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록스 펑크맨 “사람은 발버둥칠 때 가장 아름다워요”

[쿠키인터뷰] 록스 펑크맨 “사람은 발버둥칠 때 가장 아름다워요”

기사승인 2021-07-03 07:00:03
래퍼 록스 펑크맨.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나비에서 허리케인까지’(From butterfly to hurricane). 래퍼 록스 펑크맨은 지난달 23일 낸 미니음반 마지막 곡에 이런 의미를 담은 제목(‘F.B.2.H’)을 붙였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서 허리케인을 일으키듯, 자신이 지금 뱉은 랩 한 구절이 언젠간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들어내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는 이 곡에서 이렇게 랩을 한다. “음절, 마디, 절 차곡차곡 쌓아놨고 / 곱게 모아 놓으니 너무 아름다워 / 역시 틀리지 않고 살아남았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음악에 매달렸던 사내의 자기 긍정이다.

“난 이만큼 치열하게 살았고, 너희는 이제 큰일 났어. 왜냐하면 나는 이제 나비가 돼 미친 듯이 해볼 거거든.” 록스 펑크맨은 ‘F.B.2.H’에 이런 다짐을 담았다고 했다. 최근 서울 마포구 푸이(phooey)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들려준 얘기다. 들인 노력만큼 보상이 따르지 않는 것 같아 한때 음악을 그만 둘 생각까지 했다는 그는 이제 “시장이 죽어도 내리지 않지 / 내 점포 셔터”(‘클로즈드 낫 클로즈드’)라며 열정을 불태운다. 그는 말했다. “이 음반이 제 기대보다 잘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겠죠. 평가가 어떻던, 음악을 멈추지는 않을 거예요.”

‘우화’ 음반 표지.
끓어오르는 생존 의지를 담은 새 음반 제목은 ‘우화’. 그는 “사운드가 잔잔하고 동화 같은 분위기라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음반을 꾸렸다”고 설명했다. 록스 펑크맨은 신보에서 작가가 돼 독자를 만난다. 짜임새는 촘촘하다. 첫 곡 ‘피나 콜라다’는 동화책을 집어든 독자에게 건네는 환영 음료고, 두 번째 곡에선 변사(MC 메타)를 불러와 이야기를 펼쳐낸다. ‘우화’는 록스 펑크맨이 작가 콘셉트로 내는 세 번째 음반이다. 앞서 발매한 음반 ‘레드 애플’(Red Apple)과 ‘그라인드 하우스-익스플로시브 쇼’(Grind House-Explosive Show)는 각각 잡지와 영화 시나리오 형식을 따와 만들었다.

‘우화’는 옛 이야기(寓話)인 동시에 번데기가 탈피해 성충이 되는 과정(羽化)이기도 하다. 록스 펑크맨은 이 음반에서 자신을 나비가 되기 직전 번데기에 빗댄다. 음반 표지도 나비로 변태하기 전 누에고치를 담고 있다. 록스 펑크맨이 직접 그린 그림이다. 그는 “이 프로젝트 이후에 내는 음반은 진화가 끝난 후에 만드는 음악이 될 것”이라며 눈을 빛냈다.

록스 펑크맨의 ‘처음’은 순탄치 않았다. 작곡가가 되고 싶었던 그는 다니던 대학교에서 1년 만에 자퇴하고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거세게 반대하는 아버지에게 그는 말했다. “보증금 1000만원을 빌려주시면 1년 안에 갚겠습니다.” 그는 홍대 인근에 방을 얻어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밤에는 작곡을 하며 1년을 보냈다. 하루는 지인 소개로 프리스타일 랩 모임에 나갔다가 힙합과 사랑에 빠졌다. 마침 아버지에게 빌린 돈도 갚아가던 차였다. 21세 겨울, 록스 펑크맨은 힙합 크루 딕키즈의 일원이 됐다.
록스 펑크맨.
랩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출연한 Mnet ‘쇼미더머니4’(2015)는 그에게 첫 시련을 안겼다. 본선에서 래퍼 슈퍼비와 맞붙었다가 탈락하면서, 그는 정식으로 데뷔하기도 전에 ‘탈락자’로 낙인 찍혔다. 이듬해 프리스타일 랩 경연 대회에서 전국 챔피언이 돼 설욕했지만, 이후 낸 음반들이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면서 록스 펑크맨은 다시 수렁에 빠졌다. “난 열심히 하는데, 왜 나를 찾는 사람은 없을까…. 자존감이 떨어졌어요. 성취감을 밖에서 찾으려 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마지막을 각오하고 낸 ‘레드 애플’ 음반이 호평 받으면서 록스 펑크맨은 다시 전의를 다졌다. 그는 “최선을 다한 음악은 때가 되면 사람들이 알아준다는 걸, 나에겐 나만의 길과 때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돌아봤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게 되면서부터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법도 배웠다. 2019년 도전한 ‘쇼미더머니8’에서 또 다시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쇼미더머니’에서 우승하려고 랩을 한 게 아니니까”라며 금세 자리를 훌훌 털었다. “내가 뭘 할 수 있는지를 찾으며 움직여야 새로운 기회가 열렸을 때 잡을 수 있다”고 믿어서다.

“‘F.B.2.H’에 ‘B.O’라는 표현이 나와요. 땀 냄새, 체취라는 뜻이죠. 사람은 살기 위해 발버둥칠 때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음악을 듣는 사람, 음악을 하고 싶은 사람, 음악을 삶의 치유물로 쓰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삶은 원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으니까, 당황하지 말고 열심히 삽시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일은 정말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일이에요. 저는 그런 태도로 살고 싶어요.”

wild37@kukinews.com / 사진=푸이 제공.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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