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랑종’ 피하지 마세요, 그냥 무서워하세요

[쿡리뷰] ‘랑종’ 피하지 마세요, 그냥 무서워하세요

기사승인 2021-07-07 06:25:01
영화 '랑종' 포스터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지긋지긋하다. 모든 것이 철저하게 짓밟히고 무너진다.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일상도, 간절한 기도로 보여주는 강한 의지도,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실낱 같은 희망도 소용없다. 현실과 조금 어긋난 샤머니즘의 이질감이 혹시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관객을 이끌고 끝내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린다. 똑바로 보고 싶지 않아도 손으로 고개를 잡아 정면을 보게 만드는 영화 ‘랑종’이다.

‘랑종’(감독 반종 피산다나쿤)은 태국 이산 지역 낯선 마을에서 미스터리한 현상을 겪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대를 이어 바얀 신을 모시는 무당 님(싸와니 우툼마)을 한 다큐멘터리 촬영팀이 취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님의 조카 밍(나릴야 군몽콘켓)이 이상 증세를 보이는 걸 포착한 촬영팀은 밍의 일상으로 카메라를 옮긴다. 하지만 초자연적인 무언가로 인해 밍을 둘러싸고 기이한 현상이 이어지자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랑종’은 무서움을 일으키는 공포 영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영화다. 지금까지 등장한 유명 공포 영화에서 본 무서운 장면들을 총집합시켰다. 그렇다고 공포 장면이 많아서 무서운 건 아니다. ‘랑종’은 관객들을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로 끌고 가며 조금씩 절망의 늪에 빠뜨리는 나홍진 감독 특유의 전개를 기본 구조로 삼고 있다. 인물의 생존 여부가 기존 공포 영화의 관심사였다면, ‘랑종’은 누굴 믿어야 하고 그 믿음의 이유가 어디에서 오는지에 집중한다.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고, 앞날을 예측하기 힘든 막막함으로 관객의 마음을 약하게 만든 후 칼로 마구 베는 식이다. 아프지만 이내 체념하고 영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무력함에 빠뜨린다.

영화 '랑종' 스틸컷

‘랑종’은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려 현장감 넘치는 영상이 이어진다. 허구의 이야기인 공포 장르를 현실과 가깝게 가져오는 장치다. 동시에 카메라의 방향과 시선을 정하는 게 감독이 아닌 극 중 인물의 의도처럼 보이는 착각을 일으킨다. 영화에 담긴 여러 기괴하고 끔찍한 장면들, 초자연적인 현상들은 모두 있는 그대로 스크린에 비춰진다. 카메라는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감지 않는다. 음향과 편집으로 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도 거의 없다. 그저 영화가 재연하는 현실을 묵묵히 응시하며 더 잘 담아낼 방법을 고민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관객은 보고 싶지 않은 장면들마저 꼼짝없이 눈앞에서 감상당해야 한다.

영화 ‘추격자’ ‘황해’ ‘곡성’의 나홍진 감독이 원안을 쓰고 제작을 맡은 영화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해 나 감독은 태국에 가지 않았지만, 곳곳에 그의 숨결이 묻어 있다. 특히 중반부에 이르면 ‘곡성’과 닮은 점이 많다는 걸 느끼게 된다. 나 감독은 ‘곡성’이 떠오를 가능성 때문에 국내가 아닌 태국으로 방향을 바꿨다는 이야기, 일광(황정민)의 전사(이전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가 코미디라고 했던 ‘곡성’과 무서운 영화라고 표현한 ‘랑종’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도 있지 않을까.

오는 14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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