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구치 류스케 “가깝지만 다른 한국에 많은 자극” [쿠키인터뷰]

하마구치 류스케 “가깝지만 다른 한국에 많은 자극”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1-12-24 06:34:01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트리플픽쳐스/영화사조아

봉준호 감독은 잔뜩 신이 난 표정이었다. 지난 10월7일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 대담을 나누는 자리였다. 마이크를 잡은 봉 감독은 “동료 감독으로서 그의 직업적 비밀을 캐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며 “질문을 계속 할 테니까 양해해 달라”고 선언했다. 그는 최근 하마구치 감독의 영화 ‘아사코’의 북미판 블루레이를 구입해 단편영화를 본 이야기도 꺼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동료 감독의 대담과 하마구치 감독의 팬 미팅을 오가는 현장이었다.

23일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국내 개봉을 맞아 최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러닝타임 179분에 달하는 이 영화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아내가 남긴 이야기를 품고 사는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의 이야기를 그렸다. 올해 제 74회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고, 내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후보로도 오를 가능성이 높다. 하마구치 감독은 원작에 등장하는 자동차의 존재가 소설을 영상화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소설을 영화화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게 제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소설은 인물의 내면을 그려내기에 수월해요. 내면을 포착하고 끄집어내는 것에 집중하는 장르죠. 영화는 움직임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물들의 행동이 중심이 되기 때문이에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영화에서 어떻게 보여줄까 생각했습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라면 자동차가 나오니까 인물들의 움직임과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고, 그 장면을 영화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스틸컷

‘드라이브 마이 카’는 연극 연출가이자 배우인 가후쿠가 히로시마에서 배우들과 체호프의 연극 ‘바냐 아저씨’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가후쿠는 매일 강당으로 출근해 배우들과 대본을 읽는 걸 반복한다. 배우들이 돌아가며 각 장면의 대본을 읽는 장면은 실제 하마구치 감독이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마구치 감독은 배우들과 모여서 소통하는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본 리딩을 하면 배우들이 한 자리에 다 모이잖아요. 서로 소통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배우들은 각자 자신이 맡은 인물을 연구하거나 연기하는 데 집중하기 마련이에요. 하지만 한자리에 모이면 밀접하게 대화하면서 서로 연기를 주고받는 시간을 공유할 수 있으니까요. 또 대본 리딩을 반복하면 배우들 입장에선 현장 가기 전에 제 연출 스타일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이 감독은 억지로 뭔가를 덧붙일 필요는 없구나, 뭔가 만들어내려고 할 필요가 없구나 하고요. 대본 리딩 뿐 아니라 리허설을 하면서도 전 배우들이 연기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집중할 수 있는 편한 현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영화의 힘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드라이브 마이 카’는 원래 한국 부산에서 촬영할 예정이었다. 하마구치 감독이 부산 곳곳을 돌아다니며 어디에서 어떤 장면을 찍을지 구상과 섭외까지 마쳤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산으로 해외촬영이 어려워지며 히로시마에서 찍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영화엔 배우 박유림 등 한국인 배우들이 등장해 한국어로 한국인을 연기한다. 하마구치 감독은 10여년 전 한국 스태프와 공동 제작한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10월7일 오후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봉준호X하마구치 류스케 스페셜 대담'이 열렸다.   사진=박효상 기자

“한국을 의식하게 된 건 10년도 넘었습니다. 제가 다닌 동경예대와 한국영화아카데미가 공동제작으로 만든 작품이 있거든요. 촬영하면서 문화적으로 많이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다른 지점도 있다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영화 찍는 방법도 비슷하면서 달랐어요. 개인적으로 많은 자극을 받았고, 앞으로도 공동 제작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번에 ‘드라이브 마이 카’를 한국 배우, 한국 스태프와 작업하게 돼서 기뻤습니다. 가장 가까운 만큼 자극을 많이 받는 나라입니다.”

하마구치 감독은 올해 영화 ‘우연과 상상’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도 수상했다. 수상의 기쁨과 함께 좋은 평가도 많아 “뜻 깊은 한 해”라고 했다. 봉 감독과 부산에서 만난 이야기가 나오자 “올해 가장 인상에 남고 행복했던 시간”이라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의 시선을 느끼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자체가 정말 행복했어요. 마치 봉준호 감독의 촬영 현장에 들어가 있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모더레이터처럼 성실하게 진심으로 질문해주시고 그에 대답하느라 애를 쓰긴 했습니다. 그 시간을 보내며 동지애를 느낄 수 있었고요.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봉 감독 영화의 팬으로서 작품을 봐왔지만 대담하는 시간을 통해 인간적으로 봉 감독을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저도 나중에 젊은 영화인을 만나면 봉준호 감독님처럼 성실하고 진심을 담은 태도로 대해줘야겠다고 깨달았습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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