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공공병원 활성화를 위해서는 인력과 시설에 대한 투자와 경영 자율권을 보장하고, ‘공공병원관리공단(가칭)’을 설립해 통합적으로 관리‧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향후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강화정책)’가 완성될 경우 공공병원의 경영수지는 흑자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18일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은 ‘공공의료 확충 필요성과 전략’ 보고서를 공개하고 우리나라 공공병원의 현황과 문제점을 진단했다. 보고서는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을 ▲표준 진료 및 모델병원 ▲지역거점 공공의료기관 ▲건강증진을 위한 병원 ▲전염병 및 재난 대응 의료기관 ▲정책집행 수단 및 테스트베드(Test-bed)로 제안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공공병원 설립에서 ‘예비타당성 조사’ 및 ‘지방자치단체 부담금’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운영 지원을 위한 ‘공공병원관리공단’ 설립을 제안했다.
보고서는 진주의료원 폐쇄 및 메르스‧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일반국민과 지방자치단체들의 공공의료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고 있고, 코로나19 전‧후 의료서비스를 공적 자원으로 인식하는 비율도 22.2%에서 67.4%으로 크게 증가해 공공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의료전달체계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케어는 보건의료재정 개혁으로, 보건의료공급체계 개혁이 함께 추진돼야 완성될 수 있으나, 지금까지 두 가지 개혁의 속도가 일치하지 않고, 연계가 명확하지 않아 환자의 상급종합병원 집중 등의 의료전달체계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현재 공공의료기관 만으로 의료전달체계 개편은 불가능하며, 민간을 주도할 수 있는 공공의료기관의 확충과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인구 고령화로 인한 비수도권 농촌지역 의료시장 붕괴도 대비해야 한다. 전국적으로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2017년 13.8%에서 2047년 38.4%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인구고령화로 중간 규모의 민간병원은 수익창출이 어렵기 때문에 요양병원이나 시설로 전환해야 하며, 인구가 줄면 이조차도 존립이 어려워 공급체계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고령화가 진행되고 인구가 더 줄어들게 되면 건강, 의료, 돌봄, 복지는 해당 지역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위험요소가 되므로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지역의 건강, 의료, 돌봄, 복지체계를 근본적이고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우리나라 의료 공급과 재정 특징은 공적인 재원을 주로 사용하지만 공급은 민간의료기관이 주도하는 특수한 형태다. 하지만 공공의료기관은 근거법령에 따라 소관부처가 분산돼 있어 국가 전체 차원에서 포괄적인 국가보건의료계획의 수립과 집행이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12월말 기준 공공의료기관은 221개로 전체 의료기관(4034개)의 5.5%이며, 공공병상 수는 6만1779병상으로 전체의 9.6%에 불과하다. 이 중에서도 지방의료원을 포함한 일반진료기능 기관은 63개(28.5%)에 불과하며, 17개 시‧도 가운데 광주, 대전, 울산, 세종은 지방의료원이 없는 실정이다.
2018년 기준 사회보험방식 국가와 공공병상 비율을 비교하더라도 일본 27.2%, 독일 40.7%, 프랑스 61.5%로 차이가 크다.
보고서는 “공공의료 취약으로 의료기관의 수직적(1․2․3차 의료기관), 수평적(지역 분포) 분포가 불균형하고, 이로 인해 의료기관 간 기능 중복과 지역 간 격차(필수의료서비스 제공 및 의료의 질)가 크게 발생한다”며 “행위별 수가제라는 지불제도와 함께 민간병원 중심의 의료공급으로 과잉 및 과소 진료를 유발하고, 국가적 재난·재해·응급상황의 안전망이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공병원의 기본적인 역할은 과잉진료나 과소진료가 아닌, 질병에 따라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표준진료를 실시하는 것이다. 현재의 공공병원들도 표준진료 실시를 위한 일정한 기능을 하고 있다”며 “또 수평적으로는 지역 간 서비스 격차를 줄이고, 수직적으로는 공공의료기관이 ‘지역거점 의료기관’ 역할을 통해 공공의료 중심의 효율적인 의료전달체계를 재구성하는 역할도 한다”고 공공병원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존 민간 기피진료 및 취약계층 중심 진료에서 국민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구를 제공하는 조정자 역할도 하고, 감염병 유행을 포함한 국가적 재난·재해·응급상황을 대응하는 역할도 한다”며 “새로운 건강보험정책 도입을 위한 시범사업 등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국내 의료산업의 테스트베드 역할도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양질의 의료 서비스 제공을 위해 적정 규모(300병상 이상 종합병원)의 공공병원을 진료권별로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공공병원의 설립비용은 300~500병상당 약 2000억원 정도이며, 운영비용은 기본적으로 건강보험 진료로 수입을 창출하므로 다른 사회간접자본과 비교해 비용이 크지 않다고 강조했다. 공공의료기관 설립의 기대효과 등을 고려할 경우 고속도로 4~7km, 어립이집 약 100개, 유치원 40~50개, 노인요양시설 약 30개 설립비용 수준이다.
지자체에서 적자운영으로 설립을 꺼리는 지방의료원 경영수지는 만성적인 적자에서 2016년 신포괄수가제 적용 이후 절반 이상이 흑자로 전환됐지만, 대부분 지방의료원의 의료이익은 적자다. 다만, 향후 문재인 케어가 완성될 경우 경영수지는 흑자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서는 전망했다. 신포괄수가 도입 당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목적으로 비급로 있던 서비스 행위(CT 등 질병군 치료에 필요한 비급여 항목)를 급여 영역으로 포괄해 이미 보장성이 강화됐고, 보장성강화정책으로 더 강화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공병원 설립의 경우 예비타당성 조사와 지방자치단체의 부담금이 장애요인이 되고 있어, 예비타당성 평가를 면제하고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국가의 보조금을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에 따라 차등 지급할 필요가 있다.
또 보고서는 현재의 공공의료기관에게 향후 제시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적자를 이유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제대로 지원하지 않아 공공의료기관의 시설과 장비 및 인력가 열악하다고 지적했다. 인력의 경우 100병상당 의료인력 수 기준으로 민간 종합병원 대비 의사는 62%, 간호사는 74% 수준인데, 지역에서 근무하는 의사가 적기 때문에 지역에 좋은 병원이 있어야 한다.
보고서는 “병원의 경영이 효율화되지 않으면 진료의 수준이 향상될 수 없고, 진료수준이 낮으면 국민의 신뢰도 받지 못하게 되어 결국 민간에 영향력 있는 공공의료 리더십이 발휘될 수 없기 때문에 거버넌스 체계를 제대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질적 성장으로는 공공병원의 인력과 시설에 대한 투자와 경영 자율권을 보장하고, ‘공공병원관리공단(가칭)’을 설립해 통합적으로 관리‧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보험자가 공공병원을 통해 국내에서 개발한 의약품이나 치료재료 등을 전략적으로 구매해 사용하게 될 경우 국내 의료산업 활성화에 기여할 수도 있다”며 “국산 의료기기 및 치료재료 등을 개발해도 이를 사용해주는 병원이 없거나 부족한 일이 없도록 확충된 공공병원이 국산 신제품의 시험장(test-bed)로 의료기기산업 발전을 견인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김용익 건보공단 이사장은 “‘공공의료 확충 필요성과 전략’ 보고서는 ‘공공의료 확충’의 필요성과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19과 같은 대규모 감염병 대응을 위한 필요를 넘어서 초고령 사회에 대비해 국민의 총의료비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며 “공공의료 확충의 이익은 국민을 건강하게 만들고 국내 의료산업을 발전시켜 국가경쟁력을 강화에 기여하는 것”라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만일 이 시점에도 공공의료 확충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힘들 수 있으며, 의료불균형이 심화되어 막대한 사회비용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면서 “때문에 정치권과 정부는 공공의료 확충은 비용이란 과거의 인식에서 벗어나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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