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할미넴에서 3천평 정수장 카페까지 - 지역에 힙을 입히다

순창 할미넴에서 3천평 정수장 카페까지 - 지역에 힙을 입히다

[다시 여행이다 - 차세대 리더에게 듣다] ⑨ 힙컬 장재영 대표

자본금500만원으로 시작한 순창 방랑싸롱
40평 저온창고에서 펼친 '순창할미넴' 대박
3000평 조치원 문화정원 운영하는 힙컬 설립
지역에서 힙한 문화공간 일군 마이더스의 손

기사승인 2021-12-28 09:03:49
코로나19로 여행이 우리를 떠났다. 오랫동안 여행은 금기어였다. 위드코로나를 앞두고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암담한 시간 속에서도 더 나은 여행을 꿈꾸며 묵묵히 내일의 여행을 기획했던 이들이 있다. 코로나19 위기를 기회로 바꾼 여행업계 차세대 리더들을 만나보았다.

① 여행업계 앙팡테리블 - 이동건 마이리얼트립 대표
② 코로나19 극복 산증인 - 이영근 한국스마트관광협회 회장
③ 모빌리티 플랫폼의 빈틈 - 최민석 무브 대표
④ 한국형 도시민박 도전 - 조산구 위홈 대표
⑤ 부산 사나이, 광주의 기억을 되살리다 - 이한호 주스컴퍼니 대표
⑥ 오버하는 공무원, 제천을 맛의 도시로 만들다 - 이정희 제천시 미식마케팅팀장
⑦ 버려진 고택 4천평,  곰탕 다음 가는 나주 명물이 되다 - 남우진 마중39-17 대표
⑧어선에서 돌고래 보고 스노클링... 신개념 제주도 여행 개척 - 디스커버제주 김형우 허진호 공동대표


힙한 로컬 문화를 일구는 '힙컬' 장재영 대표.


장재영 힙컬 대표는 지역에서 힙하고 핫한 문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쇼 미 더 순창 (순창할미넴)’ 등 히트작을 두루 냈다. 그가 만들어내는 문화가 힙한 이유는 지역성 때문이다. “그런 것이 지역에서 가능해?”라는 질문에 그는 “응, 가능해”라고 답한다. 비결은 간단하다. “그냥 하면 돼, 재밌으면 사람들이 모이게 되어 있어.”

5년 전 자본금 500만원을 들고 전북 순창에 가서 4평짜리 카페를 열었던 그는 이제 3000평 공간을 운영하고 반기에 5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획사의 대표가 되었다. 무엇보다 부르는 곳이 많다. 전북에서 로컬 문화예술 행사를 가장 잘 기획하는 사람이 ‘방랑싸롱 무슈(장재영)’이라는 소문 때문에 세종시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그가 위탁운영하는 조치원문화정원은 원래 정수장이었던 곳이다. 기존 운영사가 사정 때문에 운영을 못해 방치되던 곳인데 그가 맡은 뒤로 1년도 안 되어서 지역에서 가장 힙한 공간으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시기에도 다양한 행사를 이곳에서 열면서 지역의 문화예술 아지트로 구축하고 있다. 그를 만나 로컬 기획의 핵심을 들어보았다.

-하는 일이 다양하다. 본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여행자다. 100% 여행자다. 지금 하는 일도 여행의 연장선이다. 내가 하는 일을 도시재생 혹은 문화재생 혹은 공간재생이라고 말하지만, 나에게는 여행의 일종이다. 먼저 온 여행자의 시선에서 나중에 올 여행자를 위해 이 공간을 어떻게 더 핫하게 바꿔볼까 고민한다. 전통적인 여행사의 일은 아니지만 여행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종합여행사로 등록하려고 한다.

-원래 여행사에서 일했다고 들었다. 어떤 일을 했었나?

1999년부터 2018년까지, 20년 가까이 일했다. 허니문여행사, 배낭여행사, 패키지여행사, 전시/박람회 기획사, 랜드사의 서울 사무소, 태국 현지 가이드, 말레이시아 랜드사 현지 팀장 소장도 경험했다. 2018년까지도 유럽 배낭여행 인솔을 했었다. 마지막 경력은 하나투어 국내여행 가이드였는데 이걸 하면서 지역에 관심을 가졌다.

-순창에 어떤 계기로 정착하게 되었나?

가이드를 하면서 해외는 65개국 정도 다녔지만 국내는 별로 안 다녔다. 하나투어 국내여행 가이드를 하면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는데 순창의 금산여관이라는 게스트하우스에 놀러 갔다. 일주일 정도 머물다 왔는데 게스트하우스에서 카페를 할 사람을 찾는다는 얘기에 재밌겠다고 생각해 한 달도 안 되어서 짐을 싸서 다시 내려갔다. 2016년도 여름의 일이다. 4평짜리 카페여서 처음에 500만원 들고 시작했다. 망해도 작게 망한다는 생각에 부담이 없었다.

-카페에서 커피만 판 것이 아니었다.

카페를 하려고 순창에 정착한 것은 아니었다. 여행자들의 아지트를 만드는 일을 그때도 생각했다. 2002년부터 싸이월드에서 세계일주 커뮤니티를 운영했었다. 세계일주를 다녀온 친구들을 많이 알았다. 별의별 방법으로 세계일주를 하고 와서는  강연하고 방송하는 게 다였다. 나는 생각이 달랐다. 여행지에서 본 좋은 것들을 우리나라에 구현하고 싶었다. 순창을 한국의 빠이(태국의 휴양도시)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여행지로서 핫하지 않던 동네가 북적북적하면 재밌지 않을까, 이게 여행자의 끝판왕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방랑싸롱에서 열린 청춘마이크 공연. 힙컬 제공


-여행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지역에 와서 시간을 들여 머물며 건전한 소비를 하는 행위다. 여행 기획은 사람을 끌어 모아서 기분 좋게 돈을 쓰게 만드는 것을 연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에서 로컬 크리에이터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나의 본질은 여행업이라고 생각한다.

-4평 카페로 시작했는데 이제 3000평 문화공간을 운영하는 책임자가 되었다.

2018년에 방랑싸롱을 저온창고로 옮겼다. 4평 공간에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40평 정도 되는 공간이었는데 1년 매출이 4억 정도 되었다. 조치원문화정원으로 옮긴 뒤에는 힙컬이라는 문화기획사를 설립하고 로컬페스타나 청춘마이크 주관사가 되면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 반기에 5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방랑싸롱을 공연장으로 활용했다. 무모한 일 아니었나?

4평 공간에서도 재즈페스티벌을 4번이나 개최했다. 순창 공정여행 페스티벌도 개최했다. 그런 행사를 해보면서 제대로 된 공연장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10년 동안 방치되어 있던 고추장 저온 창고를 발견했다. 내가 그렸던 공연장을 염두에 두고 들어갔다. 무대부터 먼저 만들고 그 뒤에 카페 공간을 채웠다. 재즈페스티벌을 더욱 키웠다.

-순창 주민들의 반응은 어땠나?

애초에 없었던 판을 만들었다. 공연장 승인부터 난관이었다. 지자체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담당 부서가 없었다. 전라북도에는 소공연장이 전주와 완주 빼고는 없었다. 공무원들이 이런 곳에서 되지도 않을텐데 도대체 왜 하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너무 하고 싶어서 한다고 했다.

청년들과 함께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장재영 대표. 힙컬 제공


-방랑싸롱 운영은 어떤 기회를 제공해 주었나?

애초에 재즈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던 공간이라 재즈 공연장으로 주로 활용했다. 그런데 뮤지션들의 소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인접 장르로 확대되었다. 순창을 넘어 전라북도의 문화예술 융합 거점이 되었다.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에서 하는 지역문화 전문가 양성과정에 참여했는데 우수교육생으로 뽑혀서 일본 연수도 다녀오고 그해 장관상까지 받았다. 상금(300만원)을 가지고 시작해서 35회 라이브 공연을 열었다.

-함께 할 스태프도 없고 관객도 많지 않은 곳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공연을 했나?

지금 보면 어떻게 이걸 다했지 싶을 정도로 많이 했다. 같이 하는 사람이 없어서 힘들었다. 지역은 인력을 수급할 수 없다. 그래서 혼자 다 했다. 기획과 실행, 프로듀서, 엔지니어, 홍보, 정산 및 회계, 영업 모두.

-방랑싸롱에서 만든 ‘쇼 미 더 순창 (순창할미넴)’이 큰 히트를 했다.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나?

고향으로 돌아온 지역 청년 중에 랩을 하는 청년이 있었다. 할머니들과 함께 해보자고 했더니 좋다고 해서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구상만 펼친 뒤 이런저런 일로 유야무야 되고 있었다. 마침 농촌활성화 공모사업이 있어서 ‘이것이 삶이넴, 우리는 할미넴’이라고 공모해서 2000만원 예산을 확보했다. 청년과 지역 어르신이 음악을 통해 소통하는 모습을 유튜브에 올리고 단편영화를 찍었다.

-지역의 할머니들과는 어떻게 소통했나?

하나투어에서 ‘내나라 여행’ 가이드 생활을 5년 정도 했는데 그 여행에 오시는 분들의 평균 연령이 70세다. 어르신들을 이해시키는 일이 내 일이었다. 그때 익숙해진 것 같다. 어르신들이 ‘귀에 쏙쏙 박히게 얘기를 잘한다’고 하셨다. 순창은 인구 대부분이 어르신이어서 그들과 소통하는 것이 익숙했다. 뭔가를 해도 어르신들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계기가 있었다.

순창 할머니들의 삶을 랩으로 풀어 화제를 불러 일으킨 순창 할미넴 공연 포스터. 힙컬 제공


- 어떤 계기인가?

'탁피디의 여행수다' 방송을 순창에 초대했는데 싸일런트 디스코를 기획했다. 이어폰이나 해드폰을 쓰고 춤을 추는 행사였다. 이것을 보고 동네 할머니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젊은 사람들 열댓명이 춤추는 걸 구경하면서 계속 응원하셨다. 홍대앞의 힙한 문화를 깡 시골에 가져왔는데 할머니들도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뭔가 연결고리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접해보지 못한 문화일 뿐 접하면 함께 즐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우리 농촌의 힙스러움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걸 브랜드로 가져가기로 했다.


-주식회사 힙컬을 설명해 달라.

2020년에 설립했다. 방랑싸롱이 알려지면서 순창 밖에서 다양한 제안이 왔다. 순창에서 한계를 느끼고 있던 차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기획팀을 꾸리게 되었다. 9월에 5명이 뜻을 모아 ‘두잉지 프로젝트’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고 프로젝트 매니저로 나섰다. 그해 12월에 조치원문화정원 운영 입찰 공고가 나와서 참여해서 운영사에 선정되었고 올해 2월부터 운영하고 있다.

-로컬크리에이터로서 자신의 장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시각이 다르다. 나는 여행업으로 접근한다. 무엇을 하면 사람들이 재밌어 할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여기에 올까, 그걸 고민한다. 그런데 그것이 문화기획이고 도시재생이라고 하더라. ‘로컬 크리에이터’라 불러주고 도시재생센터에서도 요청이 오고 문화재단에서도 제안이 온다. 사안을 여행자의 시각으로 봐서 그들이 보기에 독특해 보였던 것 같다.

-지역에서 문화기획을 할 때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필요한 사람을 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순창에 있을 때 목말랐던 것이 사람이었다. 세종시에 오니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서 좋았다. 입주 작가들도 있어서 함께 의논하고, 이제 직원도 있다. 무언가를 도모하기 쉬워졌다. 또 수도권에서 순창까지는 멀어서 못오는데, 세종은 그리 멀지 않다며 사람들이 많이 온다. 네트워킹에도 유리해졌다.

-조치원 문화정원은 어떤 공간인가?

정수장을 문화공간으로 바꾸려고 조성한 곳이다. 그런데 운영 용역을 맡은 업체에 사정이 생겨서 나간 뒤에 코로나19까지 발발하면서 방치되고 있었다. 3000평 부지에 건물이 5동 있는데, 새롭게 운영을 맡게 되면서 공간을 재구성했다. 작가들의 공방, 회의실, 팝업 스토어, 카페, 갤러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계실을 카페로, 공방을 사무실로, 사무실은 휴게실로 바꾸어었다.

정수장이었던 공간을 탈바꿈한 조치원 문화정원. 힙컬 제공


-공간의 전체 컨셉은 무엇인가?

문화정원은 원래 정수장이었다. 물이 흐르고 정화되던 곳이었다. 그래서 문화정원이 문화로 정화되어 마을로 흐르는 정원이 되도록 했다. 우리의 역할은 사람들을 이곳에 오게 하는 것이다. 이곳은 조치원의 원도심인데 쇠락했다. 조치원은 한 때 극장만 네 곳이 있을 정도로 번성했던 곳인데 지금은 철길 건너편만 번화하다. 이쪽은 모텔과 유흥주점들만 살아남았다.

 -이런 넓은 공간에 콘텐츠를 채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텐데.

공간이 확장되면 사업 영역이나 비즈니스 방향성이 전체적으로 확장되어야 하는데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라 걱정되었다. 방랑싸롱이 4평에서 40평에서 확장될 때 여기에 맞게 방향성을 세우는데 1년 걸렸다. 여기서도 좀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공간에 맞는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역시 쉽지 않다.

-공간을 재구성할 때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었는가?

철저하게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 위주로 생각했다. 카페는 트렌디하면 손님들이 찾아온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것과 손님들이 기대하는 것 사이의 간극이 컸다. 저온창고에서 방랑싸롱을 할 때 주 이용 계층은 4050세대였다. 이곳은 좀더 젊은 사람들에게 맞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최소로 관여하고, 공간을 꾸미고 메뉴를 짜는 것 등은 젊은 직원들의 취향을 반영했다. 그랬더니 2030 이용자들이 많아졌다.

-힙컬이 성장하는데 공모 사업 등 관의 지원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스타트업이 의존할 수 있는 언덕이긴 한데 때론 독이 되는 수도 있다.

순창에서 방랑싸롱을 할 때 원칙이 있었다. 군청의 도움은 가능한 한 안 받는다는 것이었다. 토박이가 아닌 사람이 지자체 예산을 타서 사업을 하면 주변 사람들이 경계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피했다. 대신 다른 사람들이 못하는 영역을 했다. 직접 기획해서 공모했는데 전북창조경제혁신단체나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 등 광역 단체였다. 기획해서 공모하고 이를 충실히 수행해서 이후에는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입소문이 나면서 다른 제안도 많이 왔다.

-지역에서 로컬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려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연고가 없는 지역에, 특히나 인구가 적은 지역에 가서 판을 벌이는 것은 말리고 싶다. 무수히 많은 편견과 시기 질투와 싸워야 한다. 다분히 소모적이다. 소통은 도모하되 좋은 경험을 얻고 온다는 생각으로 덤덤해질 필요가 있다.

고재열 여행감독 gosisain@gmail.com
고재열 기자
fattykim@kukinews.com
고재열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