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미국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나 ‘터닝 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 [넷플릭스 다큐깨기④]

그날 이후, 미국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나 ‘터닝 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 [넷플릭스 다큐깨기④]

기사승인 2021-10-02 06:17:02
넷플릭스 캡처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노래를 부르거나 들을 수 없다. 강도는 손과 발이 잘리고, 불륜을 저지른 여성은 돌에 맞아 죽는다. 여성은 남성 없이 혼자 밖에 나가지 못하고, 학교에 가거나 취업할 수 없다. 20년 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실행한 정책들이다. 낡은 과거는 다시 현재가 됐다. 지난달 탈레반이 아프간 수도 카불을 장악하며 정권을 잡았다. 오래된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통치 이념으로 삼는 탈레반 정권은 사형 집행과 손발 절단형 부활을 예고했다. 거리에 음악이 사라졌고, 카불 대학은 여학생 등교를 금지했다. 아프간 남성은 더 이상 수염을 자르거나 다듬지 못한다. 잔인하고 차별주의를 지향하는 탈레반은 어떻게 다시 돌아온 걸까.

지난 1일 공개된 ‘터닝 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이하 ‘터닝 포인트’)을 보면 답을 알 수 있다. ‘터닝 포인트’는 2001년 9월11일 오전 7시59분 미국 보스턴의 로건 국제공항에서 아메리칸 11편이 이륙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그날 벌어진 참상을 자세하고 끈질기게 재구성한다. 보스턴을 출발한 아메리칸 11편과 유나이티드 175편은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에 각각 충돌해 무너뜨린다. 워싱턴을 출발한 아메리칸 에어라인 항공 77편은 워싱턴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에 부딪힌다. 이날 사고로 3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미국은 충격에 빠졌다. 조시 부시 대통령은 테러 주범으로 지목된 알카에다와 탈레반에 보복을 결심한다. ‘테러와의 전쟁’의 시작이다.

넷플릭스 ‘터닝 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첫 회에서 누구나 갖고 있지만 조금씩 다른 그날의 기억을 하나로 모은다. 세계무역센터에서 회의를 하던 회사원, 거리를 지나던 시민, 시민을 구하러 건물에 들어간 소방관, 방송 생중계를 시작한 카메라맨, 소식을 전해들은 정부 인사 등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위치에서 본 증언으로 그날을 구성한다. 가까이에서 보고 겪은 테러 현장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이야기와 끔찍한 결과는 하나 둘 모여 슬픔이 되고 또 분노가 된다. 다큐멘터리는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왜 무고한 미국 시민들이 피해를 입어야 했는지 1980년대로 돌아가 하나씩 원인을 풀어낸다.

5부작으로 구성된 ‘터닝 포인트’는 아주 가까이에서 시작한 9·11 사건을 아주 멀리서 해부한다. 그 과정에서 논의할 만한 수많은 이야기가 쏟아진다. 80년대 시작된 아프가니스탄과 소련의 전쟁부터 오사마 빈 라덴이 무엇을 하던 사람이었는지 등 과거 이야기부터 9·11 직후에 미국 국민들과 정부, 의회에서 나눈 이야기와 여러 결정들, 그 결정들로 시작된 전쟁과 관타나모 수용소 등 그 이후 이야기가 이어진다. 인터뷰에 응한 다양한 사람들과 공개된 문서, 재판 기록 등은 9·11 사건을 하나씩 재정의한다. 굵직한 이슈를 하나로 엮는 솜씨, 끊이지 않고 새로운 이야기로 이어지는 스토리텔링도 좋지만, 냉정한 관점을 유지하려는 노력과 잘못을 거침없이 비판하는 태도가 눈에 띈다.

넷플릭스 ‘터닝 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20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전체를 돌아보고 객관적으로 서술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 결과 당시엔 옳았던 결정은 감정에 의한 잘못된 결정으로 판명된다. 정의로운 의도로 시작한 전쟁은 누구도 승리하지 못하는 잘못된 전쟁으로 결론지어진다. 원인과 과정, 결과가 하나로 잘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엉뚱한 방향으로 튄다. 좋은 의도가 꼭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 역시 아니다. 20년 전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원하지도 않았던 현재가 됐다.

9·11 테러를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교과서 같은 작품이다. 동시에 다양한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대통령이 내린 한 번의 결정과 그것을 감시하는 의회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정책이 이행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평가하는 것, 현장에 있는 당사자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한다. 오래 된 사건, 먼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 누군가, 혹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게 한다. 세상은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게 맞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매년 9월마다, 미국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아프가니스탄 상황이 더 악화될 때마다 넷플릭스 추천 목록에 올라가면 좋을 다큐멘터리다. 다음에 깰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는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다.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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