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5년 호주 태즈메이니아의 한 마을에서 영국군에 복종하며 살아가던 클레어 가족에게 끔찍한 참상이 벌어진다. 영국군 장교 호킨스(샘 클라플린)에게 모든 것을 잃은 클레어는 승진을 위해 호주 북부로 향하는 호킨스 무리를 쫓는다. 분노에 휩싸여 길잡이 역할의 빌리(베이컬리 거넴바르)와 함께 전쟁 중인 위험한 땅을 가로지르던 클레어는 밤마다 환영에 시달리며 흔들리기 시작한다.
‘나이팅게일’은 강한 원한을 품고 악당을 뒤쫓는 추적 복수극에 가깝다. 낯선 조력자를 만나 티격태격하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결국 한 팀이 되어 뜻을 함께 하는 전형적인 구조를 가져왔다. 통행증이 없으면 마음대로 다니지도 못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인종과 성별, 국적을 뛰어넘어 흑인 원주민 남성과 백인 아일랜드인 여성이 우정을 나누고 백인 영국군 남성을 함께 뒤쫓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전복의 쾌감을 준다. 영화 초반부 클레어가 겪는 고통을 고스란히 체험하면 그의 복수를 강렬히 응원하게 된다.
단순한 복수극은 아니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분노만으로 복수를 완성할 수 없다. 사회적 계층으로도, 물리적인 힘과 장비로도 훨씬 약한 클레어가 복수를 다짐하고 길을 떠나는 것부터가 무모하고 불안한 일이다. 그를 마냥 지지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영화 중반부를 넘어가며 클레어 개인의 복수극으로 읽혔던 영화는 무자비한 폭력 자체에 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복수극에서 멀리 떨어져 걸어오던 빌리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가까워지고 클레어를 넘어 영화의 주인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결말로 이어지는 과정이 매끄럽게 설명되진 않지만, 두 사람이 겪고 느끼는 것을 보고 있으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호주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역사에서 일어난 폭력의 여파를 탐구한 제니퍼 켄트 감독의 뛰어난 연출이 빛난다. 인물들의 감정과 행동을 묵묵히 따라가면서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국내 관객들에게 낯선 배우들 역시 하나 같이 놀라운 연기를 선보인다.
오는 30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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