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는 명품백으로?…고사리 손에 ‘구찌’ ‘샤넬’

효도는 명품백으로?…고사리 손에 ‘구찌’ ‘샤넬’

기사승인 2021-06-03 06:37:02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일부 어린이집에서 어버이날 학부모에게 명품 가방 모양의 카드를 선물하는 문화가 유행하고 있다. 보육기관이 명품 소비 열풍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요즘 일부 어린이집에서 유행한다는 어버이날 선물’이라는 글이 31일 올라왔다. 2일 기준 댓글 1300여개가 달렸다. 

작성자는 논란이 될 것을 의식한 듯 “아기들은 어린이집에서 가르쳐줘서 한 거다. 부모도 자식한테 만들어 달라고 시킨 것도 아닐 텐데 너무 비난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글을 남겼다.

작성자는 사진 여러 개를 첨부했다. 명품 가방과 비슷한 카드의 모습이 담겼다. 프라다, 구찌, 샤넬, 입생로랑 등 명품 브랜드 로고와 패턴을 따라 했다. 시중에서 판매 중인 명품과 유사하게 만든 것도 있었다. 카드 안에는 사탕, 젤리, 초콜렛 등 간단한 간식거리가 담겼다. 또 ‘진짜는 20년 후에’, ‘내가 잘난 건 아빠 탓 내가 예쁜 건 엄마 탓’ 라는 문구가 붙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유아교육 커뮤니티, 쇼핑몰과 SNS를 종합하면 어버이날 명품 가방 카드를 선물하는 유행은 지난 2019년부터 뚜렷이 나타났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교사들이 모인 회원수 3만명의 유아교육 자료 공유 카페에는 ‘명품 가방 만들기 도안 자료’가 올라와 공유되고 있다. 유아 교구 판매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명품 가방 만들기 DIY 키트’가 판매 중이다.

SNS에서는 선물 받은 학부모 후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학부모들은 “받고서 빵 터졌다”, “어린이집 원장님이 센스가 좋다” 등 긍정적인 반응을 남겼다. 일부 어린이집에서는 명품백 카드와 함께 가짜 지폐를 선물하기도 했다. “아빠 용으로는 벤츠 차 키를 받았다”는 학부모도 있었다.

여론은 나뉘었다. 먼저 경제 관념이 없는 아이들에게 돈이 성공의 척도라는 인식을 길러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효도 상품권, 카네이션 머리띠 등 마음을 표현할 다른 방법이 많은데 굳이 명품을 따라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주장이다. “웃자는 의도는 알겠지만 유아를 상대로 한 교육으로는 적절하지 않다”, “명품이 효도의 대명사인가”, “명품에 미쳐버린 나라답다”, “교사들이 직업 윤리가 부족하다”는 댓글이 잇따랐다.

인스타그램 캡처.

서울에 거주하는 학부모 임모(30·여)씨는 “아이들은 뭔지도 모르는 명품 로고를 꼭 넣어야 했는지 의문이 든다”면서 “부모 입장에서는 자녀가 어버이날 카네이션 색칠만 해서 줘도 감동스럽다. 이런 문화가 유행한다고 하니 이질감이 든다”고 말했다.

한 네티즌은 “받은 부모들은 자연스럽게 ‘정말 나중에 명품백 사주는 거야?’ 라고 말 한마디 할 거고 아이들이 영향을 받는다”며 “‘마음은 돈으로 표현하는 것’이라는 사고방식에 자연스럽게 젖어 들게 된다”고 일침했다. ‘내가 잘난 건 아빠 탓 내가 예쁜 건 엄마 탓’이라는 문구가 성차별적이라며 불편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반면 당사자가 괜찮다는 데 뭐가 문제냐는 반대 입장도 있었다. 실제로 구찌 가방 카드를 받았다는 한 학부모는 “당연히 선생님이 준비하신 거 아니까 주변에 ‘구찌 백 받았다’고 자랑하고 웃어 넘긴다”고 반박했다. 또 “이게 이렇게까지 비난 받을 일인가”, “귀엽기만 하다”, “깜짝 이벤트일 뿐인데 너무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댓글이 달렸다.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중구 신세계 백화점 명품관 앞에서 시민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명품 시장의 ‘큰손’은 점점 어려지고 있다. 한국 명품시장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타격을 입기는커녕 날개를 달았다. 코로나19로 지난해 세계 명품 매출이 19% 감소했으나, 한국은 독일을 밀어내고 명품 시장 규모 세계 7위를 차지했다. 이 명품 시장을 주도하는 건 MZ세대(1980년대 초반~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다. 명품 브랜드 홍보대사가 된 유명 연예인, 유튜브 ‘명품 언박싱’ 등 콘텐츠 증가로 10대 명품 소비도 늘고 있다. 오는 2025년에는 세계 명품 소비 45%가 Z세대로부터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교사의 의도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교육적 측면에서 문제 소지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김지영 경인여자대학교 유아교육과 겸임교수는 “지나치게 상업적인 부분만 강조해 아쉽다. 아이들뿐 아니라 가정에 정서적으로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면서 “유아교육계에서는 최근 친환경적이고 비구조화된 교구를 활용하는 바람이 불고 있다. 이러한 흐름과도 동떨어졌다”고 했다.

이어 “코로나19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가정이 많다. 이런 현실을 생각했을 때도 명품 가방 선물이 적절한지 의문”이라며 “특히 ‘내가 잘난 건 아빠 탓 내가 예쁜 건 엄마 탓’ 문구는 한부모 혹은 조부모 가정을 고려하지 않은 문구”라고 꼬집었다.

김현정 남부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는 “선생님 입장에서는 이왕 선물하는 거 재밌게 하자는 좋은 의도였을 것”이라면서도 “부모님이 받고 나서 기분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대중매체로도 접하며 유아가 명품 브랜드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물질 만능주의, ‘명품 사드리는 게 효도’라는 인식은 결국 아이들의 인성과도 연결이 된다”고 짚었다.

김 교수는 “아이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경제 교육을 시켜주는 것은 굉장히 바람직하다. 그런데 그게 왜 명품 가방이고 어머니한테 선물 하는 방식으로 했을까 싶다”며 “교육자로서 아무래도 의식이 부족했다고 보여진다”고 설명했다.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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