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이어온 ‘여고괴담’, 시대마다 달라달라

23년 이어온 ‘여고괴담’, 시대마다 달라달라

기사승인 2021-06-26 06:26:01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여고괴담’ 시리즈가 12년 만에 돌아왔다. 영화 ‘여고괴담 여섯번째 이야기: 모교’(감독 이미영)가 지난 17일 개봉해 상영 중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20년대 초반까지 여섯 학교에서 수많은 학생의 이야기를 그린 ‘여고괴담’. 각 시리즈를 돌아보며 23년 동안 ‘여고괴담’ 속 여고와 학생들, 귀신이 어떻게 달라졌고, 그대로 남아 있는 건 무엇인지 정리했다.
 
영화 '여고괴담 3 - 여우 계단' 스틸컷

◇ 귀신님, 왜 학교에 남았어요?

‘여고괴담’ 시리즈에서 많은 학생, 교사들이 죽음을 맞았다. 그 중 귀신이 되는 건 모두 학생들이다. 그들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에 남아 이야깃거리가 되는 이유는 친구 관계에서 발생한 강렬한 원한 때문이다.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거나(1, 2, 4편), 친한 친구와 멀어지는 과정(1, 3, 5편)에서 생긴 상처가 생각보다 깊다는 주제가 시리즈 전반에 드러난다. 또 시간이 지나 잊히는 두려움(1, 3, 4, 6편) 역시 귀신이 되어 자꾸 학교에 나타나는 이유다.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점도 있다. 1, 2편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에 집중했던 귀신들은 3편부터 타인을 적극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한다. 5, 6편에선 연이은 살인사건을 통해 범인의 정체를 추측하게 하는 추리물의 영역까지 넘나든다. 또 최근작엔 교사와 사랑(4편)과 임신 및 동반자살(5편), 교사의 가스라이팅(6편) 등 충격적인 사례들이 소재로 등장한다.

 
영화 '여고괴담 여섯번째 이야기 : 모교' 스틸컷

◇ 내가 다닌 학교, 요즘 학교

여전히 학교에선 괴담이 퍼진다. 학교에서 죽은 학생이 있고 귀신이 되어 나타난다는 소문은 23년이 흘러도 변함없이 떠돈다. 그밖에 누가 누구와 사귄다는 동성애 소문, 교사의 행동이나 과거 소문도 학생들의 관심을 끈다. 학생들은 인적이 드문 공간(옥상, 창고, 보일러실 등)을 찾아 몰래 담배를 피우거나 대화를 나누며 그들만의 시간을 갖는다. 친한 친구와 사진을 찍거나 교환일기를 쓰며 영원한 우정을 약속하는 모습도 달라지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떠들다가 교사에게 혼나고, 급식 시간을 유독 사랑하며, 쉬는 시간마다 체육복을 빌리는 교실 풍경도 그대로다.

카세트테이프로 거친 록 음악을 듣고 있던 주인공(1편)은 수백곡이 들어가는 MP3 플레이어로 힙합 음악을 듣는 모습(4편)으로 바뀌었다. 캠코더로 영상을 찍으며 놀던 교실 풍경(2편)은 폴라로이드 카메라(3, 4편)를 거쳐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는 일상(6편)이 됐다. 두 명씩 네 분단으로 나눠 앉던 나무 바닥 교실은 한 명씩 앉는 깔끔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1편에 등장했던 나무로 된 사물함이나 물을 담아둔 커다란 주전자도 이젠 볼 수 없다. 아침 일찍 등교해야 했던 주번 제도나 학생들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선생님의 모습(1편)은 사라지고, 등굣길에 친구와 인사를 나누면서도 동시에 SNS로 소통하는 풍경(6편)이 등장했다.

 
영화 '여고괴담 여섯번째 이야기 : 모교' 스틸컷

◇ 어느 새 사라진 교사의 ‘폭력 괴담’

교사는 ‘여고괴담’을 이루는 한 축이다. 1편과 6편은 교사가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등장하고, 4편은 교사와의 사랑이 주된 서사다. 교사는 학생들을 통제하고 가르치는 무섭고 단단한 존재인 동시에, 학교에서 유일하게 학생들을 이해하고 교감하는 어른이기도 하다. 시간이 흘러도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좋은 성적과 경쟁을 종용하고, 학생들은 대체로 교사를 신뢰하지 않는다. 벌이 두려워 웬만하면 교사의 말을 잘 들으려 하고, 교무실에 가는 것을 싫어한다. 새로 부임한 교사를 불신하는 학생과 친해지려는 학생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도 1편과 6편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장면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교사의 모습은 크게 달라진다. 1편에선 교사의 다양한 폭력이 등장한다. 학생들을 일렬로 세우고 손등을 때리거나, 책상 위에서 무릎을 꿇고 손을 들게 하는 단체 기합부터 몽둥이로 가슴을 찌르거나 학생이 잘못했다고 발로 짓밟는 폭행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교사가 “여기가 여관방 침대냐, 속삭이게”, “왜 선생님 앞에선 목석이냐”, “여잔 나긋나긋해야 한다”라는 성희롱 발언을 일삼고 학생의 뒷목과 귀를 만지는 등 분노를 유발하는 추악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4편까지 교사의 손에 들려있던 몽둥이는 2009년 개봉한 5편부터 사라졌다.

 
영화 '여고괴담 여섯번째 이야기 : 모교' 스틸컷

◇ 아직도, 앞으로도 행복은 성적순?

긴 시간이 흘러도 학생들은 여전히 성적으로 고민하고 경쟁한다. 시대를 가리지 않고 고등학교는 대학교를 가기 위해 공부하는 장소고, 옆 자리 친구는 경쟁자다. 동시에 삶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와 교사를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학교에서 만난 친구의 기억이 오랜 기간 영향을 미친다는 주제 역시 그대로다. 친한 친구의 변심과 반 친구들의 따돌림을 두려워하는 정서도 변하지 않았다.

성적과 경쟁 외에도 고민의 종류는 다양하다. 자신의 외모(3편)부터 사랑(2, 4편), 원치 않은 임신(5편) 등 각자 관심사와 개성이 다른 학생들의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또 최근작일수록 학생들이 공부와 성적의 중요성을 교사보다 더 잘 안다. 과거엔 “분식집을 해도 서울대를 나오면 장사가 잘 된다”, “공부하기 싫으면 자퇴하고 공장에 취직하거나 아니면 살림이나 하라”(1편)는 말로 교사가 직접 압박했다면, 최근엔 더 좋은 성적을 받고 싶은 학생들의 욕망을 교사가 이용(5, 6편)한다. 최근엔 공부 대신 유튜버나 뷰티 계열로 빠르게 자신의 진로를 정한 학생(6편)이 등장하는 점도 눈에 띈다.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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