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0만 노동자 못 받은 임금 1조…임금체불은 범죄입니다

매년 40만 노동자 못 받은 임금 1조…임금체불은 범죄입니다

사업주 임금 체불해도 피해 노동자 ‘처벌 불원서’ 받으면 형사처벌 면책 '악용'

기사승인 2021-09-06 14:06:37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임금체불 근절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 지난달 31일 경기도 파주 한 7층 건물 옥상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려던 50대 남성이 경찰 설득 끝에 구조됐다. 경찰은 “남성 1명이 ‘밀린 임금을 달라’고 고함을 지르며 뛰어내리려 한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출동했다. 경찰은 밀린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겠다며 이 남성을 설득한 끝에 무사히 구조했다. 이 남성은 경찰에 “공사장에서 밀린 임금 300만원을 받지 못했다. 추석을 앞두고 생계가 어려워 속상해서 그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질적인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의사 불벌 조항 폐지 등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참여연대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시민단체들은 6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근로기준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이수진 의원은 이날 ▲ 상습 임금체불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 임금체불에 대한 반의사불벌죄 실질적인 폐지 ▲ 임금채권의 소멸시효 연장(3→5년) ▲ 재직자의 임금체불에 대해서도 지연이자제 적용 등을 골자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누적 체불액은 8273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동월 대비 15.6% 감소했다.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노동자는 14만9150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 줄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 33.2%, 건설업이 18.6%였다. 기업규모별로는 5~30명 미만 사업장이 41%, 5명 미만 사업장이 32.7%였다.

임금체불액은 지난 2019년 1조7217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2018년에 비해 745억원(4.5%) 증가한 수치였다. 임금체불을 당한 노동자는 34만5000명이었다. 한국의 임금체불은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의 임금체불액은 지난 2018년 기준 일본의 16배(취업자 수를 감안할 경우 40배 이상) 이며 OECD 국가 중 임금체불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임금체불을 막기 위해 정부는 국정과제에서 ‘체불근로자 생계보호 강화 및 체불사업주 제재 강화’를 제시하고 지난 2019년 한차례 체불임금 청산제도를 개편했다. 그러나 사후구제에 방점이 찍힌데다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임금체불 근절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토론회 참가자들은 근로기준법상 반의사 불벌 조항이 임금체불에 대한 안일한 인식을 조성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임금을 체불한 사용자를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반의사 불벌 조항에 따라, 임금체불이 발생해도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사용자를 처벌하기 어렵다. 반의사 불벌 조항은 지난 2005년 7월, 임금체불 조기 청산을 유도하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그러나 사업주가 임금을 체불해도 피해 노동자 ‘처벌불원서’만 받으면 형사처벌이 면책된다는 점에서 악용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민변 노동위원회 문은영 변호사는 “임금체불 사건에서 반의사 불벌 조항이 악용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언제든지 임금만 지급하면 형사처벌을 면할 수 있다 보니 안일한 인식이 팽배해졌다. 근로감독관이 행정지도를 할 때도 임금체불이 사실상 묵인되고 합의금조차 전액 지불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반의사 불벌 조항을 폐지하고 상습 체불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권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은 “매년 국정감사에서 임금체불 방지책이 나오지만 최근 5년간 피해자는 줄어들고 있지 않고 있다”면서 “지난해 임금체불 형사 재판 1024건 중 실형 선고된 경우는 45건으로 4%에 불과했다. 기소율은 18%에 그쳤다. 노동청은 당사자간 조정 합의에만 적극적이고 엄격한 처벌은 소극적인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미국, 유럽 국가 노동부의 경우 임금 체불에 대한 엄중한 인식 덕분에 임금 체불 문제만 담당하는 부서가 따로 있다. 그런데 한국의 고용노동부는 임금체불을 홈페이지 민원마당을 통해 민원의 하나로 처리하는 실정”이라며 “임금체불은 민원이 아닌 횡령, 절도”라고 비판했다.

문종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규모가 작은 사업장일수록, 그리고 저소득일수록 임금체벌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임금체벌 문제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수십 년간 고쳐지지 않은 고질적인 문제”라면서 “명절을 앞두고 고용노동부는 임금체불기동반을 편성하고 활동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법안으로 강력한 처벌과 방지대책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정력 동원한 감독 인력 확충 등 종합적인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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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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