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그녀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발견한 것 

이혼 후 그녀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발견한 것 

92년생 하늬슬씨 “사랑하는 아들들아, 너희 길을 끝까지 걸으렴. 엄마처럼”

기사승인 2021-03-19 15:00:31
[쿠키뉴스] 김양균 기자 = “우리 가족은 아빠가 없어”, “엄마는?”, “누나가 엄마야”, “왜 아빠는 없어요?”, “아이들이 어릴 때 헤어졌어?”, “왜 헤어졌어?” 

아이들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대답을 기다렸다. 하늬슬(29)씨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 더 행복해지고 싶어서 헤어졌어.” 쿠키뉴스가 ‘프로젝트 퀘스천’과 함께 진행 중인 한부모 가족사진 프로젝트. 그 일환으로 지난달 25일 하늬슬씨를 만났다. 한부모 가정의 가장이자 유튜버로 자신의 일상을 솔직하게 전하고 있는 하늬씨의 첫인상은 인터넷 스타, 흡사 인플루언서 같았다. 인터뷰에서 하늬씨는 여러 번 행복하다고 했다. 하늬씨와 아이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의 삶을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싱글맘으로 산다는 것, 나를 다시 사랑한다는 것

스물둘. 혼전임신이었다. 성당에서 가족들과 함께 소박한 결혼식을 올렸다. 곧 둘째가 태어났다. 남편은 군 복무를 해야 했기 때문에 하늬슬씨는 이른바 ‘독박육아’를 도맡았다. 친정에서 아이를 낳고 친정집에서 아이를 키웠다. 어린 나이에 혼전 임신. 낙태를 하는 게 어떠냐는 주변의 권유가 있었지만, 하늬씨는 아이를 지키고 싶었다. 

첫째 아이는 한번 울기 시작하면 서너 시간씩 울었다. “태아때 낙태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 것 같아 항상 마음이 아팠어요. 어떻게든 그 상처를 치유해주고 싶었어요.”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 하늬씨는 늘어난 육아 노동에 심신이 지쳐갔다. 가만히 있어도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 날들이었다. 그렇지만 하늬씨는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할 수 없었다. 
결혼 생활을 묻자 그녀는 약간 뜸을 들였다. 남편과 대화를 하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남편과의 사이에 큰 갈등은 없었다. 이유가 있었다. 하늬씨가 참고 또 참았기 때문이었다. 참을 수 없이 답답한 날은 홀로 가슴을 치고 차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울기도 했다. 

가정을 지켜보려고 모든 에너지를 쥐어짜며 살아온 시간. 하늬씨가 스물여섯 살이 되던 해 길지 않은 결혼 생활이 끝났다. 이혼을 선택한 이들마다 각자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하늬씨는 결혼 생활을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서라고 했다. “헤어지고 싶어도 바로 헤어질 수 없었어요. 이혼을 결심하기도 힘들었지만 이혼 도장을 찍기까지도 몹시 힘들었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왜 이런 결정을 해야 하는지 납득시켜야 했으니까요.”

그녀가 이혼을 결심했을 때, 왜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지 설득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혼을 하기까지 반년이 결렸다. 여름부터 시작된 이혼 이야기는 11월에 이혼 도장을 찍으며 마무리됐다. “이혼 도장을 찍은 날 정말 많이 울었어요. 왜 이런 현실이 내 앞에 왔을까. 내 인생에 절대 이혼은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비록 이혼을 결심했지만 이혼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어요.”

상담을 받았다. 불면증에 시달렸고, 공황장애 증상도 왔다. 세상이 다 무너진 것 같았다.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수 없는 지경까지 오자, 하늬씨는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무작정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로 향했다. 그저 원 없이 걷고 싶었다. 

“결혼 후 저라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아요. 순례길을 걸으면서 전 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생각했어요. 제가 어떤 사람이었고 무엇을 꿈꾸었는지를요.”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걷고 또 걸었다. 발이 부르트도록 걸으면서 그동안 잃어버렸던, 잊고 있던 ‘나’라는 사람을 조금씩 확인할 수 있었다. 제대로 화조차 내지 못하고 스스로를 억눌렀던 시간은 긴 순례길 위에 조금씩 풀어지고 헤어졌다. 걸으면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렇게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 어귀마다 하늬씨는 마음의 짐을 하나씩 내려놓았다. 

순례길에서의 어느 낯선 새벽을 하늬씨는 아직 기억한다. 어렴풋이 붉은 해가 떠오르기 전, 칠흑처럼 어두운 순간 그녀는 자신이 엄마 뱃속의 태아로 돌아간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윽고 멀리서 해가 떠오르며 주황빛으로 빛나자 하늬씨는 그 광경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어둠의 끝에서 그래도 태양은 떠오르는구나.’ 세르비아로 이동할 때 느낀 해방감도 생생하다. 자전거로 산을 내려오던 순간 하늬슬씨는 자유로움을 맛봤다. 그녀는 속으로 외쳤다. “나는 살아있다. 살아있어!”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현재 하늬씨는 한 달에 100~150만원을 번다. 세 식구가 살기에는 빠듯하다. 그래서 하늬씨는 비용이 저렴한 지방 소재 모자가족복지시설에서 두 아이와 함께 산다. 모자원 생활 3년을 채우고 나면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을까. 하늬씨의 소박한 바람이다.  

“아이들에게 아빠가 없다, 우리집은 한부모 가족이라고 어떻게 설명하세요?” 무례할 수 있는 질문이지만 물어보기로 했다. 하늬씨가 머리카락을 뒤로 한번 넘기더니 기자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첫째가 다섯 살이 될 때부터 왜 아빠와 함께 살지 않냐고 묻기 시작했어요. ‘이제 엄마와 아빠는 사랑하지 않아서 같이 안살아. 사랑안하기로 한거야.’ 옛날에는 사랑했는데, 지금은 왜 아니냐고 아이가 물어보더라고요.” 하늬씨의 눈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전 아이에게 이렇게 대답했어요. 그때는 노력했던 거야. 그런데 노력해도 잘 안됐어.”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를 한참을 나누다 하늬씨가 말했다. 

“살다보면 상상도 못한 일들이 생겨. 엄마는 끝까지 걸어갈 거야. 사랑하는 내 아들들아. 너희도 너희 길을 끝까지 걸으렴. 엄마처럼.”

인터뷰 후 하늬슬씨는 기자에게 순례길 위의 당시가 담긴 사진을 보내주었다. 하늬씨는 언젠가 장성한 자녀들과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또다시 걷게 될지 모른다. 과거 하늬씨가 바라봤던 그 만개한 태양. 그 앞에 선 세 식구를 휘감은 태양빛은 이렇게 속삭일 것이다. 잘 살아왔다고. 이젠 괜찮다고. 더 행복하라고.  


angel@kukinews.com
김양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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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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