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가지마라” 쿠팡화재 순직 소방관, 눈물 속 영결식

“아들아! 가지마라” 쿠팡화재 순직 소방관, 눈물 속 영결식

기사승인 2021-06-21 11:36:28
쿠팡 이천 덕평물류센터 화재진압 중 순직한 경기 광주소방서 구조대장 고(故) 김동식 소방령의 영결식이 21일 오전 경기도 광주시민체육관에서 진행되고 있다. 정진용 기자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경기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진압 도중 실종, 숨진 채 발견된 고(故) 김동식 구조대장(52·소방령)의 영결식이 경기도청장(葬)으로 엄수됐다.

21일 오전 9시30분 경기도 광주시민체육관에서 열린 영결식에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유가족과 동료 소방관 등 90여명이 참석했다.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여영국 정의당 대표 등 국회의원 10명 등도 자리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장의위원장을 맡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고인에 대해 소방경에서 소방령으로 한 단계 높이고 4급 녹조근정 훈장을 추서했다. 고인은 순직 처리됐다. 고 김 소방령 유해는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이 보낸 조전은 이 지사가 대신 낭독했다. 문 대통령은 조전을 통해 “고인의 숭고함과 용기를 가슴에 새기며 사랑하는 이를 잃은 가족들께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면서 “대한민국은 고 김 소방령의 열정과 헌신을 결코 잊지 않겠다. 모두가 안전한 대한민국을 향한 여정에서 굳건한 용기를 보여준 고인을 기억하겠다”고 밝혔다.

이 지사는 영결사를 통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검은 먼지 툭툭 털며 땀에 젖은 얼굴을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랐다”면서 “고 김 소방령은 27년간 근무하며 모두의 본보기가 되었던 사람, 가장 뜨겁고 위험한 곳을 지키던 사람, 가장 현장에 먼저 들어가 길을 열고 가장 나중에서야 나오던 사람이었다. 이번에 긴박했던 그 순간에도 그는 어김없이 동료들을 먼저 내보냈다”면서 고인을 추모했다.

이 지사는 정치권을 향해서는 소방관들이 안전한 여건에서 구조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다.
쿠팡 이천 덕평물류센터 화재진압 중 순직한 경기 광주소방서 구조대장 고(故) 김동식 소방령의 영결식이 21일 오전 경기도 광주시민체육관에서 진행되고 있다. 정진용 기자

동고동락하던 대장을 잃은 동료의 추모사도 이어졌다. 함재철 경기 광주소방서 소방위는 “우리 대원들은 모두 사고 현장이 원망스럽다. 무시무시한 화마에 바로 뛰어들지 못하고 며칠간 대장님을 홀로 둘 수밖에 없었던 일분일초가 두려웠다”고 했다.

이어 “국민이 위험에 처해있을 때 몸을 던져 구조하던 우리였지만 정작 대장님을 구조하지 못했다. 거대한 화마를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함 소방위는 “동식이형! 짧은 만남이었지만 소중했습니다. 형도 나를, 우리 구조대원들을 잊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추모사를 끝맺었다.

내내 숨죽인채 어깨만 들썩이던 유가족은 헌화 순서가 오자 터져 나온 울음을 참지 못했다. 관이 운구차로 이동하자 고 김 소방령 어머니는 “동식아! 아들아! 가지 마라”라고 외쳐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내내 부축을 받고 이동하던 고 김 소방령의 아내는 운구차로 이동하던 길에 발이 풀려 주저앉았다. 운구차가 나가는 길은 도열한 소방대원들이 경례로 작별 인사를 했다.

고 김 소방령은 지난 17일 오후 11시20분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현장에 출동해 연소확대 저지 및 인명수색을 위해 후배 대원 4명과 현장에 투입됐다. 갑자기 누그러졌던 불길이 거세게 치솟으며 긴급 대피 명령이 떨어졌다. 대원들을 먼저 내보낸 김 소방령은 끝내 빠져나오지 못했다. 고 김 소방령은 실종된 지 48시간 만인 지난 19일, 입구를 50m 남겨두고 숨진 채 발견됐다.
18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2021.06.18. 박효상 기자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불이 났을 당시, 초기 약 8분간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소방당국은 쿠팡 측이 해당 건물 소방시설을 임의조작했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다.

쿠팡 덕평물류센터는 화재에 취약한 구조였다. 이번에 발생한 불은 건물 지하 2층에 설치된 선풍기 연결용 멀티탭에서 시작된 것으로 파악됐다. 지하에 에어컨이 없다 보니 직원들이 더워서 선풍기를 연결한 것이 도화선이 된 셈이다. 건물 곳곳에 상품 포장을 위해 쌓여있던 플라스틱, 비닐 등은 땔감이 돼 진화를 어렵게 했다.

쿠팡 측의 안일한 대응이 화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왔다.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는 화재 위험이 큰 전기장치에 대한 문제는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계속 지적했고 평소에도 정전 등 크고 작은 문제가 빈번했지만 쿠팡의 대책 마련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쿠팡이 직원의 휴대전화 반입을 금지하는 탓에 신고가 늦어졌다고도 비판했다. 온라인 상에서는 쿠팡 탈퇴 움직임이 일었다.

비판 여론을 의식한 쿠팡은 20일 고 김 소방령 유족을 평생 지원하고 순직 소방관들 자녀들을 지원할 ‘김동식 소방령 장학기금’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덕평물류센터는 4개월 동안 전문 소방업체에 의뢰해 상반기 정밀점검을 완료하고 소방 안전을 위해 필요한 추가 개선 사항을 모두 이행한 상태였다고 덧붙였다.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진화 작업은 닷새째 진행 중이다. 소방당국은 화재를 완전히 진압하기까지 최소 이틀 이상이 더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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