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붕괴사고 배경엔…조합 눈치보는 감리, 단가 후려친 하도급

광주 붕괴사고 배경엔…조합 눈치보는 감리, 단가 후려친 하도급

기사승인 2021-06-14 16:18:17
14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철거 건물 붕괴 참사 현장에 흰 국화 한 송이가 꽂혀있다. 연합뉴스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재개발 건물 붕괴 사고는 비용과 기간에 쫓긴 무리한 철거로 벌어졌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고가 수차례 있었지만 막지 못했다. 전문가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한 또다시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3일 노형욱 장관 주재로 전문가가 참여한 ‘제3차 중앙사고수습본부회의’를 열었다고 14일 밝혔다. 국토부는 사고 위험도가 높은 140여개 현장을 추려 일차적으로 안전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안전점검에는 국토부, 지방국토관리청, 국토안전관리원, 지자체 등 관계기관이 공동으로 참여한다. 이날부터 30일까지 약 2주간 진행될 예정이다. 

지자체들도 나섰다. 서울시는 이날 오후 2시 공사장 안전관리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해체공사 감리자가 ‘상시’ 해체공사 감리를 하고 불법 재하도급을 근절하겠다고 밝혔다. 광주시도 전날 앞으로 2주간 특별안전점검 기간으로 정하고 각종 건축물에 대대적인 현장점검을 실시하기로 했다. 
지난 10일 오전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이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지역 철거건물 붕괴 참사 현장을 찾아 현황 브리핑을 청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사고 원인 중 하나로는 안전보다 공사 기간 단축, 비용 절감을 더 우선시한 철거 방식이 지적됐다. 사고 당일 철거업체는 기간 단축과 비용 등을 이유로 애초 구청에 제출한 작업계획서와 달리 지지대를 적게 설치하는 등 안전 조처를 제대로 실시하지 않았다. 무용지물과 다름없는 가림막만 걸어놓고 작업을 진행했다. 작업계획서에 따르면 고층까지 닿도록 잔재물을 깔고 그 위에 장비가 올라가 ‘외부 벽-방벽-슬라브’순으로 해체하기로 했지만 실제로는 4~5층을 남겨둔 채 1층부터 철거한 사실이 드러났다. 

저비용, 날림 철거공사가 이뤄진 배경에는 건축업계의 고질적인 불법 재하도급 문제가 있다. 경찰에 따르면 광주 학동 4구역 철거 공사와 관련해 조합 측은 일반건축물 철거 업체로 현대산업개발을 선정했다. 조합 측은 현대산업개발에 3.3㎡당 28만원의 철거 금액을 지불했다. 현대산업개발은 하도급업체인 한솔에 평당 10만원의 공사비를 건넸고 한솔은 백솔기업에 평당 4만원에 또다시 재하도급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고와 ‘판박이’처럼 닮은 철거 사고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지난 4월에는 광주 동구 계림동 목조주택 리모델링 현장에서 내부 벽을 철거하던 중 지붕이 붕괴돼 건설노동자 2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당했다. 지난 2019년에는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무너지며 왕복 4차로를 지나던 차량 3대를 덮쳤다. 승용차에 타고 있던 여성은 매몰 약 4시간 만에 구조됐으나 숨졌고, 동승자 등 3명이 다쳤다. 피해자들은 결혼을 앞두고 결혼반지를 찾으러 가던 길에 참변을 당했다.

정부는 지난해 5월 건축물관리법을 시행하면서 해체계획서는 반드시 전문가 검토를 받게 했다. 지자체 허가 없이는 공사를 시작하지 못하게 했다. 연면적 500㎡나 건물 높이 12m 이상, 지상·지하 3개 층을 넘는 건물은 건물을 철거할 때 지자체에 안전 계획을 포함한 해체계획서를 제출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 감리도 지자체가 직접 지정하도록 했다. 잠원동 붕괴 사고 당시 건축주가 철거업체 지인을 감리로 고용해 부실한 감리를 한 것이 사고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11일 오전 광주 학동 재개발지역 철거건물 붕괴 사고 현장 앞 도로를 차량이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바뀐 제도도 무용지물이었다. 학동 4구역 재개발사업지 철거 공사의 감리계약 회사 대표 A씨는 철거 계획서대로 공사가 진행되는지 관리, 감독하고 안전 점검까지 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현장에 상주하지 않았다. 참사 당일에도 현장에 없었다. 또 경찰은 감리업체가 관리, 감독 의무를 다했는지 기록하는 문서인 감리일지를 A씨가 압수수색 전인 지난 10일 새벽 사무실에서 빼돌리는 정황을 확인했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는 “불법 하도급은 건설 업계에 만연한 고질적 문제”라면서 “하도급을 거치면서 평당 28만원짜리가 4만원이 됐다. 단가가 줄어들다 보니 안전과 품질이 뒷전에 밀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불법 하도급을 근절하거나 정부나 국회가 적절한 공사 단가를 정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현재 구조를 보면 감리가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 못할 수밖에 없다”면서 “감리 비용은 조합에서 주고 있다. 이러다 보니 감리가 조합의 눈치를 본다. 원칙대로라면 감리가 공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시 공사를 중단시킬 수도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렇게 하는 감리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이어 “대책으로는 감리 비용을 지자체에서 주는 방법이 있다”면서 “용역비를 조합이 구청에 예납한 뒤, 공사가 끝나면 구청이 그 비용을 감리에게 지급하는 식으로 하면 된다”고 제안했다.

끝으로 국토부와 지자체에서 나선 현장점검에 대해서도 ‘뒷북 행정’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취지는 좋지만 민간 전문가들로 시공사 대표, 건축사들이 들어가 있는 게 문제”라면서 “기본적으로 설계를 담당하는 건축사나 시공사 대표는 건물 구조나 안전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하다. 해체나 철거와는 관련이 없는 직군이다. 시공기술사, 안전기술사, 구조기술사처럼 전문지식이 있는 전문가가 참여해야 문제점을 찾아낼 수 있다”고 꼬집었다.

앞서 지난 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 4구역 재개발사업 철거 현장에서 무너진 5층 건물이 승강장에 정차 중인 시내버스를 덮치면서 9명이 숨지고, 8명이 크게 다쳤다.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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