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약한 정신의 소유자인 제가 영화 ‘랑종’(감독 반종 피산다나쿤) 관람에 도전했습니다. 14일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겁쟁이 상영회’에 다녀왔는데요. 겁쟁이 상영회에선 극장 내부 조명을 켠 채로 영화를 상영합니다. 일반 상영관 대비 10배 밝은 LED 스크린 덕분에 불이 켜진 상태에서도 영화를 선명하게 관람할 수 있다고 롯데시네마 측은 설명했습니다. 첫 겁쟁이 상영회에는 72명이 다녀갔다고 합니다.
영화관에 입장하는데 직원이 귀마개를 건넵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니, 귀를 틀어막고 싶을 때 쓰라더군요. 일단 소중히 챙겼습니다만, 사실 저는 귀마개보다 강력한 방어막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바로 애착 인형입니다. 놀라거나 무서울 때마다 애착 인형을 쓰다듬으면 조금이라도 스트레스가 낮아지지 않을까 하며 챙겨간 건데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애착 인형, 네가 수고했어.
‘랑종’, 무섭습니다. 원안을 쓴 나홍진 감독의 ‘곡성’과 연출을 맡은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의 데뷔작 ‘셔터’가 품은 ‘공포 액기스’가 피와 함께 넘실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영화는 태국 이산 지역을 배경으로 신내림이 대물림 되는 무당 가문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바얀 신을 모시는 무당 님(싸와니 우툼마)은 조카 밍(나릴야 군몽콘켓)에게 신내림이 이뤄졌다는 걸 직감합니다. 그러나 밍에게 깃든 것은 바얀 신이 아닌 악귀. 님은 퇴마사의 도움을 받아 악귀를 물리치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절대 현혹되지 말라’는 ‘곡성’의 메시지가 ‘랑종’에서도 되살아납니다.
영화가 후반부를 향해 달려갈수록 극장 곳곳에서 숨 들이켜는 소리가 잦아졌습니다. 오른편에 앉은 관객도 두 손으로 시야를 가리고 있었고, 앞자리에 앉은 관객은 아예 고개를 돌리고 있더군요. 발을 동동 구르거나, ‘악’ 소리를 내는 관객, 심지어 중간에 퇴장하는 관객도 있었습니다. 저도 비슷했는데요. 긴장이 풀릴 때마다, 영화에서 님이 기도를 올리듯 애착 인형을 하염없이 쓰다듬었습니다. 손에서 느껴지는 털의 감촉이 그나마 현실감각을 일깨워줬거든요. 이것은 영화다, 실제 이야기가 아니다, 저 사람은 배우다, 강아지도 잘 살고 있다고 한다….
겁쟁이 상영회는 호불호가 갈리는 분위기입니다. 극장 앞에서 만난 정가현(27) 씨는 “주변 관객이 질겁하는 광경이 눈에 들어와 더욱 무서웠다”라고 말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객은 “다른 관객의 움직임이 보여서 산만했다”면서도 “공포나 스릴러 영화를 좋아하는데 ‘랑종’이 너무 무서울까봐 걱정된다면, 겁쟁이 상영회를 시도해볼 만 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영화를 향한 쓴 소리도 들을 수 있었는데요. 또 다른 익명 관객은 “영화 자체를 추천하지 않는다”면서 후반부가 늘어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온라인에선 ‘랑종’에 필요 이상으로 비윤리적인 묘사가 많았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무사히 관람을 마친 관객에겐 무드등이 주어집니다. ‘집에서 자려고 누웠는데 당신이 힘들까봐 롯데시네마가 준비했다’고 하네요. 어둠 속에서 발광하는 스누피 얼굴이 더욱 무서울 것 같긴 합니다만…부디 숙면에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아 참. 영화 시작 전에 상영관이 암시 암전되는데요. ‘뭐야. 내 조명 돌려줘요’라며 당황하지 마시고 잠시만 기다리세요. 영화사 로고가 지나가면 다시 불이 켜질 겁니다. 겁쟁이 상영회는 오는 17일과 18일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건대입구, 센텀시티의 수퍼S 상영관, 롯데시네마 수원의 컬러리움 상영관에서 이어집니다.
wild37@kukinews.com / 사진=이은호 기자, 쇼박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