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寒)은 (여자)아이들이 3년 전 발표한 ‘한’(一)과 신보 타이틀곡 ‘화’를 잇는 노래다. 연인의 배신과 이별, 그리고 혼자 남겨진 감정을 표현했던 ‘한’(一)에 이어, 신곡 ‘한’(寒)에서는 한(恨)의 감정을 겨울에 빗대 표현했다. ‘한’(一)에서 “다시 내 앞에 돌아온다 해도 이젠 받아줄 자리가 없”다며 이별을 고했던 화자는 ‘한’(寒)에선 “차갑던 그날의 날 믿은 듯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며 쓸쓸해한다. 음악적으로는 안예은의 동양적이고 시적인 표현과 소연의 남다른 팝 감각이 조화를 이룬다.
(여자)아이들은 한기 품은 응어리를 오래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어지는 타이틀곡 ‘화’에서 이들은 스스로의 마음에 불을 질러 겨울을 몰아낸다. 소연은 “한(恨)이 어떤 감정일까 고민하다가 ‘혹시 겨울처럼 추운 감정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 감정을 불태워버려야겠다고 생각하며 이 곡을 썼다”고 했다. 불타오른 땅은 새 생명이 태어날 토양이 된다. ‘화’의 또 다른 의미는 ‘꽃’이다. ‘꽃’은 “이별을 완벽하게 완성한 후 다음 사랑에 대한 희망을 피워냄”(소연)을 뜻한다. 자신의 의지로 이별을 매듭지음으로써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힘을 얻는다는 내용인 것이다.
한(恨)은 한국적인 정서로 통한다. 겉으로 토해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삭히는 정적인 감성이다. 하지만 (여자)아이들이 해석한 한은 다르다. 뜨거운 정념에서 벗어난 서늘함이 느껴지지만, 노래가 남기는 인상은 일렁이는 불길처럼 강렬하다. “벗어나리오” “지워내리오” 같은 하오체의 노랫말과 동양풍의 편곡이 어우러져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고, 후렴구의 코러스는 주술적인 분위기마저 자아낸다.
판에 박힌 이별 노래 공식을 벗어난 (여자)아이들의 도전은 통했다. ‘화’는 발매 직후 지니뮤직과 벅스뮤직의 일간 차트 1위를 차지했고, 뮤직비디오는 공개 3일 만인 14일 오전 7시 기준 2000만 뷰를 돌파했다. ‘화’가 실린 ‘아이 번’ 음반은 캐나다·러시아·브라질·이탈리아·핀란드 등 전 세계 51개국에서 아이튠즈 음반 차트 1위에 올랐다.
“저는 (여자)아이들이 편견에 도전하는 팀이라고 생각해요.” 리더 소연이 Mnet ‘퀸덤’에서 말했던 것처럼, 그룹 (여자)아이들은 정형화된 서사와 콘셉트를 벗어나 걸그룹 음악의 신대륙을 개척하고 있다. ‘화’에서 이별을 끝낸 (여자)아이들은 ‘아이 번’ 음반의 마지막 곡 ‘달리아’(DAHLIA)에서 새로운 사랑을 만난다. 이 곡을 직접 작사·작곡한 민니는 “‘매혹적’, ‘욕심’, ‘변덕’이라는 상반된 의미를 가진 꽃 달리아를 테마로 잡은 노래”라고 설명했다. 그래서일까. “나 혼자 간직한 채로 널 보고 싶어”라는 가사가 의미심장하다. 이 매혹의 끝이 파멸이 아닐 수 있을까. “편견에 도전하는” (여자)아이들의 다음 노래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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