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조현지 기자 =정치권의 호남 쟁탈전에 불이 붙었다. 야권 대선주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진보진영의 심장 ‘호남’ 문을 두드리자 여권이 일제히 견제에 나섰다.
윤 전 총장은 지난 17일 제헌절을 맞아 광주를 방문했다. 그는 묘역을 참배하면서 “5·18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을 피로써 지켜낸 헌법 수호 항거”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같은 호남 행보는 중도확장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윤 전 총장은 당초 이례적인 호남 지지율 20%대 돌파로 주목을 받았다. 지난달 21~22일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실시한 차기대선주자 선호도 결과, 윤 전 총장의 호남 지지율은 22.5%였다. 그러나 불과 3주 만에 윤 전 총장의 호남 지지율은 11.8%(리얼미터 조사, 오마이뉴스 의뢰, 12~13일 조사)로 반 토막이 났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국민의힘 밖에서 호남·중도층의 표심을 끌어모으며 존재감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정부 때리기에 열중한 우클릭 행보로 지지율 하락세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윤 전 총장은 이날 광주 방문에서 5·18 정신 헌법 명시, 디지털 기반의 스마트 농업 발전 방향 등을 제안하며 호남 민심을 다독였다.
여권은 즉각 견제에 들어갔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8일 페이스북을 통해 “쥐어짜는 눈시울은 사람을 웃긴다”며 “선거 때만 되면 광주를 찾아 쇼하는 정치인에 분노한다. 광주의 한을 표로 이용하려는 정치꾼들”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민주당 대권 주자인 김두관 의원은 19일 광주를 찾은 뒤 “‘보편적인 헌법으로 승화시켜야 할 희생자들’을 반란으로 기소한 주체는 검찰”이라며 “윤 전 총장이 속했던 조직(검찰)에서 광주시민을 폭도와 빨갱이로 몰았던 전적이 있다. 쇼를 할 것이 아니라, 무릎 꿇고 사죄를 해야 마땅하다”고 질타했다.
윤 전 총장의 ‘가짜 무용담’을 수정해달라는 공개 요구도 나왔다. 해당 무용담은 윤 전 총장의 법대 동기들이 일화를 엮은 책 ‘구수한 윤석열’에서 윤 전 총장이 “5·18 광주 유혈 진압사건 직후 서울법대 형사법학회가 개최한 모의 형사재판에서 전 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이것이 문제가 돼 수배를 받아 도피 생활을 했다”고 밝혀진 대목이다.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은 “5·18 직후가 아닌 이전이었다. 같은 5월이었지만 맥락이 완전 달랐다”며 “5월 8일은 서울의 봄 시절이었고 서울대는 해방구였다. 입 달린 사람이라면 무슨 말을 해도 괜찮던 시절”이라고 했다. 이어 “‘정의의 사도’라는 평판은 잘못된 사실관계에 기초한다”며 “윤 전 총장은 이 잘못을 적극적으로 바로잡지 않고 즐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내버려 뒀다”고 주장했다.
여권의 견제가 이어지자 야권에서도 윤 전 총장 엄호에 나섰다. 이언주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은 19일 페이스북을 통해 “운동권 정치세력은 광주에 전세를 냈나”라며 “그 더러운 입 좀 다물라”라고 날 선 발언을 쏟아냈다.
이 전 의원은 “문상 온 손님은 개도 안 문다고 하였거늘 민주당과 운동권 당신들의 그 패악스러운 입은 개만도 못하다”며 “대관절 뭐길래 자기들 말고는 다른 정치세력들은 발도 못 들이게 하는 건가. 정작 주인인 광주시민들은 가만있는데 말이다. 웃기지도 않는다”고 받아쳤다.
이러한 신경전은 ‘진영대결’ 성격이 짙은 차기 대선의 특성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배종찬 인사이트K(케이) 연구소장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호남 지역은 민주당의 심장이다. 여권이 지역적 기반에 대한 경계심을 분명히 했다”며 “자칫 광주정신을 허용하게 될 경우 검찰개혁 대결구도에서 허점을 드러내거나 약한 고리를 노출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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