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밴드’는 가수·작곡가·연주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남성’ 뮤지션들이 모여 하나의 밴드를 이루는 과정을 그린다. 2019년 시즌1을 론칭할 당시 제작진은 ‘슈퍼밴드’를 “최소한의 제한만이 존재하는 오디션 형태의 ‘음악천재 성장기’”라고 소개했다. 남성 뮤지션이 ‘슈퍼밴드’에 출연한다는 이유만으로 ‘음악천재’라고 올려쳐질 때, 여성 뮤지션들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최소한의’ 문턱에 걸려 존재 자체가 지워졌다.
명백한 성차별이자 음악계 흐름을 거스르는 무지다. 시청자들은 ‘슈퍼밴드2’의 성별 제한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슈퍼밴드’ 시즌 1, 2의 홈페이지와 JTBC 옴부즈 프로그램인 ‘시청자 의회’의 시청자 게시판은 성차별적인 지원 조건에 항의하는 글로 가득하다. “명백히 여성 뮤지션들의 기회를 박탈하고 성차별적 시선을 더욱 견고히 하는 부당한 행위”(ID 김*희) “다재다능하고 실력있는 여성 뮤지션들이 잔뜩 존재하는데 굳이 이들을 배제하고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ID -***) “음악은 보편적인 언어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ID A******R)…. JTBC는 “‘슈퍼밴드2’는 남성 밴드를 만드는 프로그램으로 기획됐다”는 입장만 내놨다.
여성 뮤지션들의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싱어송라이터 오지은은 SNS에서 “또 ‘슈퍼밴드’ 남자만? 근데 왜 그렇게 정했는지 그 사고의 흐름을 알 것 같아서 더욱 화가 난다”고 말했다. 밴드 새소년의 프론트퍼슨 황소윤은 ‘슈퍼밴드’ 시즌1의 지원 요건을 비판한 씨네21 기사를 공유하며 “안녕하세요. 저는 세계적인 밴드 새소년의 프론트퍼슨 황소윤이고요. 여성입니다”이라고 적었다. 쿠키뉴스는 여성 뮤지션들에게 직접 의견을 물었다. 아래에 그 메시지를 전한다.
“실용음악, K-POP, 클래식, 국악, 록, EDM, 힙합, 뮤지컬, 재즈, 월드뮤직 등 장르 불문에 나이, 국적, 학벌 다 상관없지만 여성은 안 되는 자격조건 매우 규탄합니다. 이는 수많은 여성뮤지션을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애초에 음악성이든 스타성이든 성별로 구분 짓는 것부터 틀렸습니다. 틀렸고 낡았고 무지하고 시대착오적이고 어리석고 마룬파이브 열심히 들으세요.”(밴드 빌리카터 김지원)
“정작 밴드 음악을 하는 여성 뮤지션에게는 기회조차 주지 않네요. 추후 여성뮤지션을 포함한 시즌을 제작할 의향이 있다 말했었는데 그게 대체 언제인지 이제는 따져 묻고 싶습니다. 2021년에도 이런 차별이 당당하게 이루어지는 시대착오적인 기획을 규탄합니다.”(밴드 에고펑션에러 김민정)
“기획 의도는 마룬파이브(Maroon5) 같은 글로벌 팝 밴드를 만들어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초반 시즌은 지향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남성 위주로 갔다.” 김형중 PD는 시즌1 방영 당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여성 참가자들을 배제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하지만 마룬파이브가 오직 남성 멤버로만 이뤄진 팀이어서 ‘글로벌 팝 밴드’가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콜드 플레이나 비틀즈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팝 밴드’라는 지향점과 성별은 아무 관련이 없다는 뜻이다. 다가오는 그래미 시상식 후보자 명단을 봐도 그렇다. 베스트 록 퍼포먼스 부문에 ‘남성 멤버로만 이뤄진 밴드’는 단 한 팀도 없다.
음악적 동료를 만나 팀을 결성할 기회(‘슈퍼밴드’)도, 서로 다른 보컬리스트들이 모여 4중창을 꾸릴 기회도(JTBC ‘팬텀싱어’ 시리즈), 뮤지컬 앙상블 배우에서 주연으로 거듭날 기회도(tvN ‘더블캐스팅’) 모두 남성들에게만 허락된다. 여성의 존재는 지워지고 여성의 성취는 무시되며 여성의 기회는 박탈당한다. 이것은 여성 뮤지션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 전체에 대한 모욕이다. JTBC의 개국 10주년이 이렇게 밝았다.
wild37@kukinews.com / 사진=JTBC 홈페이지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