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숨지고 나서야 뒷북조사…갈수록 교묘해지는 학폭

학생 숨지고 나서야 뒷북조사…갈수록 교묘해지는 학폭

기사승인 2021-07-09 16:04:40
쿠키뉴스DB.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학생이 숨지고 나서야 부모와 학교가 이를 인지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학폭으로 사망한 학생 사건에 대해 진상조사를 해달라는 청원이 2건 올라왔다. 9일 오전 기준 각각 11만, 8만6000여명이 동의했다.

‘학폭으로 생을 마감한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지난 6일 올린 청원인은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학교에 간다던 아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인근 산으로 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면서 “장례를 치르던 중 교실에서 폭행 당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제보 받고 이유를 알게 되었다”며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청원인은 앞서 지난달 29일 오전 11시쯤 광주 광산동 어등산 팔각정 인근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채 발견된 고교생 A군의 유족이다. 유족들은 학폭 사실을 모르고 장례를 치르던 중, 발인을 하루 앞두고 아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동영상을 제보 받았다. 영상에는 1년 전 A군이 친구들에게 정신을 잃을 때까지 목이 졸리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이 가운데 가해 학생 중 한명은 피해자 장례식날 운구를 맡은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강원도 소재 고등학교에 다니던 둘째 아들을 잃은 유족도 청원글을 남겼다. 양구 한 기숙형 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이던 B군은 지난달 27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B군은 친구 사이에 생긴 오해로 사이가 틀어지며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쓴 유족은 “24시간 함께 생활하는 기숙학교 특성상 눈을 떠서 자기 전까지 아들은 ‘은따’(은근한 따돌림), 집단 따돌림, 사이버 폭력을 당했다”면서 “숨지기 2주 전 아들은 자해를 시도했다. 이를 우연히 알게 된 선배가 교사에게 분명히 이를 알렸지만 부모인 저에게 이 사실을 전해주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의 근본적 원인은 극심한 갈등을 방치하는 교내문화와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학교의 부작위”라고 비판했다.

학폭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늘어나며 물리적 폭력에서 사이버 폭력으로 형태가 변화하고 있다. 사이버 폭력이란 ‘정보통신 기기나 온라인 사이버 공간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모든 유형의 폭력’을 뜻한다. 지난 1월 교육부가 발표한 ‘2020년 학교폭력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피해유형별로는 언어폭력 33.6%이 가장 많았다. △집단따돌림 26.0% △사이버폭력 12.3% △신체폭력 7.9% △스토킹 6.7% △금품갈취 5.4% △강요 4.4% △성폭력 3.7% 순이었다.

특히 언어폭력‧신체폭력‧스토킹‧금품갈취‧강요‧성폭력은 전년도 비해 감소했으나 따돌림과 사이버폭력은 증가했다. 사이버폭력은 최근 5년간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이버 학폭은 시·공간 제약이 없는데다 교육당국이나 가정에서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교육당국과 경찰은 학생들이 숨진 뒤에야 동급생을 상대로 전수조사에 나섰다. 광주 광산경찰서와 광주시교육청은 지난 7일 A군이 다니던 고등학교를 찾아 고교 2학년 352명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진행했다. B군이 다니던 학교에서도 지난 3일 학폭과 관련한 설문지를 돌렸다.

문제는 이같은 대처가 뒷북대처일뿐 아니라 ‘보여주기’식에 그칠 수 있다는 점이다. B군 유족은 SNS를 통해 “학교와 다른 학부모들은 빨리 사건을 잊고 아이들이 공부에 전념하길 바라고 친구들도 나서기를 두려워한다”며 “(학생들이) 계속 다닐 학교인데 다른 친구, 선생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설문지에 얼마나 많은 친구가 답해줄 지 자신이 없다”고 적었다.

시민단체 비판도 이어졌다. 시민단체 ‘학벌 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은 8일 성명을 내 “광주시교육청은 매년 학폭 실태조사를 하며 높은 참여율을 뽐낸다”면서 “그런데 지난해 시교육청이 초등학교 4학년~고등학교 2학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에서 학폭을 당했다고 응답한 학생은 0.9%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A군이 다닌 고교도 지난해 576명이 조사에 참여했지만 피해를 봤다고 응답한 학생은 없었다. 이를 보더라도 실태조사에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경찰과 시교육청은 정기 실태조사, 학교전담경찰관 배치 등 보여주기식 대책보다 학교폭력의 뿌리를 뽑을 수 있는 종합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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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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