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에서 석 달 살기] 고창의 숨은 명소 문수사 단풍숲에서 듣는 구한말 의병장 박포대 이야기

[고창에서 석 달 살기] 고창의 숨은 명소 문수사 단풍숲에서 듣는 구한말 의병장 박포대 이야기

고창의 은퇴자공동체마을 입주자 여행기 (11)

기사승인 2020-11-28 00:00:03
고창과 장성의 경계를 이루는 축령산의 서쪽 경사면에 자리한 문수사는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곳 단풍숲은 숨어 있는 단풍명소다. 구한말 일본에 대항해 의병을 일으켜 싸운 기삼연과 박포대의 이야기를 품은 숲이다.
고창의 동쪽엔 장한 산줄기가 남쪽으로 치닫고 있다. 영산기맥인데 입암산, 방장산, 축령산을 거처 목포의 유달산까지 이어진다. 고창읍성에서 남동쪽으로 직선거리 5km 거리의 축령산 서쪽 자락에 문수사가 있다. 가까운 곳에 있지만 가는 길이 산첩첩 물첩첩이다.

단풍철엔 일주문에서 조금 떨어진 주차장에서부터 걷게 되는데 걷는 동안 길옆에 가로수처럼 자라는 단풍을 보며 언덕 너머의 단풍숲을 짐작한다.
문수사는 1500여년 전 신라의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데 그때 이곳은 백제 땅이었다. 최종 중수한 때는 1876년 (고종 13)이었다. 문수사가 자리한 산은 장성과 고창의 경계를 이루는 곳인데 보통은 축령산이라 하지만 청량산 또는 문수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문수사 일주문은 절집에서 500m 이상 떨어진 곳에 있다. 문수사가 자리 잡은 축령산 자락이 청량산으로도 불리고 있는지 일주문엔 청량산문수사라 되어 있다. 일주문 옆에 비스듬히 자라는 단풍은 강령한 햇빛에 지지 않고 그 붉은 색을 뽐내고 있다.
한 번 찾아오기 쉽지 않아 늘 한산한 이 절집은 10월이 지나면서 붐빈다. 멋진 단풍 때문이다. 고창 인근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널리 알고 있는 단풍명소다. 알음알음으로 찾는 이가 늘면서 주차장, 화장실 등 기반 시설을 확충하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 걸으면서 양쪽 숲을 살펴보면 단풍나무가 여러 종류의 나무들과 섞여 있어 숲의 색이 무지개처럼 나타난다.
절집 멀리서부터 2차선 도로 가장자리엔 가로수로 심어진 단풍나무가 아직 어리지만 강렬한 색을 뽐내고 있다. 이 단풍나무 가로수는 산골짜기가 가까워질 때까지도 계속 따라오며 문수사 단풍 숲의 아름다움에 관해 속살거린다.
 
사람들이 문수사 단풍길이라 부르는 이 길은 양쪽에서 다양한 나무들이 제멋대로 자라며 멋진 그늘을 만들고 있다.
축령산 능선을 걸으며 서쪽 경사면에 문수사가 있고 그 숲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으니 출입하지 말라는 안내 표지판을 읽었다. 그런데 문수사 일주문 앞에 서서 보니 淸凉山文殊寺(청량산문수사)라는 현판이 보인다. 축령산이면 어떻고 또 청량산이면 어떠하랴. 일주문 옆에 비스듬히 자리한 단풍 고목의 색이 저리도 아름다운데. 

단풍은 노랗게 농익어서 질 참인데 그 위의 나무는 여전히 싱싱한 초록의 나뭇잎을 자랑하고 있다.
10월 중순까지만 해도 거의 보이지 않는 문수사 단풍은 11월 초순이 되어야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이때쯤이면 일주문에서 문수사까지 약 500m의 길을 걸으며 양쪽 깊이 펼쳐진 숲의 온갖 색을 눈에 담을 수 있다. 굳이 어느 곳이 더 예쁘고 어느 곳이 덜 아름답다고 비교할 수 없다. 눈으로 바라보는 곳 어디든 노랗거나 붉은 단풍잎, 덜 노랗거나 덜 붉은 단풍잎 또는 아직 색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초록의 단풍잎이 여러 나뭇잎과 어울려 눈길을 붙잡으니 걸음을 옮길 수 없다. 나무 그늘 밖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그 색들을 더욱 맑게 만든다. 사람이 흉내 낼 수 있는 색이 아니다. 

개서어나무로 보이는 고목은 이미 잎을 떨군 지 오래인데 숲속의 단풍은 여전히 아롱다롱한 색으로 숲을 물들이고 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겨 문수사 입구로 들어서면 숲과 단풍의 깊이에 다시 멈춘다. 문수사 주변엔 수령 100년~400년으로 추정되는 단풍나무 500여 그루가 있는 숲이 있다. 나무의 직경은 30~80cm, 높이는 10~15m에 이른다. 특히 가슴 높이의 나무 둘레가 2~3m인 거대한 단풍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는 이 숲의 보호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단풍나무 외에도 고로쇠나무, 상수리나무, 팽나무, 느티나무를 포함해 많은 종류의 나무들이 섞여 이 숲이 더욱 풍성하고 그윽하기까지 하다.

절집 가까운 곳에 대숲이 청청하고 그 앞의 나무는 비록 단풍나무가 아니어도 돋보이는 노란 잎을 자랑한다.
숲의 냄새와 색에 취해 절집 근처를 조심조심 걷기도 하고, 앉아 먼 곳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다 돌아서 나오는데 절집 안내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일제가 군대를 해산하자 1907년 기삼연이 의병을 일으켜 일제와 싸웠던 곳이며, 포대장이었던 박도경이 흩어졌던 의병을 규합해 이곳에서 일본군과 여러 차례 싸웠다’고 한다.

문수사 단풍숲은 매우 깊을 뿐 아니라 나뭇잎의 색이 폭넓게 나타난다. 
장하도다 기삼연, 
제비 같다 전해산,
잘싸운다 김죽봉, 
잘도 죽인다 안담살이,
되나 못되나 박포대

문수사는 산비탈에 땅을 마련해 절집을 지은 까닭에 대웅전조차 작고 소박하게 산에 안겨 있다.
1910년 무렵 전라도 일대에서 아이들 사이에 퍼진 노래라 한다. 노래에서 전해산은 기삼연 부대의 부장이었다. 김죽봉은 기삼연 부대의 선봉장이었던 김태원, 안담살이는 머슴 출신의 의병장 안규홍 그리고 박포대는 기삼연의 포대장이었던 박도경이다. 

손바닥 크기의 절집마당 담장 너머 단풍이 울긋불긋한 저 숲 어딘가에 구한말 항일 의병장 기삼연과 박포대의 부대가 둥지를 틀었었다.
박도경은 문수사에서 2km쯤 떨어진 은사마을에서 태어나 주먹패로 살아가던 중 기삼연의 설득에 따라 의병에 합류했다. 의병활동 중 의병을 훈련시키고, 고창읍성을 공격해 많은 무기를 획득함으로써 의병들의 무장을 도왔다. 이 과정에서 구한 총을 이용해 많은 적군을 살해하면서 그의 사격 솜씨가 널리 알려져 본명보다는 박포대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해졌다.

총을 잘 쏴서 박포대라는 별명으로 더 널리 알려진 박도경은 문수사에서 2km쯤 떨어진 은사마을이 고향이다. 박포대는 기삼연의 의병대에 합류한 후 의병들을 혹독하게 훈련시켜 강한 군대로 만들었고 고창읍성을 공격해 많은 무기를 확보했다.
의병대장 기삼연이 체포되어 처형된 후 박포대는 뿔뿔이 흩어졌던 의병들을 다시 규합해 항일 투쟁을 계속했으나 오래지 않아 그 역시 방장산에서 체포되었다. 재판에서 사형이 확정되고 대구 감옥으로 옮겨졌다. 그는 이곳에서 일본인의 손에 목숨 잃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거두었다. 

박포대는 의병대장 기삼연이 붙잡혀 처형된 후 흩어진 의병들을 규합해 항일 싸움을 이어 갔지만, 대대적인 진압 작전으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대구로 옮겨졌다. 대구형무소에서 자결한 박도경의 주검을 상인들이 거두어 그의 고향 마을에 장사지냈으며, 1963년 유림들이 뜻을 모아 고창의 향교 산에 이장했다. 후에 그의 공이 인정되어 2009년 대전 현충원 독립운동가 묘역에 안장되었다. 고창에는 새마을공원에 그의 공적을 알리는 추모비가 서 있다. 


오근식은 1958년에 태어났다.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직해 근무하던 중 27살에 대학에 진학했다. 졸업 후 두 곳의 영어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인제대학교 백병원 비서실장과 홍보실장, 건국대학교병원 홍보팀장을 지내고 2019년 2월 정년퇴직했다. 2019년 7월부터 1년 동안 제주여행을 하며 아내와 함께 800km를 걷고 돌아왔다. 9월부터 고창군과 공무원연금공단에서 마련한 은퇴자공동체마을에 입주해 3달 일정으로 고창을 여행 중이다.

전혜선 기자
jes5932@kukinews.com
전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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