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진탕 속에 있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하늘 위의 별을 본다”고 오스카 와일드가 말했다. 코로나19가 발발한 이후 여행업계는 내내 진탕 속에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이었다. 어둠의 터널을 빠져 나오면 밝은 내일을 맞을 수 있다며 더욱 박차를 가한 여행사도 있었지만 상황은 계속 악화 되었다. 희망고문이었다. 노력을 더 할수록 절망감만 더 커졌다.
이런 진탕 속에서도 마이리얼트립(myrealtrip.com) 이동건 대표는 하늘 위의 별을 보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432억원을 투자받았다. 기업가치는 2000억원 대로 상승했다. 해외여행에서 국내여행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제주도에 집중했던 전략이 적중했다.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하나투어가 업계 1위로 도약했는데 코로나19 국면에서는 마이리얼트립이 선전하고 있다.
2012년 여행 스타트업 마이리얼트립을 설립한 이동건 대표의 유일한 사회 경험은 기업체 인턴이었다. 인턴 경력밖에 없던 이 대표가 설립한 마이리얼트립이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이제 세계적인 OTA(Online Travel Agency)들과 슈퍼앱 경쟁을 하고 있다. 마이리얼트립의 코로나19 위기 극복 비결과 미래 비전을 이 대표로부터 직접 들어보았다.
-마이리얼트립이라는 회사에 대해 설명해달라.
2012년에 설립한 여행 스타트업이다. 여행자들이 현지에 가서 무얼 해야할지 모를 때 현지에서 즐길만한 투어를 소개하는 앱을 만들었다. 현재는 숙박 항공 액티비티에 이어 패키지여행까지, 해외여행의 A to Z까지 다 예약할 수 있는 곳으로 진화했다.
-항공권 예약은 대표적인 ‘돈 먹는 하마’로 꼽히는 영역이다.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마이리얼트립은 현지 투어와 액티비티로 잘 발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발전의 속도가 늦다고 생각했다. 여행에 관해 단순하게 생각해보려고 노력했다. ‘가장 먼저 고민하는 것이 뭐지?’ 여행지를 정하고 최저가 항공권 검색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런데 그 길목에 우리가 없었다. 사람들은 천원이라도 싸면 처음 들어본 회사라도 거기서 산다. ‘만약에 우리가 한국에서 전노선에 걸쳐 싸게 판다면, 모두 우리 사이트에 들어오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항공권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말렸을 것 같다.
다들 ‘항공권은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여기에 뭔가 있나보다’하고 확신이 더 들었다.
-현지 투어 위주로 하다가 본격적인 패키지여행을 시작할 때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단편영화에서 장편영화로 바뀐 셈인데.
패키지여행을 처음 시도했을 때 결과가 좋지 않았다. 고객들과 인터뷰를 해보니까 간단하게 얘기하더라, 살만한 게 없다고. 그분들이 그랬다. ‘나는 여행 일정을 짜주는 전속 기획자가 있다. 나는 그렇게 여행을 다닌다.’ 고급 패키지여행을 만들어서 맞춰주면 니즈가 있겠다 싶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마이리얼트립은 뚜렷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고 있다.
월 거래액(총판매액)이 코로나19 직전인 지난해 1월 520억원까지 찍었다가 코로나19 발발 이후 떨어져 4월에는 10억원 수준까지 떨어졌다. 98% 줄어든 것이다. 예약 건수도 21만건 수준을 넘었다가 급감했다. 현재 거래액 기준으로 월 300억원 수준으로 회복했다. 제로에 가까웠던 국내여행 매출을 해외여행 수준으로 만들었다는 데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해외여행 위주로 개발하다 국내여행을 개발해보니 어땠나?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차이가 컸다. 해외여행은 여행사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내여행은 상대적으로 정보가 많아서 여행플랫폼이 힘들다. 난이도가 높은 편이다. 하지만 사업의 기회가 없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해외여행 대신에 국내여행을 가는 것이니 상대적으로 예산은 넉넉하다고 봤다. 이 시장의 진짜 문제점은 돈을 쓸만한 컨텐츠가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돈은 있는데 어디다 쓸지를 모르는 상황이었다.
-제주도 올인 전략이 인상적이었다.
해외여행 처음 개발할 때와 전략 자체는 같았다. 그때 시행착오를 통해 깨달은 게 있었다. 초기에는 플랫폼에는 이것저것 다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계 곳곳의 투어가 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여러 도시의 상품을 두루 개발했다. 그랬더니 그저그런 플랫폼이 되었다. 하나에 뾰족하게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서 파리에 올인하듯이 했다. 그랬더니 주목받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국내에서도 하나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곳이 왜 제주였나?
해외여행과 비슷한 여행지가 필요했다. 우리 장기가 항공권으로 모객해서 숙박 액티비티까지 예약을 확장하는 모형인데 국내에서는 제주밖에 항공이 필요한 곳이 없었다. 항공권의 경우 해외는 할인 폭도 크고, 대형 OTA와 경쟁해야 했는데 제주 항공권은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했다. 이후 제주행 항공권 점유율이 꾸준히 높아졌다.
여행 관련 항공 숙박 티켓 패스 등 모든 것을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온라인 서비스다. 구색을 다 갖추고 있다는 것이 기본인데 여행을 생각했을 때 머리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여행 슈퍼앱이 아닐까 싶다. 검색은 네이버, 메시지는 카톡, 이런 식으로 고객의 일상을 점유하는 앱이 되고 싶었다. 일단 제주 여행 갈 때는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오르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슈퍼앱에 도달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목표의 난이도 자체는 높지만 우리만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시대적 요구라고 본다. 취향에 맞춰서 여행을 하고 싶어하는데, 정보는 차고 넘치는데, 막상 여행을 직접 설계하려고 보면 필요한 정보를 찾기 어렵다. 여행의 영역에서는 대표 슈퍼앱이 없다.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 난이도가 높은 것은 맞지만 우리가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했다.
-슈퍼앱을 지향할 때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기술은 결국 도구인데, 무엇을 이루기 위한 도구인가가 문제다. 슈퍼앱의 기본 조건은 검색창에 여행 정보라면 무엇이든 나와야 하는데 아직까지 그런 여행앱이 없었다. 항공권 숙소 현지에서 볼 수 있는 뮤지컬 프리미어리그 티켓, 이런 것들이 입력하기만하면 다 나오는 앱은 없다. 여러 난제가 있다. 입점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좋은 곳을 잘 추천해주는 것도 중요한데, 플랫폼이 이런 요구에 반응할 수 있는 구조를 짜는데 집중했다.
-글로벌 여행앱도 슈퍼앱을 지향하고 있다.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나?
개별 정보를 잘 주는 곳은 많다. 중요한 것은 고객이 개별이지 않다는 점이다. 해외 슈퍼앱은 중국인이든 일본인이든 프랑스인이든 모두 활용할 수 있는 앱을 지향한다. 한국인들이 찾는 것에 최적화 되어 있지 않다는 얘기다. 이를테면 트립어드바이저 평점을 보고 맛집을 찾아가면 한국인은 실망하는 곳이 많다. 미국인 이용자가 많아서 우리 입맛에는 짜게 느껴지는 집이 많다. 우리는 한국인만 고민한다. 한국인이 주로 선택하는 것들로만 고민한다.
-코로나19 기간에 회사가 확대되었다고 들었다.
코로나19 전에 120명이었다가 지금은 200명 규모로 커졌다. 우리회사에는 ‘제품조직’이라는 조직이 있다. 개발자, 데이터 분석가, 기획가, 디자이너로 구성되는 여행 기획 조직인데 크게 늘었다. 코로나19 전에는 30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3배 넘게 늘어서 100명이 넘는다.
-이런 혁신이 기존 여행사에서는 왜 안 되었을까?
흥미롭게 봤던 것이 여행사 사장님과 회장님들의 신년사다. 10년 째 자유여행이 중요하니 앞으로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메시지를 던진다. 그런데 변화가 없다. 조직 전체를 움직여야 하는데, 큰 조직의 방향을 튼다는 게 쉽지가 않다. 실무자 입장에서는 변화에 맞춰야 되는 요인이 와 닿지 않으면 그리고 보상이 없다면 하던 대로 하게 된다. 다들 정답은 똑같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다만 조직이 기민하게 움직이는데 신생 조직인 우리가 유리했을 뿐이다.
-국내 여행 서비스 중 테크놀로지에 집중 투자해서 성과를 낸 경우라 할 수 있는데, 무엇에 주안점을 두었나.
코로나19 이후에 기술적으로 투자한 것 중에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기민한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다들 답을 아는데, 문제는 속도였다. 누가 빨리 개발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었다. 그때그때 맞춰서 개발하다 보니 구조가 엉망이 되고 속도가 느려져 있었다. 잡고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코로나19 국면에 구조를 바꾸고 버그를 잡아갈 시간을 벌었다.
-가이드들의 기획사를 표방한 가이드라이브와의 콜라보도 인상적이었다. 어떤 비전을 공유했나?
우리의 본질은 플랫폼이다.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하는 역할이다. 자유여행에서는 우리가 이 역할을 다 해낼 수 있다. 그런데 패키지여행을 해보려고 하니까 만만치 않았다. 우리가 풀 수 있는 문제인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인가? 하고싶은 영역인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때 가이드의 기획사를 표방한 가이드라이브 팀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이 회사가 기획을 잘하고 그것을 우리가 유통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콜라보를 시작하자마자 코로나를 맞아서 고난의 시간을 겪었다.
-패키지여행을 직접 기획해보니 어땠나?
소비성향이 많이 달랐다. 연령별로도 다르고 성별로도 다르고 여행지별로도 달랐다. 이를테면 유럽을 가려는 사람은 소비성향이 높았는데 동남아를 가려는 사람은 낮았다.
-코로나19 이후는 어떻게 예상하는가?
일단 지불의사에서는 낙관한다. 이때 여행을 가는 사람이라면 두려움을 안고 가는 사람들이다. 본인이 리스크를 떠안고 가는데 돈을 아낀다? 언제 또 올지 모르고 또 터지면 못 오는데, 돈을 아낄까? 지불의사는 강해지고 체류 기간도 길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코로나 직후에 누가 여행을 가게 될까?
극명하게 갈릴 것이다. 결혼을 안 하거나 자녀가 없는 젊은 층과 자녀가 독립한 시니어층이 주로 여행을 가게 될 것이다. 현지에서의 풍부한 경험을 어떻게 줄지 고민하고 있다.
-국내여행을 직접 기획해보니 어땠나?
코로나 기간 동안 국내여행을 개발하면서 사람들이 마냥 최저가를 원한다기 보다는 내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제공하면 지불 의사가 있다는 걸 배웠다. 국내여행은 플렉서블한 취소 환불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인바운드 여행도 고민하고 있나?
우리가 해서 어떤 가치를 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한국의 문화적인 위상이 달라졌다. 여행도 이런 것을 반영해야 한다. 그런데 기획을 잘해야 돈이 벌리는 구조면 좋은 여행이 만들어질텐데 그렇지 못하다. 돈을 버는 쪽이 면세점 쇼핑에 있어서 기획은 양념같은 것이 되었다. 여행사들 보니 면세점 쇼핑에 혼을 다하고 있었다.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현재 마이리얼트립의 위상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고객 관점에서 마이리얼트립이라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생각해보면, 아마 투어 액티비티와 해외 현지여행일거다. 여행 스타트업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회사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이후에도 속도를 줄이거나 멈추지 않고 매섭게 가속해서 달렸다.
-미래의 경쟁자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슈퍼앱을 지향하고 있으니 이를 지향하는 업체는 모두 미래의 경쟁자들이다. 글로벌 부킹 앱인 엑스피디아 트립닷컴 등을 꼽을 수 있고 국내에서는 야놀자 같은 회사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고재열 여행감독 gosisa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