것은 3선재공장 22KV GCB(특별고압차단기) 합리화다. 당시 투자 예산이 약 18억 원 정도로 책정 됐는데, 교체 대상 전력 설비가 사용 빈도가 적어 비교적 깨끗한 상황으로 재활용할 것을 제안했고, 결국 마모성 자재 부분만 교체해 약 2억 원 정도로 정비 작업을 완료하는 데 성공했다.

정규점 명장은 독보적인 전기설비의 신속한 트러블 슈팅(Trouble Shooting) 기술로 국내는 물론 해외 생산기지의 조업피해 최소화에도 기여해 왔다. 지난해 포항제철소의 전력 인프라 설비 고장 시간은 114시간 수준이었다. 전력설비가 고장나면 조업을 멈춰야 하고, 이는 곧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므로 신속한 복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는 특히 2016년 경주지진 시 정전 사고 현장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정 명장은 “2016년 9월 경이었다. 경주에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는데 포항제철소까지도 영향을 미쳤다”며 “포항제철소 3제강공장 등이 지진의 피해를 입어 전력공급용 메인변압기 2대가 소손돼 정전이 발생했다. 인프라 설비가 멈추면 조업이 올스톱된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는 것을 모두가 알기에 관련 직원 모두가 모여 비상대책회의를 열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정 명장과 팀원들. (사진=포스코 제공)
정규점 명장은 당시 3제강공장 비상변압기 설치와 운용을 맡았다. 그를 포함해 모든 직원은 신속한 복구를 위해 사력을 다했다. 저녁 8시부터 시작한 복구작업은 다음날 아침 6시경에 마쳤다. 약 11시간 만에 비상조업을 할 수 있을 수준으로 전력설비를 복구하자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명장의 혜안은 그 후에 발휘됐다. 응급복구 후 약 3개월간 비상조업이 이어졌고 신품 변압기 2대가 입고됐다. 정 명장은 신품 변압기와, 기존 변압기 및 비상용변압기3대를 병렬 운전하는 방식을 검토해 정전 없이 변압기 2대를 교체했다. 조업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명장의 아이디어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이렇듯 맡은 업무에 대한 그의 헌신과 열정은 조업안정화를 이끌며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향상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명장은 신증설 설비 조기안정화와 대형 설비장애 예방활동, 현장 정비부서의 애로사항을 적극 발굴하고 해결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8년 올해의 포스코인에 선정됐다.

또 2017년 신설된 Senior PCE(POSCO Certified Expert)에 최초 선발됐고, 지난해에는 경북의 기술 발전에 이바지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경상북도 최고 장인에도 이름을 올렸다. 35년의 세월이 흘러 내로라하는 기술자가 되었지만, 그에게도 아쉬움이 남는 순간들이 있다.

현장에서 경험한 핵심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못한 지난날과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다면 막을 수 있었던 사고들이 바로 그것이다.

▲사진 포스코 제공
그래서일까. 그는 기술 전수와 후배 양성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2012년 대한민국 산업현장교수 활동을 시작으로, 2014년 일학습 병행 기업현장 전문가로 활약했다.

2017년부터는 NCS(국가직무능력표준) 집필위원, 한국산업인력공단 능력개발 전문가 및 국가기술 자격검정 위원으로 활동하며 후배들의 기술력 향상에 열의를 다하고 있다.

정 명장은 “후회 없는 내일을 위해 그는 앞으로도 취약설비를 개선하고 현장 맞춤형 기술교육 활동을 수행하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며 “일평생 쌓아온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해 직원 전체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소통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먼저 찾아가는 기술지원’이란  슬로건이 그의 인생 전부를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명장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봉사활동을 꾸준하게 해 3000시간 이상 달성했다. 사내 전기기술 봉사단을 비롯해 재능봉사인 쇠터얼 문화재돌봄 봉사단 및 자율방범대(사외)를 창설해 지역주민의 안전과 청소년 선도 및 안전귀가를 목표로 16년 동안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명장은 “늦은 밤거리를 서성대는 청소년들이나 학생들을 잘 타일러 집으로 돌려보낼 때는 같은 부모의 심정으로 뿌듯함을 느끼게 됐다”며 “요즈음은 문화재돌봄 봉사단에서 지역문화재를 보존하고 알리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우리지역 문화재를 지키고 잘 보존하는데 열정을 다하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정 명장은 “포스코의 미래는 소신껏 행동하고 솔직하고, 똑똑한 후배들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후배들이 애사심을 갖고 기술적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핵심기술 자료를 정립하겠다. 기술 전수 교육에 힘써 회사의 정비 기술력 향상에 힘을 보탤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im9181@kukinews.com
임중권 기자
im9181@kukinews.com
임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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